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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세상속으로...

[스크랩] 낙랑, 대방인들의 한반도 이주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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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낙랑 임둔 현도 진번의 이른바 한사군(漢四郡) 가운데
[임둔(臨屯)]이라는 글자가 적힌 봉니(封泥) 유물이 중국 요서 지역에서 출토됐다.
 
관련기사 - [연합뉴스 2002-04-11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152227&section_id=106&menu_id=106

 

 

한사군 중 임둔군의 위치가 위 지도처럼 발해(서해 위 바다) 북부로 비정될 때 

자동적으로 한사군은 모두 발해 연안에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겠다.

 

즉 한반도에는 한사군이 없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겠다.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 관련글 (누르시면 열립니다.)

  

 

 

 

낙랑과 대방은 대략 저 위치에 있었다고 비정되고

대방, 낙랑 등 이른바 한사군도 모두

원래는 고조선의 지역나라들.

 

이는 지금 미국이 무슨 주, 무슨 주 하면서 수십개의 주들로 이루어져있고

중국이 무슨 성, 무슨 성 하면서 여러개의 성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같다 하겠다.

 

그래서 필자는 [고조선 연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고조선 산하의 대방 지역 (대방국), 낙랑 지역 (낙랑국) 등이 후에 한나라에 합방되면서 

대방군, 낙랑군이 되었다 하겠다.

 

 

 

 

당시 고조선 서부지역이던 대방, 낙랑의 고조선인들은

한나라의 저기를 피해서 대거 한반도로 이주해온 정황들이 있는데 

그들의 이주는 사실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평양을 중심으로 그 일대에서 낙랑 대방의 유물들이 발견되는 것은

그 이주해온 낙랑 대방인들의 유물이라 하겠다.

 

그 낙랑인들의 일부는 동해안 지역으로도 이동하여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에 나오는 [낙랑국]을 이루었다 하겠는데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낙랑이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이라는 독립국 이었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낙랑 대방인들이 평양 일대로 많이 이동해 온 것은

평양이 고조선의 원래의 수도였으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고조선은 최소한 2천 수백년 존재했는데

그 수도는 대동강변 평양에서 시작하여 몇번 천도를 하는데

마지막에 다시 대동강변 평양으로 돌아왔다고 비정되고 있다.

 

이처럼 낙랑 유물이 평양 일대에서 나온다고 하여

한사군이 거기에 있었다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 하겠다.

 

삼국유사에 보면

" 한나라가 3군을 두었는데 현도, 낙랑, 대방(북대방(北帶方))이다."

[漢分置三郡 謂玄 樂浪帶方(北帶方)]라 나오는데

 

여기서 [북대방(北帶方)]은 발해 북부 (북경 일대)에 존재하던 대방이요

후에 한반도로 들어온 대방 사람들이 세운 대방 

[남대방]은 한반도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낙랑 역시 발해 북부에 존재하던 낙랑은 [북낙랑]이요

한반도로 들어 온 낙랑은 [남낙랑]이라 하겠다.

 

[평양]이라는 지명의 경우도 원 평양은 대동강변 평양인데

고조선이 수도를 옮기면서 압록강 유역, 요하(혹은 난하)유역 (발해 북부)에도 

평양이라 불리던 고조선의 수도가 있었다 하겠다.

 

차차 중국 세력이 밀려오면서 결국 대동강변 평양으로

고조선의 수도가 다시 돌아왔다고 비정된다 하겠다.

 

삼국유사에도 " 후에 (마지막 단군이)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山神)이 되었다"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고 나오듯이.

 

 

 국보  제89호 -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平壤 石巖里 金製鉸具)

 

위 유물은 북한 평양에서 발견되었는데 낙랑 유물로 알려져 있다.

아래는 확대한 사진.

 

 

 

( 사진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경악스러운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10 센티도 안되는 크기의 바클(허리띠 머리)에 놀랍도록 정교한 작품을 만들었다. 

 

고조선의 중심지가 발해북부 였을 때 그 지역의 문명이 많이 발전했고

위 유물은 고조선 문명을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라 하겠다.

 

위 유물은 중원(당시 중국의 중심지)의 유물들과는 많이 다른 고조선 고유의 유물.

 

 

또한 고조선의 유물 중 하나가 아래의 [다뉴세문경]

 

 

[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 지름 21.2㎝ : 충남 논산 출토 ]

 

 

 

다뉴세문경은 한국특산품. 

한국 고유의 유물.

 

위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은 불과 지름 21㎝ 정도 되는 크기 안에

0.3㎜ 간격으로 가는 선들이 무려 약 1만3000개가 있다.

 

그것도 송곳 같은 것으로 파서 만든 것이 아니라

주물로 떠서 만들었다.

 

즉 틀을 만들고 거기다가 쇳물을 부어서 만든 것.

기술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현대과학으로도 아직도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고조선의 다뉴세문경 - 전북 완주 갈동유적]

 

위 다뉴세문경들은 2007년도에 전북 완주에서 발견된 것들.

초현대적 기하학적 무늬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 2007-03-0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568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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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에게 고구려, 백제, 신라는 똑같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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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고대사
글쓴이 : 한강13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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