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서 한숨이 더욱 깊어지는 것만 같은 당신, 가슴속 응어리를 한 올 한 올 풀어내자니 천년만년은 걸릴 듯하다. 즉문즉설을 통해 막막한 시름에 대한 속 시원한 해법을 들려주는 법륜 스님은 오늘의 삶이 만족스러우면 그것이 곧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지금부터 시작해 앞으로도 쭉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스님의 지혜를 전한다.
구멍 난 가슴에 찬바람이 드는 나이의 당신에게
"좀 더 큰 마음으로 이웃과 세상을 위해 살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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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 엄마" 하면서 늘 엄마 곁에서 맴돕니다. 그러다 사춘기가 되면, 특히 남자아이들은 엄마와 좀 거리를 두고 같이 다니는 걸 창피해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자식의 변화를 배려하면서 아이와의 관계를 조율해야 하는데 여전히 어린아이 취급을 합니다. 밖에 나가면 여자아이들에게 제법 어른 흉내도 내고 싶은데 엄마만 만나면 아이 취급을 받으니까 같이 있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 아침에 자식과 남편이 다 나가고 나면 오후까지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다 거울을 보면 벌써 흰 머리카락이 생기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생긴 걸 발견합니다. 사회에 나가서 뭔가 해보려고 마음을 내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감도 없습니다.
이럴 때 집에 있으면 자꾸 아이나 남편을 문제 삼기 쉬우니까 자원봉사 같은 활동을 하면 우울하고 허전한 마음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돈을 안 벌 뿐이지 자기 일이 있고, 자신의 봉사가 다른 사람에게 귀중하게 쓰이는 경험을 하면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생기를 얻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시간과 열정을 세상을 위해 아주 의미 있게 쓰다 보면 보람 있게 자아실현도 할 수 있습니다.
한 주부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봉사활동을 하면서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직장보다 더한 열정을 갖고 일하니까 갱년기 장애나 우울증을 모르고 지냅니다. 남편들은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부인이 그런 활동을 하면 정신적으로 굉장히 건강해지고 자식에게도 덜 집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너그러워집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 내 자식, 내 남편, 내 부모만 알고 열심히, 착실히 살아왔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나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잘못 산 게 아니라 단지 개인적으로 살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은 인생은 좀 더 큰 마음을 내서 이웃과 세상을 위해 살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내 울타리를 깨고 나가면 시야도 넓어지고 인생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식이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도, 심지어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겨도, 오래 힘들어하지 않고 잘 극복해나갑니다.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덜 구애받을 만큼 내면의 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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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아닌 내 마음부터 살피세요"
20대 때는 서른 되고 마흔 되면 더 너그러워지고 대인관계도 더 유연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해심도 커져서 남도 더 배려하게 될 걸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나이 들어가니 너그러워졌나요? 물론 '나이 들면 너그러워진다'라는 옛말이 있긴 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하다 나이 들면 자식에게 물려주고 조금 한가해지니까 너그러워진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50, 60대가 돼서도 악착같이 돈을 벌어 먹고살아야 하는 각박함 속에서는 나이 들었다고 해서 너그러워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30대든, 50대든 마음을 열고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너그럽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니까 나이와 상관없이 상대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편안하게 만들어갑니다. 상대를 미워하는 대신 그냥 놓아주면 상대와 원수 질 일도 없고 내 인생도 편안해집니다. 결국 관계의 문제를 풀 열쇠는 내가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하러 오시는 분에게 아무래도 호되게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것은 상대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나'를 바라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자기 편은 안 들어주고 상대만 편들어준다고 서운해합니다.
가령 상담 온 부인에게 "남편에게 숙이라"하면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데 왜 저더러 숙이라고 하세요?" 합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 상대가 그르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서로 옳다고 싸우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먼저 자기를 살피고 마음을 바꾸면 서로 편안해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혼한 남자는 한 여인의 남편이라는 입장을 확실하게 하고, 한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입장은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부갈등이 있을 때 남자가 중간에서 해결한답시고 아내에게 "당신이 이해해라" 하면 아내는 남편이 어머니 편을 드는 것 같아서 싫어합니다. 또 남편이 어머니에게 가서 아내 편을 들면 어머니는 아들을 빼앗긴 것 같아서 서운해합니다. 그러니 한 여인의 남편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난 후 과거에 한 여인의 아들이었음을 잊지 말고 늘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쨌든 남편을 사랑해서, 괜찮다고 생각해서 결혼했으니 그 사람을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시어머니가 낳아서 그때까지 키웠는데, 어느 날 며느리에게 자신이 애지중지하며 키운 아들을 빼앗겼으니 그 시어머니의 심리 상태가 어떨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두 가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는 '잘 낳아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고마운 마음, 다른 하나는 '당신의 아들을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하는 마음입니다. 시어머니가 질투랄까, 약간 트집을 잡아도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내면 갈등이 커지지 않습니다.
시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자식은 이제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합니다. 계속 '내 자식인데','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자식에게 서운하고 며느리도 미워집니다. 자식을 결혼시키고 나면 그들은 그들대로 살아가도록 놓아주어야 합니다. 이제는 자식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자기 인생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갈등은 자기를 살피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데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대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란만 커지고 갈등만 깊어지게 됩니다. 너그러워지고 이해심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인생이 그렇게 변화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연의 매듭을 푸는 것은 상대를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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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다 느끼면 가난하고, 여유를 느끼면 부자가 됩니다"
언젠가 한 부부를 상담했는데 남편의 건강이 심각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당장 휴직서를 내고 쉬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부인이 "한 6개월만 더 다니다가 쉬면 안 될까요?"하는 겁니다.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답합니다.
