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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시간

마지막까지 후배들을, 세상을 다독인 ‘문단의 나목’ 소설가 고(故)박완서

마지막 가는 길까지도 문학계의 큰 어른, 문단의 어머니다웠다. 빈소 입구에는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글귀가 붙었다. 평소 "문인들은 돈이 없다"며 "내가 죽거든 찾아오는 문인들을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당부해왔다던 그는 떠나는 길 위에서도 남겨진 이들을 걱정하고 보듬었다. 본인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청춘의 상처'를 품고 있으면서도 후배들을, 주변 사람들을, 사회를 감싸 안으려 노력한 소설가 박완서. 그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밤이다.





1931년 경기도 개풍(현재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태어난 박완서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에서 자랐다. 1950년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으로 중퇴했다.

박완서에게 전쟁은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쓰라린 사건이다. 전쟁 전까지 평범한 집안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살아온 박완서는 갑작스러운 전쟁이 몰고온 가난, 죽음, 고통, 아픔 등을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만 했다.

"내 처녀 시절, 내 인생의 빛나는 시절을 나는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보냈다. 무서운 게, 무서워하며 사는 게 지긋지긋했다." -「우리 시대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 중에서

특히 그토록 '똑똑했던', 그래서 온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오빠가 부상을 입고 돌아온 뒤 몇 달 만에 허무한 죽음을 맞게 된 것은 '육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로 남아 박완서의 인생을 지배했다.

"그 시대를 견디게 했던 것은 '언젠가는 이것을 글로 쓰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증언하고 싶은 욕구죠. 숙부와 오빠 등 많은 가족이 전쟁 통에 죽었어요. 민간인 납치, 학살, 폭격 등 죽음이 너무 널려 있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식구의 죽음이 몇백만 명 중의 하나, 무더기로 넘어가는 게 싫었어요. 사람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만들어 살아 있게 하고 싶었어요. 죽어간 식구들에 대한 애정이죠." (경향신문 인터뷰 '경향과의 만남' 중에서)
이후 박완서는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했고, 이때 고 박수근 화백을 만나게 된다. 당시 '우월감과 열등감 덩어리'였다던 박완서는 초라한 모습의 '그림쟁이' 박수근의 화집을 보고 놀람과 부끄러움을 느껴 자신의 불행에만 골몰해 있던 것에서 벗어나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때 인연을 맺게 된 박수근 화백은 그 후로 16년이 지나 다시 한번 그의 인생에 찾아온다. 서울 신문회관에서 열린 '박수근 회고전'에서 '나무와 두 여인'을 보며 마음 한구석에 응축되어 있던 그 시절의 상처를 만지작거리던 박완서는 뒤늦게야 제대로 평가받게 된 한 예술가의 운명에 대해, 그리고 더욱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 안타까운 예술가의 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펜을 들게 된다.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박완서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낸 작품 「나목」은 그렇게 탄생했다. 「나목」이 「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당선되며 등단했을 때, 박완서의 나이는 꼭 마흔이었다. '막내아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해' 다섯 아이의 엄마 박완서가 소설가로서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이후 40년간 눌러두었던 이야기들을 분출이라도 하듯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박완서는 평범한 일상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인간의 이중성과 사회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한국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겨왔다. 「나목」, 「목마른 계절」,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 6·25전쟁과 분단을 다룬 작품에서부터 물질만능주의와 허위의식 등 한국 사회의 이면을 꼬집는 「도둑맞은 가난」, 「도시의 흉년」, 「닮은 방들」, 「휘청거리는 오후」 등은 평단과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또 행복한 결혼에 대한 고민과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주목한 「살아 있는 날의 시작」,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의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박완서의 삶에 찾아온 불행한 상처는 전쟁뿐만이 아니었다. 한창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던 1988년 남편을 폐암으로 잃고, 그리고 다시 4개월 뒤 당시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로 일하던 외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게 된다. 이 때 그는 부산의 한 수녀원에 칩거하며 극심한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고도 알려졌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자식을 앞서 보낸 고통은 오랫동안 아물지 않고 그를 할퀴었다. 지난해 아홉명의 소설가가 참여한 자전소설집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에 먼저 간 남편과 아들에 대한 마음이 담담하면서도 애틋하게 담겨있다.





