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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우리나라 드라마소식

향기보다 몸으로 기억하는 사랑 ‘여인의 향기’

▶김은영의 TV 아웃

SBS < 여인의 향기 >
< 여인의 향기 > 는 몸으로 하는 사랑을 제대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몸으로 하는 사랑에 대한 영화 < 심장이 뛰네 > 를 봤다.

고독하고 무료한 일상을 살던 서른일곱 살 여교수가 포르노 배우가 되어 스물세 살 상대 배우와 육체적 교감을 나누며 사랑에 빠지고, 자신도 모르게 사랑스런 여인이 된다. 훗날 대학에 사표를 던지고 혼자 남은 여교수는 청년과의 사랑을 회상하는데, 기억에 남는 건 그의 몸뿐이더라는 고백으로 영화는 끝난다.

몸의 기억이 마음의 기억을 이기는 것은 맞닿은 두 사람의 몸이야말로 감정의 가장 강력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리라. 요즘 TV에서 몸으로 하는 사랑을 제대로 보여주는 드라마는 < 여인의 향기 > (SBS)다. 30대 생활 연기의 달인으로 인정받는 김선아(이연재 역)와 군복무 후 눈빛이 한층 깊어진 이동욱(강지욱 역)의 앙상블이 좋은 작품이다.

자기주장 확실하고 마음 넉넉하고 알고 보니 회사일도 잘했던 연재의 개념 충만한 성품도 좋고, 사건을 무리하게 꼬지 않고 인물의 감정을 깔끔하게 푸는 스토리라인도 좋다. 그러나 가장 보기 좋은 것은 눈물겨운 다이어트로 < 내 이름은 김삼순 > (MBC, 2005)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낸 김선아와 연일 러닝머신과 샤워장을 오가며 몸매 과시에 바쁜 이동욱의 미끈한 몸이다.

두 사람의 가슴 뛰는 사랑을 몸으로 보여주려는 노력은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젊고 늘씬하고 부유한 세경(서효림)을 물리치고 지욱의 마음을 차지한 연재의 스타일링을 보라. 세경이 굵은 아이라인, 고집스런 생머리, 파워숄더 의상과 킬힐로 무장한 반면, 연재는 자신이 어렵지 않은 여자이며 자유로운 영혼임을 온몸으로 선언한다. 네크라인이 넉넉하게 파인 캐주얼 블라우스와 탱크톱 드레스(의 효과에 대해서는 < 무비위크 > 490호 섹스 코드 '여자들의 노출 전략'을 참조하라), 연한 메이크업, 날씬한 다리를 강조하는 숏 팬츠가 증거다.

지욱을 돋보이게 하는 무기는 물이다. 오키나와의 비오는 들판에서, 한강변의 수영장에서, 잠 못 드는 밤의 샤워 부스에서 그는 탄탄한 가슴 근육과 섬세한 등 근육을 뽐낸다. 날렵한 수트와 액세서리가 정렬된 드레스룸도 근육 전시회에 맞춤한 장소다. 배우의 몸으로 감정의 밀도를 높이는 연출은 탱고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연재와 지욱이 춤출 때 카메라는 두 사람의 손과 가슴과 입술과 발을 번갈아 클로즈업한다. 한 화면 안에서 닿을 듯 말 듯한 둘의 거리가 어찌나 아슬아슬한지 웬만한 키스 장면보다 긴장감이 더하다.

< 여인의 향기 > 의 시선은 배우의 육체도 연기의 중요한 재료임을 일깨운다.

그러나 몸 예찬이 거듭될수록 드라마가 주장하는 평범한 30대 여성의 로맨스는 너무 아득한 판타지가 되어간다. 비록 극 초반의 뿔테 안경과 '뽀글이' 파마, 약간의 청승과 체념을 버무린 김선아의 연기 스타일이 연재를 평범한 사람으로 여기게 했지만, 연재를 연기하는 배우의 몸은 평범한 30대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드라마의 마지막 카드, 담낭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연재의 사랑의 결말이 몹시 궁금하다.

둘의 사랑은 연재의 죽음으로 완성될 테고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설정도 판타지겠지만, 이왕이면 몸으로 하는 그들의 사랑이 소멸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지욱의 심장을 뛰게 한 연재의 몸이 암세포에 먹혀 시들어갈 때도 아름다울 수 있다면, 적어도 < 여인의 향기 > 는 여배우의 아름다움은 젊음과 섹시함 너머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희소한 작품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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