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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그밖의 스타

김수현, 은밀하게 한 걸음씩 위대하게 빛날 때까지

가끔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 소년의 순수를 간직했던 스물여섯 청년은 이제 수많은 여성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설레는 남자가 됐다. 스타로서의 파급력에 꽤 안정적인 연기력까지 더해져 20대 남자 연기자를 대표하는 배우가 된 김수현. 쏟아지는 수많은 관심과 시선들 그리고 기쁘지만 때론 버겁기도 할 대중들의 기대 앞에서 과연 부쩍 커버린 그는 어떤 마음과 생각을 품고 있을까. 확실한 것은, 흔들려도 꿋꿋한 이 청년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록적인 흥행을 이끈 양면성의 매력


김수현(26)은 양면성을 가진 배우다. 20대의 싱그러운 청춘 냄새를 풍기다가도 어느덧 수컷의 매력을 뿜어내고, 묵직한 카리스마로 다른 이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다가도 한없이 바보 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KBS-2TV 드라마 '드림하이'에 출연할 때만 해도 김수현은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더벅머리의 '송삼동'이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MBC-TV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왕 '이훤'으로 분해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줬다. 순수했던 청년은 어느 순간 "내 옷고름 한번 풀지"라는 말로 여심을 흔들었고, 영화 '도둑들'에서는 근육질의 상반신을 드러낸 채 전지현에게 저돌적인 키스를 퍼부으며 한층 강력한 남자로 다가왔다.

지난 6월 5일 개봉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놀라운 흥행에는 주인공 김수현의 양면성이 큰 몫을 했다. 김수현이 맡은 역할, 원류환은 북한 최고의 특수부대 요원이다. 그는 남한 달동네에 사는 바보 '동구'로 위장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최고의 특수부대 요원은 동네 꼬마들의 힘없는 돌팔매에도 쓰러져야 하고, 일부러 콧물을 질질 흘리고, 때로는 노상에서 '큰일'까지 봐야 한다. 동네 바보인 '동구'가 사실은 북한의 최정예 스파이이며 바보인 척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또 웃게도 만든다. 영화 속 김수현은 몸 개그에 가까운 바보 연기와 특수부대 요원으로서의 액션 연기를 오가면서 스크린을 휘젓는다. 왕에서 바보로 강등된 김수현은 의외로 "망가지는 바보 연기를 즐겼다"라고 말했다.

"멋진 모습은 인터뷰를 하거나 광고를 찍을 때 많이 보여드릴 수 있잖아요.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배우가 그럴 텐데, 배우는 작품 안에서 몇 배 더 용감해져요. 저는 오히려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이 가벼웠죠."

웹툰을 스크린으로, 표현을 고민하는 즐거움


김수현의 연기력 덕분인지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은 무서울 정도로 내달리고 있다. 개봉 첫날인 6월 5일 49만8천 명, 둘째 날 91만9천 명을 모으며 한국영화 사상 개봉일 최다 관객, 일일 최다 관객 기록을 각각 갈아치웠다. 이후 최단기간 1백만(36시간), 2백만(72시간) 관객 돌파 기록도 썼다.
이 같은 선전에는 누적 조회 수 2억5천만 건을 기록한 최종훈(필명 HUN) 작가의 인기 웹툰이 원작이라는 배경도 있겠지만 김수현이 가장 큰 몫을 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원작 팬들은 영화화가 진행되기 전에 '가상 캐스팅 명단'을 만들었는데, 원류환 역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배우가 바로 김수현이었다. 최 작가는 팬들의 지지 덕분에 김수현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김수현은 원작에 대한 명성을 소문으로 듣고 웹툰을 찾아봤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원작을 찾아봤죠. 제가 캐스팅되기 전이었는데 팬들의 엄청난 지지나 조회 수 때문에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기에' 하는, 그러니까 뭔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으로 보게 됐어요."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리던 김수현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하하하' 웃으면서 읽었는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울컥하는 거예요. '오마니(어머니)'와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원류환의 상황이나 어머니를 향한 효심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달동네 주민들과 가족과도 같은 관계가 돼가는 과정도 가슴을 움직였죠.결국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느새 울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됐어요. 생각 없이 마구 웃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 흘리게 하는 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은밀하게 위대하게'처럼 말이죠."

