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생. 캐나다 나이로 열아홉, 우리나라 나이로는 스물이 된다.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합격해 한국에 왔고 그렇게 스타가 됐다. 운명적인, 혹은 갑작스러운 계기로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됐지만 이 작은 이국의 소년은 평화로워 보인다. 부서질 듯 가녀린 모습 속 음악이라는 단단한 심지를 가진 스무 살 셰인의 이야기.
'인형 같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조막만 한 얼굴, 색소가 옅은 눈동자, 긴장한 듯 조금은 가라앉은 분위기마저 신비롭게 느껴질 정도로 스튜디오에 들어선 그의 모습은 충분히 이국적이었다. 조심스레 말을 걸 타이밍을 기다리던 기자에게 그가 먼저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왔다. 작지만 귀 기울여지는 미성. 서툰 발음에서는 일상이 느껴졌다. 1년 전 유튜브를 통해 '위대한 탄생' 오디션에 지원할 때만 해도 쉽사리 상상하지 못했던 일상. 그러니까 캐나다를 떠나 한국에 와서 살게 되고, 방송에 나와 인기를 얻고, 거리에 나설 때 사람들의 사인 공세를 받는 일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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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지 6개월, 프로그램의 두 번째 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2011년 겨울, 그는 차분히 성장의 단계를 밟고 있다.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비자 문제를 정리하고 새 소속사와 계약도 마쳤다. 그리고 얼마 전 「The Gift」라는 이름의 첫 데뷔 앨범을 발표하며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어디쯤, 첫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처음 해본 사랑'을 타이틀곡으로 총 다섯 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에는 그가 직접 작곡한 노래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오랜 꿈인 싱어송라이터를 향한 작지만 중요한 한 걸음이다.
한국어와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될 수 있으면 모든 질문에 한국어로 대답하려 애썼고 길지 않은 대답에서조차 한국 팬들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음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한국어는 여전히 어렵지만 요즘 변형 가능한 한국어 인사말이 늘어났다며 뿌듯해하고,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묻자 "삼겹살! 그중에서도 갈매기살이요"라며 즐거워했다. 익숙해지는 한국생활만큼 하고 싶은 것도, 부르고 싶은 노래도 많아졌다. 이제 시작. 서두르지 않고 한국에서 가수로서의 토대를 차근차근 마련해갈 생각이다. '위대한 탄생 Top 3'라는 훈장 위로 싱어송라이터라는 이름이 새겨질 날이 머지 않았다. 스무 살 셰인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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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위대한 탄생 Top 12 콘서트'를 마치고 7월에 캐나다에 다녀왔어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위대한 탄생 시즌2'의 오디션 녹화차 영국에 다녀왔고요. 영국에서 시즌2 지원자인 샘 카터를 만나 인터뷰를 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도 그와 같은 지원자였는데, 그때의 기분이 생각나 떨리더라고요. 영국에서 돌아와 소속사를 결정지은 것이 가장 큰 성과예요. 방송이 끝나고 진로에 대해 고민 중이었는데 저에게 맞는 소속사로 결정하게 돼서 기뻐요. 방송 프로그램 인터뷰와 팬 사인회를 통해 팬들을 만나고 요즘엔 새 앨범 프로모션 활동을 하고 있어요.
Q 캐나다 지역 신문에 셰인의 오디션 성적이 대서특필된 걸 봤어요. 캐나다의 가족과 친구들의 반응은 어때요? 고향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나요?
7월에 집에 갔을 때 환영을 많이 받았어요. 부모님도 저를 자랑스러워하시고요. 학교에 한국인 친구들이 많아서 축하 인사를 해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한국만큼 사람들이 알아보는 정도는 아니에요.
Q 방송 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에 출연하기 전에는 정말로 내성적이었어요. 지금도 수줍음이 많지만 전에는 그야말로 '샤이보이'였어요. 생방송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위탄' 덕분에 좀 더 나 자신을 열어 보이게 된 것 같아요. 나를 열어 보이는 만큼 상대방도 마음을 연다는 걸 알았죠. 무대를 즐길 줄도 알게 됐고요.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중요한 많은 것을 배웠어요.
Q 오디션을 통해 스타가 된 것은 분명 큰 행운이지만 하루아침에 가족과 떨어져 외국에서 지낸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 같아요. 이제 한국에 온 지 1년이 지났는데 한국생활에는 익숙해졌나요?
사실 한국에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유튜브를 통해 지원하기 전에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어요. K-POP이나 한국 가수들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한국어나 음식 등 한국 문화를 경험해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한국은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나라예요. 특히 음식이 정말 맛있어요. 이제 웬만한 한국 음식은 거의 다 먹을 줄 알아요. 요즘에는 삼겹살이랑 갈매기살, 김치볶음밥에 푹 빠져 있어요. 방송을 하는 동안에는 합숙생활을 하다 지금은 강남의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데 가끔 부모님과 남동생이 보고 싶은 것 빼고는 잘 지내고 있어요.
Q 특별히 적응하기 힘들었다든가 인상 깊었던 한국 문화가 있나요?
