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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시간

<한국문학의 거목 故 박완서의 작품세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박완서 작가는 불혹의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했지만 지난 40여 년간 쉼 없는 창작으로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6.25 전쟁의 상처 때문에 작가가 됐다고 말한 고인은 전쟁의 비극을 다룬 작품들로 큰 발자취를 남겼으며, 1970-1980년대 급성장한 한국의 산업화 시대에 드러난 욕망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치기도 했다.

내면적인 서사보다는 선이 굵고 분명한 이야기를 살아있는 문장으로 그려 많은 독자들과 공감을 나눈 작가는 여성의 억압 문제를 다루고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의 아픔을 그린 여성문학의 대모이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김종회 경희대 교수는 22일 "중년 이후에 등단한 작가답게 세상을 보는 원숙한 시각을 가졌고, 부드러움과 따뜻함 만이 아니라 매우 예리한 시각을 가진 분"이라며 "작품을 통해 자기 상처를 드러내면서 독자들을 위로했고, 독자들과 따뜻하게 악수할 수 있었던 작가"라고 말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 씨는 "고인은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신 분"이라며 "현대사의 아픔을 헤쳐온 경험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생활어법에서 그대로 건져 올린듯한 살아있는 문장이 우리 문학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세계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기억은 6.25전쟁과 분단의 상처다. 1970년 발표한 데뷔작 '나목'을 비롯해 '엄마의 말뚝' '목마른 계절' '부처님 근처' '겨울 나들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의 작품들이 전쟁과 분단을 소재로 삼았다.

1992년 출간한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더욱 원숙한 시각으로 전쟁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 1930년대 개풍에서의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 자전적 요소를 담았다.

이어지는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전쟁이 끝나기 직전 결혼해 집을 떠날 때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스무 살 무렵 겪은 전쟁의 체험을 그렸다.

한국사회의 급격한 산업화 시기였던 1970-1980년대에는 중산층의 일그러진 도덕성에 대해 치열하게 파헤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휘청거리는 오후' '도둑맞은 가난' '도시의 흉년' 등의 작품에서 작가는 자본주의 성장기에 중산층이 가졌던 이기심과 욕망을 사정없이 드러내 보이며 도덕성의 빈곤을 고발했다.

또 '살아있는 날의 시작'을 기점으로 '서 있는 여자'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에서는 여성의 시각으로 삶을 돌아보며 여성문제를 조명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나더러 페미니즘 작가라는 사람도 있던데 페미니즘 이론은 읽어 봐도 잘 모른다. 그냥 살면서 얻은 느낌으로 쓴다"며 여성성과 남성성은 동등한 것이고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룸으로써 행복을 추구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김종회 교수는 "박완서의 소설을 페미니즘으로 본다면 투쟁적, 전투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의 입장에서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드러내는 아주 따뜻한 페미니즘"이라고 말했다.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은 '영원한 현역'이었던 고인의 최근작들도 우리 문학에 값진 자산으로 남았다.

2000년대 들어 작가는 장편 '그 남자네 집'을 비롯해 장편 '친절한 복희씨' '세가지 소원'과 산문집 '호미' 등을 펴냈으며 지난해 여름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등을 발표했다.

장석주 시인은 "노년기의 경험을 소설로 쓴 작가의 작품들은 우리 문학에 희귀한 노년문학으로, 젊은 작가들이 도저히 쓸 수 없는 귀한 작품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가가 떠나가면서 한국문학의 한 축이 헐려나간 듯한 상실감이 크다"며 "큰 자리를 대신할만한 작가가 쉽게 나오는 게 아니기에 더 슬프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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