1 자택 서재에서 작업하는 모습. 2 소말리아 난민촌에서 봉사활동 중인 작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 천지였다'며 인생을 회고하던 박완서는 그토록 쓰라린 상처를 품고 그 어떤 것으로도 '이해 못할' 세상을 살아오면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기억될 수줍은 듯 해사한 미소는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빛이 났다.

1982년 가톨릭에 입문한 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왔던 박완서는 늘 자신을 대접받는 사람이기보다는 상대방을 위해 한 번 더 낮추는 사람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또한, 매사에 겸손한 작은 것 하나 허투루 낭비하는 법 없는 검소하고 절약하는 삶을 꾸려왔다. 유니세프와 함께 소말리아 난민촌을 방문했던 1993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최초의 친선대사로 임명된 이후 20년 가까이 역할을 수행해왔다. 암 선고를 받기 직전인 지난 2010년 9월에도 부산에서 열린 유니세프 후원행사에 참여해 앞장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박완서는 워낙 따뜻하면서도 유머스러운 성격이었기에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문인 후배들도 참 많았다. '대작가'이면서도 후배들에게 결코 '선배'로서의 권위의식이나 '어른'으로서의 위엄을 강요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려 언니처럼, 누나처럼, 엄마처럼, 이모처럼 따르는 후배들이 꽤 많았다.

문학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박완서는 최근까지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과시하며 활발한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까지 젊고 실력 있는 작가들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는데, 몸이 아픈 와중에도 계간문예지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 심사를 맡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난 1월 22일은 공교롭게도 수상자 발표날이기도 했다.

"(집필 중인 작품이 있냐는 물음에)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청탁받은 것들이 밀려 있고, 장편도 하나 더 써봐야지 생각합니다. 욕심이라는 게 한이 없어요. 돈에 대한 욕심은 사라졌는데 아직 남아 있는 욕심이 있다면 '이런 거 하나 더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니 내 몸이 헌집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헌집이니까 언제 폭삭 내려앉을지도 모르죠. 뭘 쓰고 싶다는 욕심은 있는데, 여기저기가 예전 같지 않아 항상 몸과 의논하게 됩니다." (경향신문 인터뷰 '경향과의 만남' 중에서)

세상의 '나목'으로 지치고 힘든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던 박완서는 이제 먼 곳으로 떠났다. 언제나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는다면 행복할 거"라고 말해왔던 만큼 그의 마지막은 무척이나 행복했으리라 믿는다. 이곳에서의 문장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문단의 어머니, 영원한 소설가 박완서는 천상에서 또다시 아름다운 문장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박완서 주요 작품 연보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등단
1971년 첫 단편 「세모」 발표
1976년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발표
1977년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발표
1978년 장편 「배반의 여름」, 산문집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발표
1980년 장편 「엄마의 말뚝」, 장편소설 「살아 있는 날의 시작」 발표
1985년 장편 「서 있는 여자」 발표
1989년 장편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발표
1990년 산문집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발표
1991년 장편 「저문 날의 삽화」 발표
1992년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발표
1998년 장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 출간
1999년 산문집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발표
2000년 장편 「아주 오래된 농담」 출간
2004년 장편 「그 남자네 집」 출간
2006년 장편 「잃어버린 여행 가방」 발표, 「환각의 나비」 출간
2007년 장편 「친절한 복희씨」, 산문집 「호미」 발표
2008년 단편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발표
2009년 장편 「세 가지 소원」, 동화집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발표
2010년 자전소설집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참여,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출간

제7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 1990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 제25회 동인문학상 수상, 제5회 대산문학상 수상, 1998년 보관문화훈장 수여, 1999년 만해문학상 수상, 제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 금관문화훈장 추서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제공 / 경향신문 포토뱅크,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민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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