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의 한 모피 농장 우리 안에 흰색털밍크들이 갇혀 있다. 2 갓 벗겨낸 라쿤 털가죽이 수레에 담겨 있다.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됐습니다. 소중 독자 여러분은 영하의 날씨를 이기기 위해 어떤 옷을 입나요. 보송보송한 거위 털로 채워진 패딩 점퍼, 복슬복슬 윤기 흐르는 라쿤 털로 장식된 털 모자, 보드라운 앙고라 목도리…. 우리가 흔히 입는 겨울 옷과 방한용품엔 다양한 동물의 털과 가죽이 들어가죠. 그런데 그 모피가 어떻게 얻어지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따뜻한 겨울 옷에 담긴 잔혹한 진실을 들여다봤습니다.
"당신은 촘촘한 철 창살로 된 우리에서 눈을 뜬다. 몸을 쭉 펴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철창 안은 너무 좁아서 어느 방향으로도 몇 발자국 발을 떼기조차 힘들다. 주위를 둘러본다. 다른 우리 안엔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갇혀 있다. 온몸이 아프고, 배가 몹시 고프고, 무섭다. 좁은 철창 바닥에 짓눌린 당신의 발은 피범벅이 됐다. 당신은 왜 당신이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뭘 잘못해서 이런 고문을 당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몇 달, 혹은 몇 년 뒤 철창이 열리고 누군가 당신을 끄집어낸다. 당신의 삶은 곧 끝날 것이다. 당신은 산채로 가죽이 벗겨진다. 생식기와 항문에 전기 충격을 받아 죽을지도 모른다. 거꾸로 매달린 채 숨이 끊어질 때까지 피를 흘릴 수도 있다. 결국 당신은 죽겠지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극도로 아플 것이다. 물론 이건 진짜 당신의 삶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 모피 동물들에게는 현실이다."
최근 국제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을 인도적으로 대하는 사람들(PETA)'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당신이 걸친 모피의 진실' 이란 동영상 내용이다. 전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각종 동물 털과 가죽의 85%는 공장식 모피 농장(fur factory farm)에서 생산된다. 보통 우리는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른 동물을 도축한 뒤 남은 털과 가죽을 사용하겠거니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모피 농장의 동물들은 좁은 철창 안에서 평생을 보낸다. 본성을 억누르는 열악한 사육 환경은 동물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자신의 꼬리나 발을 물어뜯거나 새끼나 동족을 잡아먹는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좁고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세균에 감염돼 아픈 동물도 많다. 감옥 같은 철창을 벗어나는 길은 죽음뿐이다. 대부분의 모피 동물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죽이 벗겨진다. 사후 경직(죽은 뒤에 몸이 굳는 현상) 전이라야 가죽을 벗기기도 쉽고, 윤기가 흐르며 부드러운 최상품 모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을 도축한 뒤 가죽을 벗기는 경우에는 주로 생식기에 전기 충격을 줘서 죽인다. 모피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 경우에도 동물은 끔찍한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야생 동물도 안전하지는 않다. 해마다 1000만 마리의 동물이 모피를 얻으려는 인간이 놓은 덫에 목숨을 잃는다. PETA는 "세상 어디에도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모피라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 옷장 속 겨울 옷은 어떨까.
3 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PETA 활동가들이 산채로 오리·거위 털을 뽑는 행위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엄마 졸라 장만한 '등골 브레이커' 속 다운의 정체는
겨울 의류 시장에서 가장 사랑 받는 제품은 단연 다운 점퍼다. 덕 다운(오리 털)에 이어 최근엔 구스 다운(거위 털)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청소년 사이에선 수십만원을 넘는 다운 점퍼가 유행해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등골 브레이커'란 별명이 붙었다. 올 겨울엔 100만원이 넘는 수입 브랜드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다운 제품이 인기 있는 까닭은 가벼우면서도 보온력이 높기 때문이다. 오리와 거위의 목덜미부터 가슴ㆍ배에 걸친 두텁고 보드라운 털 위주로 쓰인다. 오리와 거위도 산채로 털을 뽑힌다. 털을 뽑힌 새는 붉은 생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산다. 보통 한 마리당 3~4번 정도 털을 뽑는다. 털을 뽑아낸 뒤 자라면 또 뽑고, 자라면 또 뽑는 식이다. 사람으로 치면 머리털을 몽땅 뽑히는 고통을 몇 번이나 겪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심한 쇼크로 죽는 오리ㆍ거위도 많다고 한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 관계자는 "다운 깃털만 받아 쓰는 우리로서는 산채로 뽑힌 털인지 도살된 뒤에 뽑힌 털인지 알 수도 없고 구분할 방법도 없다"며 "현실적으로 도살한 동물 털만 가지고는 지금의 폭발적인 다운 소비를 따라가기 힘들 것"이라고 털어놨다.
4 라쿤 한 마리가 철창에 매달린 채 밖을 바라보고 있다. 5 공장식 모피 농장의 좁은 우리 안에 밍크 한 가족이 갇혀 있다.
