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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우리나라 드라마소식

‘겨울연가’ 그 후 10년…윤석호 감독을 만나다

윤석호 감독의 드라마에는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의 변치 않는 사랑이 담겨 있다. '한류의 전설' < 겨울연가 > 이후 공고히 구축된 윤석호표 로맨스는, 사랑의 유통기한이 점점 짧아지는 퍽퍽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따스하게 자라나고 있다.

-내년 1월이면 < 겨울연가 > (KBS2, 2002)가 방영 10주년을 맞는다. 세월의 흐름과 무관하게 여전히 어제 나온 드라마처럼 회자되고 있다. 소감이 궁금하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나 됐다.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 < 겨울연가 > 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 겨울연가 > 를 통해 내 일에 대한 방향성이 분명해졌다. 많은 에너지를 얻었고,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됐다. 내게는 은혜로운 작품이다. 이 드라마가 품은 추억에 대한 긍정적 정서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이 가진 좋지 않은 면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곤 한다. 짠하면서 아스라한 감정들이 생기는 거지. 뮤지컬 < 겨울연가 > 도 그런 마음에서 기획됐다. 10주년을 맞아 사람들과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데, 내가 그 드라마를 또 만들 수는 없으니까.(웃음)

-그래서인지 뮤지컬은 오리지널 스토리를 그대로 살려 압축했더라. 원작의 연출가로서 '이것만은 꼭 지켜달라'고 제작진에게 주문한 점이 있나? (윤석호 감독은 뮤지컬 < 겨울연가 > 에 총괄 프로듀서 겸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다.)

뮤지컬은 2006년 일본에서 먼저 공연됐다. 그때는 장르적 차이를 고려해 이야기를 많이 바꿨다. 엔딩도 비극이었지. 그렇다 보니 관객들이 당황스러워하더라. 일본 팬들은 < 겨울연가 > 의 정서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해 준다.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 뮤지컬을 보러 온 것인데, 전혀 다르니 놀랄 수밖에. 그래서 이번에는 최대한 원작 느낌을 살리려 했다. 오리지널 연출가이다 보니 아무래도 드라마 장면이 여럿 재현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웃음) 무대 언어로 옮기며 뮤지컬 전문가들과 밸런스를 맞추었고, 생각대로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럽다.

뮤지컬 겨울연가

2012년 3월 18일까지 | 명보아트홀 하람홀 | 070(7019)6707- < 겨울연가 > 는 영화화 제의도 있었다면서?

오래전 일이다. '일본에서 반응이 좋다'는 얘기가 막 흘러나오던 때였으니, 감각이 아주 빠른 사람이었다. 진을 다 빼면서 완성한 작품을 또 영화로 만들자고 하니 당시에는 너무 우려먹는 것 같았다.(웃음) 아마 상업적 측면만 생각했다면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일본에서는 인기 드라마의 영화화가 의례적으로 이뤄지거든. < 노다메 칸타빌레 > 나 < 꽃보다 남자 > 만 봐도 그렇지 않나. < 겨울연가 > 는 배용준 최지우의 이미지가 너무나 크다. 차라리 시간이 더 흐른 후에 젊은 배우들과 다시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영화 연출에도 관심이 있나?

영화는 처음부터 하고 싶었다. 원래 문학을 좋아해 시나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쪽 재능은 좀 부족한 것 같더라.(웃음) 당시 인기를 끈 < tv학관 > (KBS1, 1980)을 보면서 '저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V 영화 같은 개념이었거든. 방송국에 들어가면 월급도 받으며 좋아하는 일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꿈은 항상 있었지. < 느낌! > (KBS2, 1994) 성공 이후 < 칼라 > (1996)라는 드라마로 실험을 했다. 보통 미니시리즈는 이야기에 흐름이 있잖나. < 칼라 > 는 여덟 가지 컬러를 선정해 단막극처럼 묶었다. 크쥐슈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 세 가지 색 > 시리즈처럼.

-일본으로부터 영화 연출 제안이 꾸준히 들어올 것 같은데? 일본 영화 특유의 애잔한 감수성이 감독님 작품 스타일과 잘 어울린다.

그렇다. 그 부분이 나와 잘 맞는다. 한국 영화 관계자들과 미팅해 보면, 내가 추구하는 잔잔한 멜로가 국내 시류에 잘 안 맞는다고도 이야기하더라. 상업적 측면에서는 무언가 강하고 자극적인 게 필요하니까. 일본에서는 순애보를 다룬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 (2004) < 지금, 만나러 갑니다 > (2005) <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 (2007)와 같은 영화들 말이다. 사실 논의 중인 작품은 있는데, 아직은 준비 단계다.

