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드라마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 < 뿌리 깊은 나무 > 의 작품성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정치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정치적 논쟁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그것이 지적인 쾌감을 주기도 하고,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인기 있는 사극에서 정치적인 구도를 보면 당대 대중의 욕망이나 정치적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대체로 사극을 통해서 정치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현대극은 현실 정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외압이 발생하기 쉽다. 그래서 사극이 정치적 표현의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사극이 옛날 이야기이면서도 요즘 이야기 같은 것은 그 때문이다.
SBS < 뿌리 깊은 나무 > 한석규 ⓒSBS |
그것이 몇백 년 전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요즘 이야기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작품 속에서 부딪히는 정치관이 바로 이 시대의 화두와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 뿌리 깊은 나무 > 의 중대한 미덕이다.
밀본의 정치관
< 뿌리 깊은 나무 > 에서 밀본은 정도전의 유지를 이은 결사체이다. 그들은 정도전이 제시한 신권 정치의 이상을 꿈꾸며 조선의 왕과 대립한다. 그들은 '군주는 꽃과 같은 존재일 뿐, 진정한 본체는 보이지 않는 뿌리인 사대부'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군주가 독재를 행할 경우 그 폭주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재상을 중심으로 하는 사대부가 국왕을 견인해야 한다고 여긴다.
문제는 그들도 결국 기득권층이라는 데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상적인 체제는 결국 소수 엘리트의 집단 지도 체제적 성격을 가진다. 이런 시스템에서 일반 백성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런 방식으로 정치를 독점하는 엘리트 집단에 대한 반발이 바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 당선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열풍도 마찬가지다. 기존 정치 세력이 정당 구조를 독점하는 것에 국민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 뿌리 깊은 나무 > 는 밀본을 통해 그 지점을 그리고 있다.
태종의 정치관
SBS < 뿌리 깊은 나무 > 송중기·백윤식 ⓒSBS |
그러기 위해서 물리력이 동원된다. 그의 생각에 반하는 무리는 모두 처단 대상이 된다. 절대 권력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낼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처단된다. 아무도 왕에게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없는 공포 정치이다. 오로지 상명하복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1차적으로 우리 개발 연대의 독재 정치를 떠올리게 한다. 태종이 조선 국초의 혼란을 잠재웠듯이, 한국의 독재 권력도 혼란을 잠재웠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가 되었다. 극 중에서 태종의 방식은 다시 부활할 수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한국의 현실에서 독재 권력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요즘 사람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다.
SBS < 뿌리 깊은 나무 > (위)와 장혁. ⓒSBS |
세종은 서민의 편에 서려 하고, 동시에 소통하려 한다. 그 두 가지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한글'이다. 한글은 서민에게 스스로를 표현할 도구를 주는 것이고, 그러한 서민의 말을 듣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대부는 한자만을 중시하는데, 이것은 상명 하달의 정치를 뜻한다. 명나라와 사대부가 '위'이고 백성이 '아래'이다. 한자가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것이라면, 한글은 위아래를 자유롭게 흐르는 소통의 가교가 된다. 한글을 요즘으로 치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명박 정부는 '어륀지'를 강조했는데, 여기서 영어는 < 뿌리 깊은 나무 > 에서의 한자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이 드라마는 세종을 통해 현재를 말하고 있다.
극 중에서 세종은 백성에게 부패한 수령을 고발할 권리를 주려 한다. 사대부와 태종은 반대한다. 상하의 기강이 무너진다는 이유에서다. 세종은 지방 사대부가 백성에게 직접 세금을 걷지 못하게 한다. 결국 수탈이 되니까. 밀본과 사대부는 여기에도 반대한다. 국가의 근본이 흔들린다며. 세종은 이렇게 말한다. "지랄들 하고는! 결국에는 자기들 기득권 지키려는 것이면서!"
바로 이 시대의 2040세대가 공감할 대사였다. 이 드라마는 국가의 진정한 근본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태종은 일인자가 근본이라고 했다. 밀본은 사대부라고 했다. 세종은 백성이 근본이라고 한다. 그 셋 중에 이 드라마가 내세우는 주인공은 세종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태종의 일인자론은 독재 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밀본의 사대부론은 1% 정치를 하는 한나라당 혹은 정당 구조를 장악한 구 정치 세력 전체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세종은? 없다. 그래서 내년에 어떤 정치 지형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이 시대가 세종을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뿌리 깊은 나무 > 는 그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냈다. 좋은 작품은 이렇게 시대의 핵심을 읽어서 표현해낸다.
< 광개토태왕 > 의 저잣거리 주막에서 만나는 '시대정신' 시청률이 약 20%에 달하는 < 광개토태왕 > 도 현재의 대중이 열망하는 것을 그려낸다. 이 작품에서 담덕과 그를 따르는 집단은 언제나 저잣거리의 주막에서 모임을 갖는다. 방 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항상 마당에 둘러앉는다. 민중성과 개방성이다. 심지어 태자비가 되는 국상의 딸과 담덕이 처음 만나는 장소도 저잣거리 주막이었다. 담덕의 친위 무장인 여석개는 담덕이 황제가 된 이후에도 누더기 같은 옷을 입으며 탁 트인 주막에서 술을 마셨다. 반면에 담덕과 대립하는 귀족은 국상을 중심으로 자기들끼리만 모여 주연을 가진다. 실제로 그랬을 리는 없다. 황족과 그 친위 세력이 어떻게 주막에서 모임을 가진단 말인가? 하지만 사극은 이렇게 현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의 상을 과거 인물을 통해 그려낸다. 그것이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
http://zine.media.daum.net/sisapress/view.html?cateid=100000&cpid=178&newsid=20111201102036290&p=sisa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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