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행복의 절정에 달했을 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는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당황하고 있을 때 저승사자, 아니 '스케줄러'(정일우)라 자처하는 이가 여자 앞에 나타나 미션을 던져놓는다. "49일 안에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의 눈물을 받으면 살아날 수 있다"고. 이제껏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봐온 설정인 데다, 이 미션이 실패할 리도 만무하다. 현재 유령 상태인 신지현(남규리)은 분명 49일 후에 자신의 안락한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 49일 > 이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미션 완료'에 초점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지현에게 49일은 긴박한 임무 수행의 시간만이 아니라, 가혹한 진실에 눈뜨는 시간이기도 하다. '설마 날 사랑하는 사람이 세 사람은 되지 않겠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둘러싼 관계가 얼마나 위선적이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믿었던 약혼자와 단짝친구는 자신을 배신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친구들은 거짓 눈물을 흘린다.
결국 지현은 진실과 맞닥뜨릴수록 삶의 씁쓸한 이면을 보게 되는데, 이는 그녀가 이승으로 돌아가야 할 목적과 충돌한다. < 49일 > 이 재밌는 부분은 바로 이런 아이러니에 있다. 49일은 또한, 세상물정 모르고 살아온 지현이 정글과 같은 세상에 부딪히는 시간이다. 유령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는, 송이경(이요원)이란 여자가 자는 동안 잠깐 몸을 빌릴 수 있다. 특히 약혼자 강민호(배수빈)의 음모를 막기 위해선 반드시 이경의 몸을 빌려야만 한다.
가벼울 정도로 생기 발랄했던 신지현과 허름한 단칸방에서 무생물처럼 살아온 송이경. 완전히 다른 두 여자의 몸과 영혼이 만나는 순간, 변화는 신지현뿐만 아니라 송이경에게도 찾아온다. 이경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죽은 듯이 살아왔는데, 지현의 영혼이 빙의되면서 생긴 변화가 혼란스럽다. 그 과정에서 좀처럼 단서가 없었던 이경의 과거가 조금씩 공개되기 시작했다. 특히 회상 신을 통해 이경과 스케줄러가 가까운 사이였음이 드러나면서, 드라마는 점점 더 흥미 있어졌다.
결국 49일은, 지현뿐 아니라 이경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다. 생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지현은 인생의 냉소를 알게 되고,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했던 이경은 생의 한가운데로 조금씩 걸어 들어간다. < 49일 > 은 인과응보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가 아니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지현과 이경 같은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냉정한 세계인 것이다.
한없이 가벼운 카사노바처럼 보이는 스케줄러도, < 49일 > 에서 제법 진지한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인간들 원래 그런 거 몰랐어? 여태 뭐 하고 살았대?" "인간의 마음은 변하는 게 특징이야. 변하지 않는 건 없어." 스물세 살 이른 나이에 죽은 그는 인생이 아쉬우면서도, 인간 세상에 대한 냉소를 감추지 않는다. 특히 그가 한없이 낙천적인 지현에게 말하는 대사는 날카로운 잠언에 가깝다. 스케줄러에 의하면, 49일이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시간이다.
때문에 지현은 자신이 "이미 넘어와버린 생사의 질서를 뒤집고 돌아갈 만큼 가치 있는 인간으로 살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세 사람의 눈물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0회에서 한 사람의 눈물을 얻었다.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는 (11회 방영 전인 지금은) 알 수 없다. 지현을 짝사랑하는 한강(조현재)? 지현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이경? 혹은 지현 자신의 눈물이라는 추측마저 돌고 있다. 그 외에도 궁금한 것은 많다.
'지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이경의 비밀은 무엇일까? 49일 후 지현과 이경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등등. 벌써 10회까지 방송되었지만, < 49일 > 은 여전히 풀어갈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 < 49일 > 이 뒷심을 발휘하는 이유는, 바로 진실을 드러내는 타이밍을 영리하게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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