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TV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이 중반부에 진입했다. 향기와 파혼한 지형은 서연에게 청혼하고,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서연은 누구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갈등한다. 경기도 파주 촬영 현장에서 만난 주연배우 3인방의 생생한 이야기, '김수현표' 드라마의 인기 요인,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 등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을 파헤쳐본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천일의 약속'(이하 '천일') 세트장에서 서연 역의 수애, 재민 역의 이상우, 향기 역의 정유미를 만났다. 당시 수애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온 직후였다. 다소 긴장된 표정의 그녀는 '천일'의 첫 대본 리딩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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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표'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유난히 대사가 길고 많기로 유명하다. 수애도 서연의 길고 긴 대사를 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1회에서 지형에게 향기와 결혼해야 하니까 헤어지자고 하는 똑 부러지는 모습은 배우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강인한 면이 느껴지는 인물이에요. 남자와 헤어질 때 그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요. 제가 평생 두 번 다시 할 수 없을 것 같은 대사는 서연이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형광펜', '가위'를 오열하며 외치는 대목이에요. 사실 여러 가지로 부담이 큰 작품이죠."
그녀는 사촌 오빠 재민으로 등장하는 이상우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는 드라마 속 재민 오빠처럼 현장에서도 여러 배우들에게 자상하게 대해준다는 것. 이상우는 그녀의 칭찬에도 입을 꾹 다문 채 바닥만 보며 미소를 지었다. 수애에 따르면 그는 '말이 없어 재미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다.
"'김수현 작가의 남자'라는 말은 자주 듣고 있습니다(웃음). 배우로 저를 좋게 평가해주는 데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글쎄요, 김 작가님께 잘 보이는 비결은…. 그냥 가만히, 조용히 있으면 되는 것 같은데요? 대본에 대해서 작가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겁니다. 흠."
그는 '천일'에 등장하는 재민에 대해 "일종의 내레이터 같은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서연과 지형 사이를 오고가며 여러 가지 미묘한 상황을 밀어간다는 것. 요즘 그는 사촌 동생을 돕고 싶은 애절한 눈빛, 안타까운 마음에 몰입하는 중이다.
"무뚝뚝한 성격이라서 향기처럼 연애는 못해봤어요. 제가 남자라면 향기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어 할 것 같은데…. 요즘 '오빠 바보'라는 별명도 생길 정도로 향기의 순애보가 통하긴 했나 봐요. 곧 지형 오빠가 돌아선 다음에 너무 많이 울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웃음)."
향기 역의 정유미도 남다른 각오를 전했다. 그런데 이날 지형 역의 김래원은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수애는 "래원씨랑 베드신이 많았는데,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오히려 쉽게 촬영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이어 그녀는 30세에 알츠하이머를 앓는 역할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제 나이에 기억을 잊어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 와 닿는 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어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제가 만약 알츠하이머에 걸린다면, 서연처럼 강하게 행동하진 못할 거예요.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아요.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고모와 문권과 의 기억에서 이별해야 한다는 부분인데요. 이 장면이 지형과 이별할 때보다 더 슬프게 느껴졌어요."
'천일'은 요즘 방송가에 흔하디흔하다는 '쪽대본'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다.
이날 자리한 수애, 이상우, 정유미는 그렇기에 더욱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천일'은 11회 분의 대본이 모두 나온 후 촬영에 들어간 작품으로,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천일'에 대한 꾸준한 응원을 부탁했다. 또 "모든 출연자들이 진실로 좋은 연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입을 모았다. 종영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서연과 지형의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월화극 1위 차지하며 시청률 고공행진 중인
'천일의 약속' 인기 비결 3
1 김수현표 신파극
'천일'은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특별한 주제와 함께 남다른 감성을 녹여낸 '김수현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내가 해요. 내가.", "그러지 마. 그러는 거 아니야" 등 김수현표 드라마에 항상 등장하는 쫄깃한 대사도 이 드라마를 기대하게 한 요인 중 하나다. '천일'에서는 "엿 먹어라, 알츠하이머", "그날부터 나는 너를 안고 싶은 욕심이 하루의 반을 차지하는 느낌이다" 등 수많은 명대사가 탄생했다. 첫 방송 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김수현 사단의 저력을 유감없이 증명하기도 했다. 10회 방송 분의 경우 16.1%(TNmS 집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사람들이 김수현표 드라마에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심리도 이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천일'에서 김수현 작가가 준비한 것은 신파다. 소녀 가장으로 자란 서연이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 지형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약혼자 향기와 예정대로 결혼식을 올리려는 지형과 헤어진 서연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지형은 파혼하고, 서연에게 청혼한다. 한눈에 봐도 뻔한 신파극이지만, 묘한 흡입력으로 드라마가 전개된다. 이것이 김수현표 드라마가 사랑받는 이유다.
