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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우리나라 드라마소식

"세종의 지독한 트라우마를 상상했다"

< 대장금 > < 선덕여왕 > 등을 통해 사극의 새 이정표를 제시해 온 김영현‧박상연 작가가 2011년 < 뿌리깊은 나무 > 를 들고 돌아왔다. 개국 초기라는 혼란기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조선의 왕 세종을 통해 두 작가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본 작업에 쫓겨 시간을 내기 어려운 두 작가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 대장금 > < 선덕여왕 > 과 비교해 < 뿌리깊은 나무 > 는 어떤 부분에서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처음 구성하실 때 주로 감안했던 부분은 어떤 것인지요.

진화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각각의 드라마마다 주제와 소재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구성법이 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만 캐릭터에 더 천착한 부분은 있습니다. 그것은 < 뿌리깊은 나무 > 가 < 대장금 > 이나 < 선덕여왕 > 처럼 50부작 이상의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캐릭터를 좀 더 집중적으로 보여주어야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 대장금 > 과 < 선덕여왕 > 은 일종의 성장사극입니다. 그런데 < 뿌리 깊은 나무 > 는 그 부분이 간략히 다뤄졌습니다. 보편적인 사극의 '성장동력'을 사용하지 않은 셈인데, 이를 어떻게 보완하셨는지요.

< 대장금 > 과 < 선덕여왕 > 이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성장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라면, < 뿌리깊은 나무 > 의 경우 살인사건이라는 외부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로 이것이 대체됩니다. 그것을 보완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각각의 방식은 다른 장점이 있는 듯합니다. 앞의 방식은 이해가 쉽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뒤의 방식은 집중도와 몰입감이 있는 대신, 심리로 몰아가다 보니 이해의 폭이 좁아지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원작이 한 인간의 생을 다룬 것이 아니고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방식이 맞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 대장금 > 과 < 선덕여왕 > 에서는 '악역'이 스스로 명분을 가지고 행동하고, 주인공을 능가하는 카리스마를 보입니다. 두 작가님의 악역관은 무엇인지….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안타고니스트의 의지는 주인공 이상으로 강하다'

'스스로 신념에 차지 않고 명분이 없는 인물이 추진력이 있을 수는 없다'

'세상에 악한 사람은 없다. 단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 뿐'(열혈강호중에서)

'선이 상대적인 것보다 악은 더욱 상대적이다'

이번 원작 소설은 고전 팩션으로 상당히 주목받았던 작품입니다. 원작의 줄기 중 꼭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이고, 큰 변화를 준 부분은 무엇인가요. 왜 그런 변화를 주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원작에서 취한 것은 한글창제의 과정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발상입니다.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때도 그 부분이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었고, 그 부분 때문에 각색을 하겠다고 결정했었으니까요.

변화를 준 부분은 이도의 캐릭터와 비중을 상당히 높인 부분, 수사관인 강채윤에게 이도와 얽힌 사연과 명분을 준 부분 등입니다. 적을 정도전의 사상과 연결시킨 부분도 그렇습니다. 이는 글자를 통해 왕 이도와 백성 강채윤, 사대부 정기준 각각의 사상과 대립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 뿌리 깊은 나무 > 에서 < 선덕여왕 > 과 < 추노 > 와 < 성균관 스캔들 > 을 떠올리곤 합니다. 다른 사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가 있나요?

정확하게 어떤 부분인지는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기호가 늘 바뀌고 있음을 느끼고 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반영은 되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외국 정치드라마 중에서는 < 웨스트윙 > 을 떠올리게 됩니다. 세종을 어떤 인물로 만들어야겠다고 구상하신 건가요?

< 웨스트윙 > 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세종에 대해서는 자료로 보여지는 세종의 업적이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그래서인지 그 정도로 업적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의 이면에 강한 트라우마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할 무엇이 있지 않고, 그렇게까지 끊임없이 업적을 쏟아낼 수가 있을까' 하는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질투와 부러움이 반영된 것이죠. 당위가 사람을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고통과 번민이 사람을 더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즉,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왕의 당위보다는 '대체 난 왜 백성을 사랑해야 하는 거야'라는 번민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 뿌리 깊은 나무 > 를 통해서 이 시대에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시청자들이 이 사극을 어떻게 보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이도가 왕위를 물려받은 때는 조선이 개국한 지 26년 되던 해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이 세워진 지 66년입니다. 새 나라를 어떻게 끌고갈지 왕도, 백성도, 사대부도 모두 치열하게 고민한 것처럼 우리도 각각의 입장에서 그래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작가로서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런 왕이 있었으면 좋겠다보다는, 나는 국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어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어떤 인물을 다루든간에 TV드라마에선 극적인, 즉 드라마틱한 인물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우리 가까운 정치사에 가장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인물이 노무현대통령이기 때문에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도의 캐릭터는 세종의 실제의 에피소드에서 가져온 면이 더 많습니다. 똥지게를 진 일이나, 엄청나게 많은 경연을 했던 일이나, 최만리와의 논쟁에서 불같이 화를 냈던 일 등등이요. 그것을 드라마에서는 조금 더 인간적인 면을 부각한 것뿐입니다.

현대극을 쓸 때와 사극을 쓸 때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가요.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는 없습니다만, 현대극은 지금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므로 세부적인 디테일에서의 리얼리티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이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권력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재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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