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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시간

10대는 왜 괴물처럼 변하곤 할까

굳이 누구누구라고 이름을 대지 않더라도 군부독재 아래서 치열하게 싸웠던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식 농사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좋은 대학을 갔는가 못 갔는가만 따지는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성적만 형편없는 것이 아니다. 의욕도 열정도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며 한숨 쉬는 이가 의외로 많다. 자식들은, 여전히 지적 호기심이 강하며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열정이 조금도 식지 않은 그들의 부모에게서 별로 좋은 영향을 받은 것 같지 않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권위적인 정부, 일본 군국주의 체제를 답습한 학교, 그 부당함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자식에게도 같은 삶을 강요하는 부모 세대. 이 모든 것에 치가 떨렸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유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꾸린 가정에서 가장 먼저 그 이상을 실현했고, 자식들이 첫 번째 수혜자가 됐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운동권 부모를 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보통 가정에서는 꿈도 못 꿀 무한한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는 모든 작물이 황폐해진 밭 가운데 서 있는 자연농법 신봉자처럼 망연자실한 상태이다. 아이들에게는 날개만이 아니라 뿌리도 필요했던 것이다.





ⓒ한성원 그림

친구들에게 학대당하다가 자살한 대구 중학생의 유서 내용이 눈물겹다. 유서 곳곳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쳐난다. 친구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받아왔지만 지금까지 자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가족에 대한 사랑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아이는 진실을 밝혀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를 꿈꾸었으나 끝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부모·선생님·경찰에게 사실을 밝히지 못한 이유는 단 한 가지. "걔들이 보복할까봐"였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이는 결손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 어머니·아버지와 형을 든든하게 의지해왔음이 분명하다. 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고 극단의 길을 가고 말았다. 고작 중학교 2학년짜리 또래 두 명의 보복이 두려워서 어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10대에 괴물처럼 변하는 아이들

10대 청소년은 덩치가 어른보다 크고 제법 어려운 철학 논쟁에도 끼어들어 자기 의견을 분명히 발표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이만 어린 어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 청소년 수천 명을 상담한 전문 상담가이자 전직 교사인 데이비드 월시가 쓴 < 10대들의 사생활 > (시공사 펴냄, 2011년)을 보면 이는 야무진 착각이다. 소크라테스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청소년의 생각과 행동은 상식을 배반한다. 부모와 어른들은 어째서 종달새처럼 지저귀던 자기 아이가 10대에 접어들면서 괴물처럼 변해가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뇌를 손상하지 않고도 작동 원리를 알아낼 수 있는 현대 연구기법 덕분에 우리는 10년 전의 전문가보다 훨씬 더 많이 청소년을 이해하게 됐다.





< 10대들의 사생활 > 데이비드 월시 지음시공사 펴냄

예전에는 학계에서조차 우리 뇌가 어린 시절에 다 자란다고 믿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는 청소년기에도 단계별로 왕성하게 성장한다. 청소년기에 각 영역이 때맞춰 자라야만 성숙한 성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는 대뇌의 전전두엽 피질이 미완성 상태이다. 그 때문에 똑똑한 아이들이 종종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다. 아이들은 엄청나게 성능 좋은 엔진에 허접한 브레이크를 달고 있는 것과 같다. 이들은 강력한 본능, 극단적인 기분 변화, 혼란스러운 감정 등에 사정없이 압도당한다. 아주 온순한 사람조차도 청소년기에 자기도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력 사건에 휘말리곤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부모가 완력이나 거친 말로 제압하려 하면 역효과만 날 뿐이다. 이 시기 청소년 가운데는 아버지가 아침 인사만 건네도 화를 내는 아이들이 있다. 저자는 부모가 청소년의 브레이크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소년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외부 두뇌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청하고, 또 경청하고, 인내하라고 조언한다.

한겨울, 일요일에 늦잠을 자려고 이불을 끌어안고 있으면 아버지는 종종 이불을 벗기고 창문을 활짝 열곤 하셨다. 그 시절 나도 아버지 목소리조차 듣기 싫었던 것 같다. 요즘에는 거꾸로 내가 아버지처럼 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일요일이면 아이들은 오전 10시가 지나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잘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깨우지 않으면 밥도 안 먹고 저녁 때까지라도 잘 기세이다. 초등학교 때는 그리도 일찍 일어나 귀찮게 하던 녀석들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저자는 '잠을 둘러싼 싸움' 양상을 보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는지 잘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청소년, 늦잠 자도록 내버려두라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춘기에 접어들면 수면 주기가 급격하게 변한다. 졸음을 느끼는 시간대와 의식이 분명한 시간대가 우리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 상태가 된다. 아이들은 한밤중에 초롱초롱해지고 아침이면 초주검이 된다. 게다가 청소년의 뇌는 매일 9시간30분 정도의 수면을 요구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우리가 왜 중·고등학교 때 그렇게 졸렸는지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청소년의 수면 주기에 맞춰 수업 첫 시간을 늦춘 학교도 있다. 새벽에 아이들 잠을 안 재우고 학원으로 내모는 것은 미친 짓이다. 저자는 적어도 주말에는 아이들이 늦게까지 자도록 내버려두라고 권한다. 자수성가형 가장과 자녀 사이를 갈라놓는 가장 큰 주범이 바로 잠이다.

오늘의 청소년은 뇌 발달에 좋지 않은 온갖 환경에 노출돼 있다. 10대의 뇌는 특히 술과 담배, 마약에 취약하다. 성인의 뇌는 이런 중독물질에 노출되면 위험신호를 보내지만 10대의 뇌는 파국 직전까지 잠잠하다. 10대는 약물에 한번 빠져들면 폐인이 될 때까지 멈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방송 매체와 인터넷 매체는 충동과 분노를 담당한 영역만 비대해지게 만든다. 인터넷 게임에 한창 열중인 10대의 뇌를 스캔해보면 전전두엽 피질이 작동을 멈췄음을 알 수 있다.

중학교 상담교사인 손병일씨가 쓴 또 다른 책 < 부모가 비우면 아이는 채워진다 > (뜨인돌 펴냄, 2011년)는 성적이란 유일한 가치가 지배하는 학교에서 우리나라 청소년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증언한다. 다른 반 아이에게 빌린 체육복이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교실 구석이나 사물함 위에 버려져 있다. 함부로 버린 쓰레기와 마구 휘갈긴 욕설, 식판에서 썩어가는 음식 찌꺼기는 아이들의 황폐한 내면을 보여준다. 요즘은 중학교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학년은 3학년이 아니라 1학년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5~6학년 때 담배를 배운 아이들은 입학하자마자 화장실 칸막이 한 칸을 차지하고 2~3학년과 함께 담배를 피운다.

여학생들은 프리허그라고 쓴 종이를 붙이고 아무나 원하는 남학생들과 껴안는다. 아버지를 죽이려고 집에 불을 질러 할머니와 여동생까지 타죽게 하거나 전국 1등을 강요하는 어머니를 죽인다. 남에게 해코지할 만큼 모질지 못한 아이들은 자해하거나 자살한다. 아이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당신들의 알량한 가치가 우리를 미치게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아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유해 환경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외계어'를 쓰는 어른들에 둘러싸여 있다.

< 10대들의 사생활 > 저자에 따르면 어른은 세심하게 관찰하고 지도하며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소년의 미숙한 뇌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며, 그건 그애 잘못이 아니다. 친구를 자살로 몰아 새해를 유치장에서 맞은 두 소년이 가엾다.

문정우 대기자 /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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