2 빠른 전개와 생략의 기술
특히 이번 작품은 빠른 전개가 압권이다. 또 과감하게 생략한 부분이 많은데, 그 생략한 부분을 기가 막히게 마술처럼 되살려낸다. 1회 분에서 서연과 지형은 교외의 호텔에서 이별을 한다. 지형의 결혼은 이미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었고, 서연이 이를 받아들이고 밀애를 시작한 상황이 단 한 장면에 그려진다. 처음 서연과 지형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한 번에 보여주지 않는다. "결혼할 사람 있는 남자를 도둑질했어. 1년만이라도 좋으니 만나자고 했어. 그 이상 더 어떻게 자존심을 버리니?"라고 침착하게 말하는 서연 앞에서 지형은 할 말을 잃는다.
또 서연의 동생 문권이 서연의 방에서 알츠하이머 처방전을 발견하자마자, 재민을 찾아가 "누나가 치매인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곧 지형도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서연의 주치의를 만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다. 바로 다음날 병원으로 주치의를 찾아간 지형은 서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알게 된다. 그리고 향기에게 파혼을 선언한다. 이렇듯 빠른 전개를 통해 오히려 통속적인 느낌을 덜어내는 법을 보여준다. 또 서연과 지형이 이별한 후 처음 데이트를 했던 날, 뜨겁게 사랑했던 추억들을 순간순간 보여줌으로써 생략의 효과를 십분 활용했다. 특히 주인공들이 가슴 아파할 때마다 행복한 기억을 보여주는 것은 극적인 고조감을 더욱 긴장시키는 요소다.
3 30대의 알츠하이머 진단
서연의 극중 나이는 30세다. 평소 심한 두통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 특별히 건강에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지형과 연애를 시작한 이후부터 조금씩 생겨난 건망증과 두통은 결국 알츠하이머로 밝혀진다. 여기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끄는 것은 30세의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에 걸릴 수 있냐는 궁금증이다. 치매는 노인만 걸리는 병이 아니다. 20, 30대 젊은 나이에도 충분히 걸릴 수 있다. 치매 증상은 기억력 저하인 건망증과 인지 기능인 언어, 공간지각력, 운동능력, 판단력 등의 저하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서연 또한 이러한 증상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 앞으로 점점 심해질 서연의 알츠하이머 증상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이다.
'천일의 약속' 등장인물 꼼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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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김래원 분)
건축사이며 재민의 친구다. 고등학생 때 재민의 집에 몇 번 드나들며 서연을 처음 만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서연과는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1년에 한두 번 서연에게 전화를 걸며 지냈는데, 그때마다 서연은 왜 전화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지형은 그 질문에 솔직히 대답한 적이 없었다. 집안 어른들의 바람대로 향기의 약혼자가 되지만, 마음 한편에 서연을 향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출판사 팀장이 된 서연을 만나 점심을 먹고 또 저녁을 먹는다. 그날부터 지형은 결혼 전까지만 만나자며 서연과 밀애를 시작한다. 지형은 향기와 파혼하려 하지만 서연은 극구 말린다. 향기에게는 세상에서 더없이 나쁜 남자이다. 그러던 중 서연의 알츠하이머 진단을 알게 된 지형은 결혼식을 이틀 남겨두고 향기에게 파혼을 선언한다. 이어 서연에게 청혼하고, 부모를 설득한다. 서연에게만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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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수애 분)
다섯 살 때 전기 기술자로 일하던 아버지가 감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무책임한 엄마는 집을 나가버렸다. 세 살 난 동생 문권과 고모 집 신세를 지면서 일찌감치 애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서연은 성실하고 당차며 명랑하고 쾌활하다. 마치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자기 보호색을 띤 것만 같다. 또 동생 문권에 대해서는 무한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 사촌 오빠 재민의 고등학교 친구인 지형을 열여섯 살 때부터 좋아했다. 하지만 자신의 짝이 아니라는 생각에 일찌감치 단념했다. 이후 우연히 지형을 만나 데이트를 한 다음부터 결혼 전까지만 그를 도둑질하겠다며 밀애를 시작한다. 결혼식 날짜를 잡은 지형에게 냉정하게 굴며 이별을 선언한 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삶의 무게감에 오열하던 중 모든 것을 알게 된 지형을 다시 만난다. 지형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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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민(이상우 분)