출연을 결정한 이후 인기 웹툰이 원작이라는 점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원작이 워낙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대가 크고, 그런 만큼 실망도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김수현은 "잘할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어차피 도전하는 입장이니까 실패해도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의젓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웹툰에서는 장면으로만 볼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움직이는 액션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웹툰에서는 노상에서 대변을 보는 신은 단절된 그림으로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어떻게 연결해서 보여줄지 연구할 수 있죠.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만만치 않았던 액션과 감정 연기


영화 초반에 바보 연기로 웃음을 주던 김수현은 중후반으로 갈수록 액션 스타로 변모한다. 촬영 전 몇 달 동안 액션스쿨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했고 덕분에 대부분 대역 없이 소화했다.

"액션스쿨에 훈련을 가면 어떤 날은 두 시간씩 구르기만 했고, 어떤 날은 넘어지고 일어나는 연습만 했어요. 따귀를 맞는 연기를 할 때 타이밍에 맞춰 고개를 돌리는 연습도 했는데, 몸이 무척 힘들었죠. 오랫동안 기본기를 다진 뒤에야 상대 배우와 연결 동작을 할 수 있었는데 그때부터는 신이 났어요.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몸으로 구르던 생각이 났거든요."

이번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장철수 감독과 영화 '아저씨'로 유명한 박정률 무술감독은 그에게 "큰 무리가 없다면 직접 액션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권했다.

"웬만하면 배우들이 직접 해보자고 하셨어요. 손현주 선배님이 주저 없이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제가 못하겠다고 할 수가 없잖아요(웃음). 그 바람에 저도 알겠다고 하고 따랐죠. 선배님들과 액션 연기를 하는 건 부담스러운데, 다행히 제가 (선배들을) 때리는 것보다 맞는 연기가 많아서 마음은 편하더군요. 사실 액션에 감정 연기를 싣는 게 가장 고통스러웠어요. 옥상에서 비를 맞으면서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고생을 했죠. 몸이 젖은 상태에서 촬영을 계속하니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잖아요. 거기다 감정까지 표현하려니 많이 힘들었어요."

영화에는 박기웅, 이현우 등 청춘스타들과 손현주, 고창석, 장광 등 묵직한 중견 배우들이 출연해 함께 조화를 이뤘다. 남자 배우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촬영장이다 보니 남성적인 '파이팅'이 있었다고 한다. 쟁쟁한 선배 배우들은 각자의 개성에 맞는 방법으로 후배들을 다독이고 가르쳤다고.

"손현주 선배님은 원래는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신데, 맡은 역할이 워낙 센 편이라 분장을 하고 나면 연기에 몰입하기 위해 말씀이 없어지셨어요. 장광 선생님은 아버지같이 든든한 분이시죠. 회식 자리에선 신정근 선배님이 스타였어요. 홍경인 선배님은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하셨는데, '마누라 때문에 이 작품을 하게 됐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저에게 '우리 마누라가 너 나온다니까 무조건 하래'라고 하셔서 다 같이 웃었어요."

가족에게는 고양이 같은 아들, 연애 앞에서는 느긋한 남자


김수현은 인터뷰 내내 진중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그러다 가끔 기회가 오면 숨겨두었던 유머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극중에서 내내 입고 나오는 초록색 트레이닝복에 대해서 설명할 때도 그랬다.

"같은 색 트레이닝복이 네 벌 준비돼 있었어요. 평상복 하나, 와이어에 매달려 액션 촬영을 하기 위한 것 하나 그리고 땅바닥에 구르는 용으로 한 벌이요.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고창석 선배님이 입고 나오는 상구용이었죠. 그건 라지(Large) 사이즈였어요(웃음)."

