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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해외드라마 소식

갑자기 ‘일본 드라마 개방론’은 왜?





시사저널 이종현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위 사진)이 2월23일 언론간담회에서 난데없이 '일본 드라마(일드) 개방론'을 거론했다. "10여 년 전 일본 문화에 대해 개방 조치를 취할 때, 일본에 문화적으로 종속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일본 내 한류 확산으로 나타났다. 우리 문화 수준이 높아진 만큼 이제 일본 드라마를 개방할 때가 되었다"라는 것이다.

파문이 확산되자 문화부는 2월24일 낸 보도자료에서 "다양한 문화 관련 주제의 하나로 (일드 개방이) 언급된 것일 뿐 정책적으로 검토되거나 결정된 바는 없다"라고 해명했다. 해외 프로그램 편성 규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당초 규제 완화를 검토하는 실무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으나, 3월2일 방통위 관계자는 "검토한 적이 없다. 잘못된 보도이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다르다. 정병국 장관이 아무 생각 없이 불쑥 일드 개방 필요성을 언급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시기도 절묘하다. 일본 드라마 규제 완화는 하반기에 출범할 예정인 종합편성 채널(종편) 사업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특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드라마는 부분 개방되어 있다. 케이블은 '15세 이상 시청가 드라마'를 방영할 수 없으며, 지상파는 '한·일 공동 제작 드라마'만을 방영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종편 사업자들은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 쇼·오락 프로그램의 수입과, 15세 이상 관람이 가능한 일본 드라마의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정장관은 18대 국회 출범 이후 한나라당 미디어산업발전특위 위원장 등을 맡으며 이명박 정부 미디어 정책의 기조를 다져온 인물이다. 종편을 위한 규제 완화를 주도할 것으로 관측되는 정장관의 발언을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이다. 언론계에서도 정장관의 '일드 개방' 발언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실장은 "애당초 종편이 싼값에 외국 드라마를 사들여 시청률을 확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정장관의 발언은 예견되었던 수순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채널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드라마가 최고인데, 종편은 (제작비 등) 자체 제작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드를 사들이려는 것이다.

종편 사업계획서를 보면 < 아이리스 > 급의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등 드라마를 많이 강조했다. 하지만 하반기에 출범할 예정인데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드라마를 만들 수 있겠느냐. 지금부터 준비해도 빨라야 내년에 방송할 수 있을 테니 일드로 메울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KBS의 한 관계자는 "명분은 '문화 개방'이지만, 실제 목적은 '값싼 콘텐츠 조달'에 있는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두 나라 문화 경쟁력 차이 모르나" 지적도

종편 사업자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한목소리로 정장관의 발언에 힘을 싣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2월26일자 사설 '일본 드라마 튼다고 막장 드라마보다 더할까'에서 '우리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통해 소중한 문화적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 일본 드라마가 지상파 방송에 등장한다 해서 놀라거나 눈살을 찌푸릴 국민은 많지 않을 듯하다'라고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2월25일자에서 정장관의 발언에 대해 '최근 일본에서 한국 가요와 드라마가 한류 붐을 일으키면서 이제는 문호를 개방해도 문화 잠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라며 '정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2004년 1월 제4차 개방 이후 중단되었던 일본 대중문화의 추가 개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류 등 한국 문화의 경쟁력이 충분히 강하다는 것에 대해 반론의 목소리도 높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경제력 자체가 불평등한 두 나라의 대중문화 경쟁력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 내의 한류와 일본 프로그램의 국내 시장 진출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일본에 수출을 많이 하니, 수입도 많이 해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한류가 대일본 무역 적자 3백억 달러의 절반이라도 되는가? 이런 시기에 종편을 위해, 드라마 개방 확대를 말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라고 주장했다. 김동준 실장도 "한류를 예로 들어 한국 문화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하는 것은 한 단면만 본 것일 뿐이다. 일본 드라마 시장과 국내 드라마 시장은 게임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SBS의 한 관계자 역시 "말이 '한류'이지 최근 3~4년 사이에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가 별로 없다. < 아이리스 > 는 한류 4대 천왕인 이병헌 효과로 인한 것이다. 문화 개방은 신중히 진행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국내 방송계가 일본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승수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일본이 국내 방송 장비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앞으로 종편이 사들일 방송 장비의 대부분이 일본산이라는 점 △중앙일보 종편에 테레비아사히(3.08%), 매일경제 종편에 일본경제신문사(1%)가 지분 참여를 하고 있다는 점, 여기에 더해 △일본 문화까지 추가로 개방된다면 "일본은 손도 안 대고 문제를 다 해결한 셈이 된다"라고 평가했다.

김교수는 "일드를 싸게 사들여 방송하는 것이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 추구할 일인가? 장기적으로 돈, 콘텐츠, 기술로 무장한 일본의 문화적 침략을 우리나라가 당해내지 못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김동준 실장도 "일본 문화가 개방된다면 종편과 동등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지상파에서도 부분 개방이 이루어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국내 방송계가 일본에 종속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일드 개방론'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더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곽상아│미디어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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