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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우리나라 드라마소식

'최고의 사랑' 독고진의 치명적 매력 분석

스타가 등장하는 드라마는 자주 있었다. 방송계를 그린 드라마도 간혹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기에는 다른 드라마들처럼 연기에 대한 열정이나 음악에 대한 자의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현재의 톱스타와 왕년의 아이돌 스타, '스타들'이 있을 뿐이다.

< 최고의 사랑 > (MBC 수·목 드라마, 홍정은·홍미란 극본, 박홍균·이동윤 연출)은 연기자나 가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스타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방송계의 현실과 그 이면을 그린 < 온에어 > 와도, 방송가의 사람들을 포착한 < 그들이 사는 세상 > 과도 다르다. 결국 이 드라마는 스타라는 존재, 스타라는 현상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100만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사람이 < 슈퍼스타 K > 오디션에 몰려들고, < 나는 가수다 > 에 대한 논란과 관심이 도를 넘은 현실에서, 어쩌면 스타란 계급상승이 불가능해진 우리 시대 마지막 욕망의 대상인지도 모른다. 스타와 스타가 되려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현 체계 안에서 시스템의 이면이나 바깥은 없다. 우리 모두가 그 세계 안에 있다.





ⓒMBC < 최고의 사랑 > 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톱스타 독고진(차승원·왼쪽)과 안티 팬을 몰고 다니는 몰락한 연예인 구애정(공효진·오른쪽)은 동전의 양면으로 존재한다.

< 최고의 사랑 > 은 이 같은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이미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연예계의 현실을 폭로하고자 정색하지 않는다. 그저 가볍고 유쾌하게 그 세계의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그곳이 생존경쟁의 정글임을 주인공들 모두가 내면화했다. 그 룰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이용하면서 살아남는 것이 인물들의 목표이다. 그리고 그 같은 현실 안에서 상황과 사건들을 촘촘히 엮고,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해서 최고의 로맨스를 뽑아내는 것이 이 드라마의 목표이다. 계획은 꽤 성공적이다.


계급 갈등에서 스타라는 권력 갈등으로


여기에서 로맨틱 코미디 남녀 주인공 간의 계급 갈등은 스타라는 권력을 둘러싼 갈등으로 대치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톱스타 독고진(차승원)과, 생존을 위해 인지도를 팔아야 하는 비호감 연예인 구애정(공효진) 간의 간극이자 갈등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독고진이 누리는 권력은 '타고난' 부나 계급이 아닌, 톱스타라는 위치가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구애정이 '국보소녀'라는 아이돌 스타로 과거에 누렸으나 그 후 10년 동안 상실한 것이며, 애정의 라이벌인 같은 팀 출신 강세리(유인나)가 현재 누리는 것이다.

부상에서 몰락으로, 그 권력 관계는 끊임없이 요동친다. 따라서 한의사 윤필주(윤계상)까지 얽힌 네 사람의 사랑을 더 큰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연예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이다. 독고진과 강세리가 공식 커플이라는 허울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은 10억원대 동반 CF 같은 현실적 필요 때문이다. 독고진의 구애를 거부한 구애정이 자존심을 접고 독고진의 음반 후원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이들 사랑의 위기가 되며, 구애정이 윤필주와의 리얼 연애쇼에 몰두하는 것이 독고진의 폭풍 질투를 몰고 오는 것이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톱스타와 안티 팬을 몰고 다니는 몰락한 생계형 연예인, 독고진과 구애정은 정확히 동전의 양면으로 존재한다. 우상이자 선망의 대상은 바로 다음 순간 희생양이자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들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지니지만, 그러한 불안과 생존의 긴장을 공유한다.

독고진이 세계적인 명감독 피터 잭슨에게 '까일까' 두려워하고, 그 사실이 알려질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구애정이 연예오락 프로그램 < 세바퀴 > 에서 떨려날까봐, 편집당할까봐 불안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처만 받으면서도 구질구질 버티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구애정의 세계는 곧 독고진이 '극복!'하며 살아남은 세계이다. 독고진이 구애정에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독고진 자신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가 '싼티·빈티'의 궁색한 그녀에게서 자신의 그늘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씁쓸함과 연민으로 사랑이 시작되었다.

구애정과 독고진의 사랑은 애정에게 일생일대의 회생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기도 하다. 그녀는 독고진 덕분에 그의 소속사에 들어가고 음반 출시 기회도 잡지만, 또한 그 사랑으로 기획사에서 바로 내쳐질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독고진 역시 난생처음 가슴 뛰는 사랑을 알았으나, '급'이 떨어지는 구애정을 사랑하면서 스타 인생 일대의 위기를 맞았다. 기회와 위기는 항상 동시에 작동한다. 스타에 대한 선망과 질시가 그러하고 그들에 대한 욕망과 폭력이 늘 함께 가듯이.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온 스타


그러나 위기가 강할수록 사랑은 깊어지기 마련이다. 좌독고 우필주, 비루하고 초라한 구애정에 대한 두 완벽남의 사랑은 여성들을 위한 맞춤형 판타지를 제공한다. 동료 폭행에 음주 폭력, 야쿠자 첩설까지 온갖 스캔들과 가십을 달고 다녀도,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조차,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들에 대한 판타지. 오만방자한 독고진은 오만방자할수록 구애정에 대한 그의 사랑이 더욱 빛나고, 훈남 윤필주는 상처투성이 구애정에게 더욱 따뜻한 치유책을 제공한다.

그런데 독고진은 < 시크릿가든 > 의 김주원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김주원의 폐소공포증을 뛰어넘는 독고진의 인공심장이라는 트라우마. 이 심약한 인물은 그 무소불위의 권력을 상쇄해주는 유치함과 쩨쩨함으로 여심을 공략한다. 그는 심박수 표시기와 장난감 마이크를 들이밀며 귀여운 아양떨기와 떼쓰기를 오가고, 동백꽃·진달래꽃으로 처연한 동정표까지 얻는다. 완벽한 보디의 카리스마 차승원은 무너지고 복구하고 망가지고 수습하면서 로맨틱 코미디의 '완소남'으로 거듭난다. 그렇게 톱스타 독고진은 '똥꼬진'이 되어 한 발짝 더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스타들과 그들을 욕망하는 우리의 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신주진 (드라마 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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