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국어를 가르치지 못하는 나라 | ||||||||||||||||||||||||||||||
[민병권 변호사의 독일 이야기] ⑥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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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도시 자체가 숲으로 둘러싸인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우리 아파트는 시내의 외곽에 있어서인지 숲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 아들과 함께 아파트를 나와 걸어서 숲길로 들어섰다. 불과 5분밖에 안 걸었는데 어느새 깊은 산속에 온 듯이 울창한 나무 때문에 하늘을 볼 수 없었다. 깊은 숲속의 촉촉한 공기를 마시며 우거진 나무사이로 난 길을 여유부리며 걸었다. 그러자 저 멀리에 공원이 보였다. 나무를 잘라서 듬성듬성 만든 울타리로 둘러싸인 공원! 나중에 교민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이 공원은 아이들을 위한 공원이란다. 광활한 산속에 양, 사슴, 말 등 가축들을 방목하고, 그 속에서 아이들이 동물들과 교감하는 자연상태를 최대한 유지시킨 아이들의 놀이터란다. 공원에 들어서자 벌거벗고 뛰어노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래를 수북이 쌓아 놓고 그 사이에 물을 흐르게 하였는데, 아이들은 꼬추를 내놓고 마치 태초의 인간들처럼 자연스럽게 물장난 치며, 모래성을 쌓으며,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놀고 있었다. 주변 벤치에는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앉아 자기들끼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아이들의 노는 모습만 바라다 볼 뿐 아이들의 노는 세상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우리 어린 아들도 신기한지 이들을 한 참을 바라다보았다.
도시를 만들 때도 자연을 최대한 살리려고 하고, 요리도 그다지 요란스럽지 않고 수수하게 차리고, 입는 옷도 다른 사람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깔끔하게 입고, 우리네 여인들처럼 외출할 때 분장(화장?)도 하지 않고, 차를 살 때도 남의 이목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현 위치에서 적절한 차를 고르고... 독일에는 ‘자연유치원’이 꽤 많이 있다. 그 곳에는 교사(校舍)가 없다. 바로 ‘자연’ 자체가 교사(校舍)이다. 아이들은 정해진 숲속에서 모여 유치원에서의 일과를 시작한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매일같이 숲속에 마련된 빈터에 모여 선생님으로부터 오늘 할 일에 대해 얘기를 듣는다. 숲속에 서 있는 나무, 땅바닥, 시냇물, 굴러다니는 돌맹이,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새들...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의 훌륭한 교구이다. 아이들은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서 있는 나무에 이름을 붙여서 재미난 얘기를 만들어 내고, 돌맹이로 탑을 쌓기도 하고 셈도 세고, 흐르는 시냇물위로 나뭇잎을 띄워 시합을 하고, 새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노래를 부르고... 그런데 이런 것들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큰 틀만 말해주고, 세부적인 것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즉흥적으로, 그래서 창의적으로 만들어 낸다. 매일 보는 나무가 어제는 ‘헨델’이 되었다가도, 오늘은 ‘로마병정’이 되기도 하고, 내일은 ‘메르켈 총리’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자연이 되고, 자연이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 어릴 때부터 우리 인간이 자연에서 왔음을 아주 자연스럽게 가르쳐준다. 그리고 독일 유치원에서는 국어(독일어)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자기 이름 쓰는 것만 배울 뿐 국어를 따로 배우지 않는다. 자연유치원이나 일반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정해진 큰 틀의 프로그램에 따라 노는 것이 주된 수업이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수하기 보다는 아이들을 잘 관찰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2년 동안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그 아이의 성격, 신체적 특성, 지능, 재능 등을 전반적으로 잘 살펴서 그 아이가 장차 어떤 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어떤 것들을 보완해야 하는 지를 밝혀내는 것이 선생님의 몫이고, 그 것을 잘 하는 선생님이 훌륭한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몸이 쑥쑥 큰다. 그리고 마음도 쑥쑥 큰다. 아이의 잠재력은 그 한계를 가늠하기 어려운데, 잠재력을 깨우쳐 아이가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창의적인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 그 것을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최대의 성장기에 있는 유치원 시기에 오감을 충분히 자극하고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필 수 있게 하는 교육이 절실한데, 독일의 교육이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유치원에 가기전인 세살, 네살 된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구구단을 가르치는 우리네 현실에서는 EQ가 높은 창의적인 21세기형 인간을 길러내기가 쉽지 않다. 잠재력이 끝없는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순간 아이는 자신의 사고를 한글에 국한시켜 그 것을 벗어난 더 넓은 정신세계로의 여행을 할 수 없고, 구구단의 기술적인 셈법을 암기하는 순간 수(數)의 자연스러운 변화무쌍을 발견해 내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공부’라는 것이 ‘스트레스’다 라는 인식을 너무 어릴 때부터 심어주게 된다. 세살 박이 아이에게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자동차 장난감 보다, 투박하게 네모난 나무 장난감을 주는 것이 아이의 상상력을 더 자극시킨다.
얼마 전 TV에서 비디오 증후군을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조금은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우리네 교육이 과연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에피소드인 것 같다. |
출처 : 한국전래놀이협회
글쓴이 : 아자쌤(고갑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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