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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살아가는 이야기

아빠가 되어 돌아온 닉 부이치치, 기적 같은 러브 스토리

팔다리 없이 세계를 누비는 희망 전도사 닉 부이치치. 그가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지난 2010년 이후 2년 반 만이다. 여전히 열정적이고 밝은 모습 그대로. 그리고 지금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함께 있다.

마법처럼 찾아온 운명의 여인


"안녕하세요!"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얼굴에 구김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두 해 전 가을 이후 두 번째 만남, 그는 여전히 열정적이고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미국 장애인 비영리 단체 '사지 없는 인생(Life without Limbs)'의 대표로 전 세계 3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온 그는 절망이 희망이 되는 삶을 온몸으로 증명한 인물이다. 팔다리가 없이 태어나 보통 아이들과 함께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일반 대학에 진학해 회계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서핑을 즐기며 드럼을 연주하고, 사회복지 단체를 설립해 전 세계를 다니며 감동과 희망을 전하고 있다.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그 누구보다 다이내믹한 삶을 일궈온 그가 얼마 전 또 한 번 반전의 사나이가 됐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1년 만인 지난 2월 사랑스러운 아들을 얻은 것이다. 어린 시절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을 수도, 언젠가 태어날 아이를 안아줄 수도 없을 것'이라 절망했던 소년은 이제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그의 아내 카나에 미야하라는 일본인 아버지와 브라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여성으로 건강하고 신앙심이 또한 깊은 인물로 알려졌다. 그가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4월 텍사스 주의 한 강연장에서였다. 언니와 함께 강연장을 찾은 카나에를 본 순간 그는 '여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슬기롭고 따뜻한 눈동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는 강연이 끝난 뒤 청중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으며 그녀 역시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예상치 못한 오해가 생기며 가슴 졸이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친구가 아내의 언니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카나에 역시 제가 언니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던 거죠. 몇 가지 오해와 복잡한 관계를 뒤로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어요. 한동안 전화도 문자 메시지도 이메일도 하지 않은 채 지냈고, 6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마침내 교제를 시작할 수 있었죠."

힘겨운 기다림이 결실을 본 순간 그는 그야말로 "만세!"를 외쳤다. '내게도 다리가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스르르 힘이 풀렸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요동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고 이제껏 겪었던 실망과 갈등, 두려움과 눈물 따위는 말끔히 사라져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드라마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카나에의 어머니와 언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기뻐하며 두 사람을 축복해주었고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들과 사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그가 팔다리가 없는 것을 염려하거나 문제 삼지 않았다. 사실 그는 여러 해 동안 불안과 외로움을 붙들고 처절한 씨름을 벌여왔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팔다리가 없는 신체조건 탓에 시쳇말로 '킹카'가 될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거절당하는 게 두려웠고,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꿈을 함께 이룰 짝을 끝내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에 시달려왔다. 손을 잡지도 안아주지도 못하는 남자를 사랑해줄 여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아서 두렵고 또 두려웠다는 그의 오랜 고독은 운명 같은 여인 카나에를 만나 비로소 끝을 맺었다.





생명이 가져다준 축복과 기적


사실 그가 유전적인 요인 탓에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게 아니었음에도, 그의 부모님은 만에 하나 닉과 같은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카나에에게 물었다. 대가족을 이루고 싶어 하던 예비신부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다섯 아이가 죄다 팔다리 없이 태어난다 해도 똑같이 사랑하겠다고.

"저는 훨씬 쉬울 거예요. 어머님, 아버님은 느닷없이 닉을 만났지만 저에게는 아이들이 보고 따를 롤모델이 있으니까요."

이렇듯 카나에는 흔들림 없는 깊은 사랑으로 그의 곁을 지켜왔고 무엇보다 따뜻한 품성으로 그의 어두운 부분까지 감싸 안았다. 두 사람이 교제를 시작한지 몇 달 되지 않은 2010년 12월 무렵, 닉은 회사가 자금난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비신부에게 가장 빛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시절, 그는 경영 중인 회사가 상당한 빚을 지고 도산할지 모른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열일곱 살에 처음 '사지 없는 인생'을 조직하고 연설을 시작한 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노력으로 쉬지 않고 달려온 그의 인생에 슬럼프가 찾아온 시기였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그에게 다시금 용기와 에너지를 불어넣은 것이 바로 카나에였다.

그녀는 힘겨운 상황에서 주춤하거나 머뭇거림 없이 언제나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내줬고, 그가 힘들어할 때면 부드럽게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늘 곁을 지키겠다는 말로 위로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낸 두 사람의 사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실을 맺었다. 바다 위 요트에서 이루어진 로맨틱한 프러포즈. 이후 7개월 뒤인 2012년 2월 마침내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결혼식을 올리고 정확히 1년 뒤, 두 사람에게 또 한 번의 축복이 찾아왔다. 아들 키요시가 태어난 것이다. 아내 곁에서 출산을 지켜본 그는 그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

"아이가 첫 울음을 터뜨리기도 전에 제 눈을 바라보며 웃는 것을 본 순간 무척이나 감격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어요. 저 역시 다른 아버지들처럼 아이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침대에 나란히 누워 얼굴을 비비며 교감할 수밖에 없었죠. 그 대신 누구보다 자신감 있고 겸손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가르쳐주기로 굳게 마음먹었어요."

초보 아빠로서 그는 아이를 지키는 일에 세계 챔피언이 되기로 다짐했다. 또래 아이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인해 죽음까지 생각해야 했던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이기에 아이가 못된 녀석들이 내뱉는 사나운 말의 표적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유리벽을 만들어 따로 떼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날려 보낸 잔인한 화살을 맞고 아픔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전에 또래들의 독기 어린 말을 중화시키는 방법을 열심히 알려줄 생각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만 명에 이르는 어린 친구들을 만나본 결과 누구도 괴롭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괴롭힘은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인 이슈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라도 따돌림과 괴롭힘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집은 아이들을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보호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 학부모님들께 당부드리고 싶어요."
그는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걱정하고 있다. 온라인 등 다양한 소통 창구를 통해 더 많은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큰형님'으로서 조언을 들려주고 싶다고. 기회가 된다면 아내 카나에 그리고 아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결혼과 새 생명의 탄생을 경험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고,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희망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됐어요. 긍정적인 사람들도 힘들고 좌절할 때가 많은데 저는 오죽했겠어요. 저희 부모님은 항상 저의 눈을 보면서 "우린 네가 정말 자랑스럽단다"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 말들이 제 가슴에 씨앗이 되어 좌절하지 않고 희망의 열매를 맺게 했죠. 지금 이대로의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가장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고, 또 죽을 처지에 놓인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도 만들 수 있답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참고 서적 /「닉 부이치치의 플라잉」(닉 부이치치 저, 두란노)>

http://media.daum.net/zine/ladykh/newsview?newsid=20130628140716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