인사 문화요. 한국에서는 인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신승훈 형님('위대한 탄생' 멘토였던 신승훈에 대한 그의 호칭은 '형님'이다)께서 가르쳐주셨거든요. 적응하기 힘들었다기보다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니까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썼어요. 초반에는 옆에서 누가 쿡 찌르면 "셰인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가 자동으로 튀어나올 정도였어요. 지금은 전보다 많이 편해졌어요. 그래도 잊지 않도록 매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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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국에 왔을 땐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어요. 때문에 한국어 가사를 외우는 게 관건이었어요. 특히 노래 부를 때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면 감정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거든요. 미션 곡을 받으면 한국어 가사를 발음을 영어로 옮겨 적은 후 계속 읽어가며 암기했는데 나중에는 나름의 표기법이 생기더라고요. 'ㅃ'은 'ppp', 'ㄲ'은 'ggg', 이런 식으로요. 멘토 스쿨에서는 혼자 읽고 쓰며 연습을 했고 위대한 캠프가 끝나고 나서는 주변 사람들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하고요. 사람들과 한국어로 최대한 많이 말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꿈, 빵, 땀같이 쌍자음이 들어간 단어가 특히 어려워요.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도전 과제예요.
Q 오디션을 통해 스타가 되는 일은 보통 사람은 하기 힘든 인생 경험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신승훈 형님을 만난건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에요. 노래와 음악에 대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시고 작은 것 하나까지 자상하게 신경 써주셨어요. 아빠 같은 분이세요. 다 같이 노래방에 가서 연습했던 일들도 잊지 못할 추억이에요. 같은 멘티였던 윤건희, 형우 형 다 연락하면서 지내요. 데이비드 오와도 자주 연락하고요.
Q 스타가 되어서 좋나요? 팬이 생긴 기분은 어때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건 신기한 경험이에요. 팬들을 만났을 땐 기분이 정말 좋아요. 하지만 한편으론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조심스러워요. 아무렇게나 하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팬이 생긴다는 건 행복과 부담을 동시에 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거든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혹시나 내가 잘못해서 망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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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귀여운 느낌에?(웃음) 외국인 참가자이다 보니 혼자 고군분투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며 공감해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한창 생방송 경연 중에 팬들께서 선물해주신 비행기 티켓으로 캐나다에 계신 어머님이 한국에 오신 적이 있어요. 몇 달째 혼자 타향살이를 하며 많이 외로웠을 때였거든요. 팬들께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고마운 선물이에요. 언제나 감사드리고 있어요.
Q 이제 첫 앨범을 내고 정식으로 가수라는 타이틀을 달았어요. 소감이 어때요?
정말 행복하고 떨려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언젠가는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한국에서 가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고요. 이제 더 이상 오디션 지원자가 아니잖아요. 가수로서 나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도 있고 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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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못한 한국어 발음으로 애절하고 섬세한 감정을 전달하기란 쉽지 않아요. 언어는 다르지만 사랑의 감정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저 역시 첫사랑을 해봤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그 감정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을 이해해요. 저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몰입해서 불렀어요.
Q 신승훈씨의 노래 '온도'의 리메이크곡과 크리스마스 캐럴인 'Last Christmas'를 비롯해 직접 작곡에도 참여했어요. 이번 앨범은 셰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부르면 행복했어요. 언젠가는 꼭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현 가능한 꿈인지는 저 역시 확신하지 못했어요. '위탄'이 그 가능성을 열어줬다면 이번 앨범은 오랜 꿈의 실현이자 또 다른 시작이에요. 낯선 땅에서 저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전하는 선물이기도하고요.
Q 요즘 '위탄2'가 한창 방송 중이에요. 오디션 선배로서 두 번째 시즌을 지켜보는 마음이 남다를 것 같아요.
저도 열심히 보고 있어요. 보고 있으면 시즌1 생각이 많이 나요. 불과 1년도 안 됐는데 왠지 아주 오래전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지원자들이 무대 위에서 어떤 감정일지 아니까 저도 같이 긴장되고 떨려요. 생방송을 앞두고 있는 지원자들에게는 우선 대단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Top12가 되는 것만 해도 충분히 멋진 일이에요. 하지만 이제부터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해요. 왜냐하면 생방송은 정말, 생방송이거든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무대를 즐기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Q '위탄2'의 멘토 중 선택한다면 누구를 선택하겠어요?
다섯 분의 멘토 모두 다 좋아요. 한 명을 고르라면 못 고르겠어요. 신승훈 형님이 화내실 거예요(웃음).
Q 한국 나이로 스무 살이 됐어요. 어른이 되면 하고 싶었던 일이 있나요?
제가 가진 꿈 중 하나가 음반사와 계약을 하고 제 이름으로 된 앨범을 내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그 꿈을 이루게 되어 정말 기뻐요.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여자친구도 만들고 싶지만, 팬들이 알면 화낼 거예요(웃음). 캐나다에선 술을 못 마셨는데 한국에서 스무 살이 된 후에 몇 번 술도 마셨어요. 한국에 와 어른이 된 것 같아요.
Q 2012년은 셰인에게 어떤 해가 될까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2012년은 가수로서 저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팬들도 더 많이 만나는 한 해가 될 거예요. 다음 앨범에는 한글 가사를 쓰는 걸 목표로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위탄'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굳이 벗으려 하지는 않을 거예요. 음악은 저에게 공기와 같으니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제 실력으로 홀로서기 할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싱어송라이터가 꿈이거든요. 곡도 많이 쓰고 뮤지션으로 최선을 다해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 ■스타일리스트 / 안수명 ■의상 협찬 /Kim jones by 빈폴·프레드페리(02-3447-7701), 헤지스·힐피거데님·지이크(02-546-7764), DPSR·카시오 지샥(02-3445-6428), H & T(02-548-3956) ■장소 협찬 / 스튜디오 밥(02-545-1452)>
http://zine.media.daum.net/ladykh/view.html?cateid=100000&cpid=30&newsid=20120111173914234&p=lady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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