김수현이 연기한 원류환은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항상 편지를 쓰는 효자다. 실제로는 어떤 아들이냐고 묻자 자신을 "고양이 같은 아들"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저는 원류환 같은 아들도 아니고, 동구 같은 아들도 아닌 그냥 김수현이에요. 평소에는 아주 시크하다가도 어떨 때는 애교를 부리면서 안기는 고양이 같은 편이죠. 제가 가장 시크해질 때는 촬영할 때예요. 촬영을 하다 보면 고민도 많아지고 체력적으로도 지치니까 말수가 적어져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연기 스트레스가 엄마한테 가죠. 그래도 촬영이 끝나고 나면 외식하러 가자고 애교를 부려요. 그러면 엄마가 무척 좋아하세요."

그 또한 원류환처럼 평범한 삶을 꿈꾼다는 점은 같다. 스타덤에 오른 뒤에는 평소에 즐기던 축구나 배드민턴도 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술집에도 못 가게 된 것이 아쉽다.

"지난해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큰 인기를 얻은 뒤부터 그런 게 더 심해졌어요. 사실 밖에 나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데 저도 모르게 병적으로 얼굴을 숨기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더 작아지고 겁도 많아졌죠. 계속 위축되다가 '나 이런 놈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후회가 됐어요. 요즘은 그나마 그런 부담감을 많이 덜어낸 상태예요. 여전히 집 밖에는 잘 못 나가지만 로봇을 조립하거나 만화책을 읽으면서 해소하려고 하죠. 「원피스」, 「베르세르크」, 「몬스터」, 「피치걸」, 「나나」 같은 만화를 즐겨 봐요."

마치 연기로 받은 스트레스를 잊으려고, 혹은 머리를 식히려고 만화책을 본다고 대답하지만 더 이야기를 나눠보니 실상은 달랐다. 김수현은 만화책을 보면서 웃는 중에도 일을 놓지 않고 있었다.

"만화책을 보면 연기할 때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돼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 캐릭터가 더 선명하게 떠오르죠. 어떤 인물의 행동이나 대사를 구체적으로 떠올릴 때도 큰 도움이 되고요. 예를 들어 지난해 '해를 품은 달'에서 연기한 '이훤'의 캐릭터 설정은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 「창천항로」에서 모티브를 얻었던 거예요."

연기를 향해 무섭도록 질주하는 그는 연애에서는 속력을 줄였다. 그는 "연애는 2년 후인 스물여덟 살쯤 하고 싶다"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남자가 가장 남성적 향기를 풍기면서 매력을 발산하는 나이가 28세인 것 같고, 여자는 27세가 가장 매력적인 것 같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설명을 내놓은 건지 처음에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김수현의 말을 듣다 보니 또 그게 맞는 것도 같았다. 본인이 가진 매력을 동원해 상대를 설득시키는 힘이 엿보였다.

거친 길로 질주하는 배우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장철수 감독은 김수현에 대해 "예쁘고 편한 길로 가려고 하지 않고 거친 길로 질주하려는 배우"라고 말했다.

장 감독은 "성공이 불투명했던 드라마 '해를 품은 달'도 자신이 직접 선택해 출연하는 뚝심이나 드라마가 크게 성공한 뒤 선택의 기회가 많이 주어졌을 텐데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골라 바보 연기와 액션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렇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를테면 초반에 넘어지고 구르며 망가지는 연기도 보통의 배우들이었다면 이미지 때문에 꺼릴 수 있다. 그러나 김수현은 되레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라는 수준을 넘어 '남들이 상상도 못할 수준으로 해낼 수 있다'라는 걸 입증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도 보여줬다는 것.
김수현이 가고자 하는 길은 굉장히 멀고 또 굉장히 높아 보인다. 그만큼 배우로서 욕심과 야심이 크다. 야심만 크고 성취가 없다면 비극이겠지만, 김수현은 예상치 못한 항로를 선택하고 또 그 선택이 옳았다는 걸 보여주는 배우다. 그런 점에서 김수현의 질주를 지켜보는 일은 앞으로도 매우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 / 박은경 기자(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http://media.daum.net/zine/ladykh/newsview?newsid=20130703142908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