◇ '리얼 라쿤 점퍼'의 라쿤은 옷 소재가 아니라 동물의 이름
올겨울 들어 특히 유행하는 모피는 라쿤이다. 쇼핑몰마다 '리얼 라쿤'을 강조하는 광고 문구가 즐비하다. '라쿤'을 그저 한 철 유행하는 스타일이나 겨울 옷의 소재로 여긴다. 라쿤은 북아메리카너구리과 동물이다. 귀여운 외모로 만화영화 캐릭터로도 자주 등장한다. 길고 유연한 다섯 개의 손가락을 가졌고, 손 감각이 발달해 먹이를 먹거나 물건을 잡을 때 사람처럼 능숙하게 손을 사용한다. 먹이는 꼭 물에 씻어 먹고, 물가에서 쉴 때는 자기가 누울 바위를 깨끗이 씻고 햇볕에 바짝 마를 때까지 기다릴 만큼 깔끔한 동물이다. 라쿤은 북미 인디언 우화에서 현명한 어머니의 상징으로 등장할 만큼 모성애가 강하다. 생후 1년까지 새끼를 끼고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친다고 한다. 복잡한 자물쇠도 열 수 있고, 한 번 배운 건 3년 이상 기억할 정도로 영민하다. 하루에도 수십㎞를 이동하는 발 빠른 동물이다. 그런데 라쿤은 옷깃이나 소매를 모피로 장식하는 퍼 트리밍(fur-trimming)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가장 고통 받는 동물이 됐다. 모피 농장에선 살아 있는 라쿤을 꼬리부터 얼굴 근처까지 가죽을 벗기곤 한다. 질 좋은 모피를 얻기 위해서다. 라쿤은 가죽이 벗겨져 핏덩이로 변한 상태로도 여전히 숨이 붙어 꿈틀댄다.
동물자유연대 정책기획국 한송아 간사는 "소비자들은 진짜 동물의 털이 달린 옷을 고급으로 치고 좋은 것으로 생각하며, 따뜻해 보인다는 이유로 '리얼 라쿤' 옷을 찾곤 한다"며 "그 대가로 동물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는지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앙고라토끼도 비명 지르게 만드는 모피 채취법
하얀 토끼 하나가 나무판 위에 앞다리와 뒷다리를 쭉 펴고 묶여 있다. 토끼 앞에 걸터앉은 한 남자가 우악스러운 손길로 토끼의 털을 빠르게 뽑아냈다. 토끼는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른다. 털을 뽑아낸 자리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시 좁은 철창 속에 갇힌 토끼는 힘없이 비틀댄다. 얼마전 PETA가 공개한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PETA는 중국의 한 앙고라토끼 농장에 잠입해 촬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앙고라토끼는 소리를 내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동영상 속 토끼는 애절하게 비명을 토해낸다. 잘라낸 털보다 뽑아낸 털이 길이가 더 길어 2배 이상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어 이렇게 잔인한 방법이 자행된다고 한다. 중국에서 전 세계 앙고라 털의 90%를 생산하며, 5000만 마리의 앙고라토끼가 이런 식으로 길러진다. 한 달여 동안 190만 조회 수를 기록한 이 동영상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본 소비자들은 의류 업체에 항의를 쏟아냈다. 그러자 지난달 스웨덴의 H & M이 앙고라 털이 들어간 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16일엔 캘빈 클라인, 토미 힐피거 등 유명 브랜드를 소유한 거대 의류 그룹 필립스 반 호이젠(PVH)과 톱숍ㆍ톱맨 등이 속한 아케이디아가 앙고라 털을 사용한 의류 제품의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PVH는 앙고라 털이 잔혹한 방법으로 채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앙고라 제품 생산을 중단할 것이며, 아케이디아도 앙고라를 대체할 제품을 찾고 있다고 했다. 동물사랑실천협회의 박소연 대표는 "소비자들이 모피 제품을 사지 않는 것이 동물들의 고통을 멈추게 하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라며 "동물의 모피로 만든 제품은 입지도 사용하지도 말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동물도 보호하고 우리도 따뜻하게, '비건 패션'
동물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지만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대안으로 요즘 '비건(vegan) 패션'이 주목 받고 있다. 비건은 유제품이나 계란도 먹지 않는 절대적인 채식주의다. 비건 패션은 동물 학대를 하지 않고 얻어낸 원재료만 사용한 의류를 뜻한다. 지난달 24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빌딩에서 열린 비건 패션쇼 '사랑을 입다'에는 동물의 털이나 가죽 대신 동물로부터 얻지 않은 천연 원단과 합성섬유로 만든 옷만 등장했다. 동물사랑실천협회와 PETA가 공동 주최한 쇼였다. 이 쇼에서 모델들이 입고 나선 옷들은 비건 패션쇼란 설명을 곁들이지 않는다면 여느 패션쇼장의 옷들과 구분이 안 될 만큼 번듯했다.
당장 모든 동물성 섬유를 포기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옷을 살 때 조금만 신경 쓰면 동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옷 안감에 붙어 있는 제품 설명 표시를 확인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얻어내는 모피를 피한다. 오리 털이나 거위 털 대신 인조 다운 충전재를 고르고, 모피로 된 코트나 재킷, 천연 모피로 장식된 점퍼는 피하고 아크릴이나 폴리에스테르 섬유로 만든 인조 모피를 사는 식이다. 디자이너 송자인씨는 "식물성 천연 원단이나 합성섬유·충전재 등이 많이 개발돼 있어 천연 모피 없이도 충분히 기능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훌륭한 옷을 만들 수 있다"며 "윤리적인 소비가 윤리적인 생산을 이끈다"고 설명했다.
이에스더 기자 < etoilejoongang.co.kr >
도움말=동물자유연대, 동물사랑실천협회
이에스더 기자etoile@joongang.co.kr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31223093506146&RIGHT_REPLY=R10
인간의 이기가 오늘도 얼마나 많은 것을 파괴시키고 있는지 한번 또 생각하게 하는 뉴스다.
우리의 따뜻함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동물들의 명복을 빌며...
요즘 처럼 추운 겨울 옷을 살 때 다시한번 생각해보며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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