-사계절 시리즈는 1편 < 가을동화 > (KBS2, 2000)를 만들 때부터 염두에 둔 기획인가?

그런 건 아니었다. '동화'라는 콘셉트를 먼저 정하고 거기에 '가을'을 붙였다. 드라마 편성이 가을로 잡혔더라고.(웃음) 드라마가 성공을 거둔 뒤 사계절 시리즈가 구체화됐다. 그 다음 편부터는 방송국과 논의해 편성 시기를 조정했지.

- < 가을동화 > < 겨울연가 > 에 비해 < 여름향기 > (KBS2, 2003) < 봄의 왈츠 > (KBS, 2006)는 반향이 크지 않았다.

나는 '연작'이라는 일관성을 가졌는데, 그 사이 세상이 바뀐 거지. 쿨한 게 세련된 거라고 인식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지고지순한 여주인공보다 < 내 이름은 김삼순 > (MBC, 2005)의 삼순이(김선아)처럼 직접적인 화법의 인물이 각광받았다. 아마 타이밍에 맞춰 로맨틱 코미디를 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고민이 많았지만, 사계절 시리즈는 정서적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 보니 시대와 작품 간에 언밸런스인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보다 시간은 더 흘렀다.

그래서 지금 촬영 중인 < 사랑비 > 에는 세 가지 사랑을 믹스할 생각이다. 전반부에 아날로그적인 1970년대 사랑이 등장하고, 그 뒤에 2012년 디지털 세대의 사랑이 이어진다. 여기에 어느덧 중년이 된 어른들의 사랑이 섞이는 거지. 1970년대는 사회적으로 아픔이 많은 시기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늘이 있으면 햇빛도 있다. 당시에도 그랬다. 억눌린 사회에 맞서 싸우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음악과 그림에 빠진 청년들도 있었다. < 사랑비 > 를 통해서는 그 시절 젊은이들의 낭만을 보여주고 싶다.

- < 사랑비 > 촬영은 얼마나 진행됐나? 사전 제작으로 이루어져 영상미에도 공들일 수 있겠다.

1회 반 정도? 아직 많이 남았다. 방영 시기는 논의 중인데, 아마 4~5월경이 되지 않을까. 완전한 사전 제작 방식은 아닐 것 같다. 인터넷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야 효과적인 측면도 있거든. 100퍼센트 사전 제작을 하게 되면 드라마가 가진 생명력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절반 정도만 만들어둘 생각이다. 현재는 1970년대 분량을 찍고 있다.

-최근 '주연배우 스케줄 문제로 인한 내부 갈등'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어휴, 그건 정말 아니다! 인터넷 검색 순위도 시청률과 비슷한 것 같다. 평범함보다는 자극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니까. 스케줄이 하도 복잡해서 그냥 매니저들과 모여 상의한 것뿐인데 마치 비상사태라도 난 것처럼 부풀려졌다. 그런 걸 보면 참…, 어지럽다.(웃음)

-이번에는 배우의 어떤 매력을 발견해 낼 생각인가?

장근석에게는 여러 가지 면이 있다. 요즘 아이 같은 느낌이 강한데, 트렌디하고 파워풀한 분위기를 순수한 감정의 결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캐릭터의 배우다. 윤아에게는 또래와 다른 이미지가 있다. 김희선 명세빈 손예진 등 고전적 여성미를 가진 배우들과 주로 작업해 왔는데, 요즘은 그런 캐릭터가 많지 않다. 그런데 윤아에게서 그런 면을 발견했다. 실제로는 성격이 무척 쾌활해서 후반부에 그런 모습을 많이 끄집어낼 생각이다.

- < 겨울연가 > 를 통해 정립되었다는 '드라마 철학'이 < 사랑비 > 에 어떻게 드러날지 궁금하다.

< 겨울연가 > 로 큰 사랑을 받으면서 '한 사람쯤은 순수한 사랑에 대한 드라마를 계속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간다. 순하게 살기 어려운 세상이지. 나도 드라마처럼은 못 산다.(웃음) 그래도 판타지를 통해 위로받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사람과 비오는 날 우산을 나눠 썼을 때 느끼는 감정? 한쪽 어깨가 비에 젖는 줄도 모르는 첫사랑의 설렘 말이다. 중요한 건 '카타르시스'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아, 좋다…!'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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