"6개월만 있으면 인사 이동이 있거든요. 남편이 이사로 승진할 차례인데, 승진하고 나서 쉬면 안 될까요?"
생명이 위독해서 당장 쉬라는데 남편 목숨은 안중에도 없고 지금 휴직하면 승진이 안 될 텐데, 하는 걱정만 앞섰던 겁니다. 그런데 그분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 다 돈에 집착하고, 앞으로 살아갈 일에 집착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에서는 일당으로 1달러 미만을 받습니다. 그나마 그것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요. 그런 인구가 지구상에 12억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의 고통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먹고살 만한데도 늘 돈에 쫓기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얻을 생각만 하느라 절에 와서도 부처님께 자꾸 뭔가 달라고만 합니다. 옛날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절에서 스님들이 공양을 하다가 객승이 오면 자기 밥그릇에서 밥 한 숟가락씩 덜어서 모아주었는데 이것을 십시일반이라고 합니다. 또 옛날에는 형제간에 정이 있으면 콩 한쪽도 12명이 나눠 먹는다고도 했습니다. 이처럼 나눠 먹는 마음을 내면 마음이 부자가 됩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소박하게 살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있던 돈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반면에 많이 먹고, 많이 입고, 많이 쓰겠다는 마음을 내면 돈이 많은데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부족함을 느끼면 가난한 자가 되고, 여유가 있으면 부자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한 끼 식사를 때우지 못할 형편은 아니고,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다 해도 1천원을 보시하지 못할 형편은 아닐 겁니다. 자신의 형편이 어렵다고 괴로워만 할 게 아니라 베푸는 마음을 내면 오히려 마음이 부자가 되고 삶에 대해서도 의연해져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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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습니다"
흔히 '떨어지는 가랑잎이 쓸쓸하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떨어지는 가랑잎은 쓸쓸한 걸까요? 아닙니다. 바로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쓸쓸한 거예요. 가랑잎을 보면서 '찬란했던 내 젊음도 가랑잎처럼 스러져 가는구나' 하고 나이 들어가는 내 인생을 아쉬워하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도 잘 물든 단풍처럼 늙어가면 나이 듦이 결코 서글프지 않습니다. 자연이 변화하듯 편안하게 늙어가면 그 인생에는 이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듯 아름답게 물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등바등 늙지 않으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나이 들어가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노후를 아름답게 마무리 지어야겠다'라는 생각마저도 없이 변화에 순응하는 겁니다. 나이 들면 나이 드는 대로, 늙으면 늙는 대로, 병이 나면 병이 나는 대로, 머리가 하얘지면 하얘지는 대로, 주름살이 생기면 주름살이 생기는 대로, 또 아파서 걸음걸이가 불편하면 '그동안 많이 부려먹었으니까 고장 날 때가 됐지' 하면서 받아들이는 거예요.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은 무척이나 편안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저분은 나이 들어도 참 밝고 당당하게 사는구나' 하고 여깁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잘 물든 단풍이 아름답듯이 늙음이 비참해지지도 않고 초라해지지도 않고 순리대로 잘 늙어가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잘 물든 단풍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나침'을 경계해야 합니다. 과욕을 부리지 않아야 하는데, 나이 들어 과한 것은 항상 부작용이 따릅니다. 젊을 때는 무리해도 금방 회복되지만 나이 들어서 지나치면 이겨내지를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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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과음하면 안 됩니다. 젊을 때는 길거리에 쓰러질 정도로 취해도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집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 과음하면 가을비 온 뒤 기온이 떨어지는 것과 같아요. 가을비가 한 번 오면 기온이 팍팍 떨어지듯이 몸이 급격히 망가집니다.
셋째, 과로도 하면 안 됩니다. 젊을 때는 과로하더라도 병원에서 링거 맞고 좀 누워 있다가 일어나면 괜찮아집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서 과로하면 회복이 잘 안 돼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몸에 맞게 적절히 활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이 들면 뭐든지 지나치면 안 되고, 젊을 때처럼 욕심을 내도 안 됩니다. 젊을 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젊은이가 용기가 있고 의욕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또 큰 욕심을 내어 무엇을 하려 하면 세상 사람들이 "포부가 크다"라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면 노욕이라고 하는데, 좀 추하게 욕심을 부린다는 뜻이거든요. 그리고 젊을 때는 격렬하게 주장해도 결과가 좋은데, 나이가 들면 어떤 주장도 격렬하게 하기보다 평화적으로 설득하고 점잖음을 유지해야 나도 좋고 세상에도 이익이 됩니다.
나이가 들면 자꾸 일을 벌이고 계획을 세워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게 아니라 정리를 해나가야 합니다. 인생을 포기한다는 게 아니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기 때문에 잔가지를 정리하면서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한탄하거나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젊어지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나'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욕심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이 기사는 「인생수업」(법륜 저, 휴)에서 발췌·정리한 것입니다.
<■기획 / 이연우 기자 ■사진 제공 / 휴 그림 유근택>
http://media.daum.net/zine/ladykh/newsview?newsid=20131115174608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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