서연과 문권의 고종사촌 오빠다. 지형과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정치부 기자로 일하다 보험회사로 이직했다. 대학 때부터 사귀던 여자를 군 복무 중에 놓친 것이 상처로 남아 있다. 한 번 상처받은 탓인지 연애나 결혼에 뜻이 없다. 조용한 삶을 원하는 캐릭터다. 부모와 함께 살며 특히 서연에게 조용한 배려를 해준다. 한 손에는 찬 커피, 한 손에는 뜨거운 커피를 들고 서연에게 고르라고 말할 정도로 자상하다. 지형과 서연의 밀애를 알고 분노한다. 서연에게 생활비를 대줄 테니 작품을 쓰게 도우라는 지형에게 "네가 직접 하라"라며 단칼에 거절한다. 서연을 못 잊는 지형에게 파혼 후 모든 걸 버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을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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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향기(정유미 분)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지형을 따랐다. 집안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전부터 지형과의 결혼을 꿈꿔왔다. 천진할 정도로 그저 지형만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지형이 며칠간 만나주지 않으면 새벽에 그의 집에 머핀을 들고 찾아가기도 하고,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그에게 절절맨다. 결혼식을 이틀 남겨둔 날 지형의 파혼 선고를 듣고도, 어떻게든 지형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부모에게 자신이 먼저 파혼을 선언했다는 거짓말도 한다. 그동안 지형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여자의 정체를 궁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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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홍길(박영규 분)
향기의 아버지. 젊은 나이에 암 선고를 받고 몇 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동생으로 인해 충격을 받은 뒤 매사 편하게 살자는 쪽으로 바뀌어 선대에서 물려받은 사업의 대부분을 정리하고 은퇴해 여행과 운동을 하며 산다. 젊었을 때는 수십 번 다른 살림을 차리는 등 아내 오현아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지형의 아버지가 원장으로 일하는 병원의 이사장이며, 지형을 못마땅해하는 아내와는 달리 딸을 생각해 부모가 모든 것을 양보하자는 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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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아(이미숙 분)
우울증을 오래 앓고 있으며 우울하지 않을 때는 항상 무언가를 배운다. 또 의부증으로 남편에 대한 의심이 깊은데, 이는 젊은 시절 그의 외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매일 불행한 느낌을 갖는 캐릭터이고, 무엇보다 자식에게 큰 관심이 없다. 오로지 관심은 성형! 매사에 부정적이며 특히 지형을 못마땅해한다. 결혼 전 그가 향기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먼저 파혼을 선언하기도 했다. 자신의 마음에 하나라도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발칵 뒤집고 마는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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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주(임채무 분)
지형의 아버지. 가난한 집의 수재로 기업 장학금을 통해 공부를 했다. 같은 학교 의대생이던 노홍길과 친구가 된 후, 40년간 형제 같은 관계로 지냈다. 개천에서 난 용 캐릭터로 아주 교만하고, 비정하고, 속물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지형이 향기와 파혼하려고 하자 없던 일로 하라고 단칼에 자른다. 자신이 쌓아온 길에 대한 애착이 자식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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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정(김해숙 분)
노홍길의 소개로 박창주와 결혼한 산부인과 의사 출신. 양쪽 집안과 향기를 위해서 파혼을 말리지만, 아들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이해하는 마음도 있다. 때문에 지형이 그토록 사랑한다는 서연과 내심 잘되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서연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들을 위해 필사적으로 결혼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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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권(박유환 분)
군대에 다녀와서 취업 준비 중인 서연의 남동생. 편의점, 화장품 가게, 빵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졸업했다. 누나를 부모처럼 여기며 자랐고, 누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르는 착한 동생이다. 서연에게 애인이 있는 걸 알지만, 아는 척하지 않을 정도로 배려 깊다. 서연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 채고 있던 중 가장 먼저 알츠하이머 발병 사실을 알고, 그 누구보다 오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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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오미연 분)
서연·문권 남매를 키웠다. 변두리의 미용실 견습생으로 시작해 자신의 미용실까지 차린 억척 여성이다. 5년 전 위암 수술을 받고 회복, 전업주부로 지내는 중이다. 자신의 자식보다 서연 남매를 더 애틋해하며 서연의 일이라면 가장 먼저 달려간다. 하지만 서연의 친모에 대해서는 저주를 퍼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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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희(문정희 분)
서연의 사촌 언니로, 서연 남매를 구박하는 캐릭터다. 연하의 남편 차동철과 이틀에 한 번꼴로 싸우며 지낸다. 식사 자리에서 문권에게 고기를 많이 먹는다고 구박할 정도로 나이가 들어서도 까칠하다. 자신은 공부를 못해 대학을 못 갔으면서도 어렵게 자력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커리어우먼으로 사는 서연에게 약간의 질투도 느낀다.
<■글 / 정은주(객원기자) ■사진 & 제공 / 박동민, SBS>
http://zine.media.daum.net/ladykh/view.html?cateid=100000&cpid=30&newsid=20111202113417955&p=lady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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