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우리의 뇌리에 가장 크게 박힌 신인 남자 배우를 찾기 위한 스무고개를 해보자. 하나, 187cm의 훤칠한 키. 둘, 스크린이나 TV에서 항상 상대를 묘하게 쏘아보는 표정. 셋, "왜 이런 데서 자냐? 지켜주고 싶게."
매혹적인 청년의 무서운 성장
스무고개의 답으로 배우 김우빈(26)을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난 한 해 차곡차곡 쌓아온 그의 인기는 SBS-TV 드라마 '상속자들'이 끝난 지금, 2013년 활약한 신인들 중 가장 뜨겁다. 드라마 종방과 맞춰 쏟아진 수십 개 매체의 인터뷰 요청은 차치하고서라도, 경기도 남양주에서 열린 팬 사인회에는 다국적 팬 1천5백여 명이 몰렸다. 그의 드라마 촬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광고 역시 수편에 달하며, 출연을 바라는 작품들도 상당하다. SBS는 그를 선배 배우 이보영, 베테랑 MC 이휘재와 함께 '연기대상' MC로 낙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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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빈은 2013년 동갑내기 이종석과 함께한 KBS2-TV 드라마 '학교 2013'을 시작으로 유오성과 출연한 영화 '친구2', 드라마 '상속자들'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그가 연기한 인물 박흥수, 최성훈, 최영도는 모두 '반항아'였다. 세상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그에게 대중은 21세기형 '제임스 딘'의 이미지를 찾아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는 반듯한 청년이었다. 어떨 때는 솔직히 좀 재미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점이 그의 단단한 매력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김우빈은 2012년 방송된 SBS-TV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아들 친구'로 등장했다. 주인공 김도진(장동건 분)의 아들로 밝혀진 콜린(이종현 분)의 친구 김동협. 그가 대본을 읽으며 대사 하나하나 참 맛깔스럽다고 느꼈던 김은숙 작가의 대본을 다시 받아보게 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사의 품격' 출연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재밌었어요. '상속자들'은 이렇게 저를 금방 불러주시고, 또 영도를 멋있게 써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는 작품이에요. 작가님께서 바로 불러주신 거라 배신하고 싶지 않았어요. 게다가 실망을 안겨드리면 안 되잖아요. 끝까지 집중했어요. 영도 역에 집중하기 위해 작품이 끝나기 전까지는 출연 제의를 위해 들어온 다른 대본들은 일절 안 봤어요."
'상속자들'의 최영도는 극중 호텔 제우스의 상속자로 IQ 150을 자랑하는 머리를 결코 좋은 일에 쓰지 않았다. 주로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위세를 부리는 데 썼다. 1회 방송에서는 자신이 괴롭히던 친구에게 "우리가 커서 네 고용주가 될 거니까"라고 말하며 자본의 질서에 순응하는 대사도 천연덕스럽게 내뱉었다.
"재밌는 일은요, 제가 '상속자들' 전에 학교폭력 방지 홍보대사를 맡았어요. '학교폭력 모른 척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치다가 친구들을 괴롭히는 역할을 하려니 마음에 걸리더라고요(웃음). 초반에 나왔던 영도의 악행들은 학교폭력을 미화하려는 장면은 아니었고, 제국고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절대로 외면하지 않겠습니다(웃음)."
가까이 다가가 확인한 반듯한 속마음
귓가를 간질거리는 김 작가 특유의 대사는 이번 드라마에서도 여전했다. 특히 '최영도 어록'이 만들어질 정도로 보통 남자라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대사들은 거의 김우빈의 몫이었다.
"선 긋지 마. 확 넘어버리기 전에", "안녕, 시스터", "눈 그렇게 뜨지 마. 떨려", "예뻐 가지고" 등의 대사가 탄생했고 이중 많은 대사가 대중에게 회자됐다.
"'왜 이런 데서 자냐? 지켜주고 싶게'라는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돌려 말하는 듯하면서 직설적이고 묘하게 매력이 있는 말투예요. 이 대사는 뒤에 붙는 말을 바꾸면 여러 군데 활용해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도 여자 스태프에게 준 생일 카드에도 썼죠. 평소 안 쓰는 말이라 쑥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김탄(이민호 분)보다는 대사가 편했어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그는 여자 스태프에게 전달한 카드에 '뭘 또 이렇게 추울 때 태어났어? 지켜주고 싶게'라고 썼단다. 지독한 악한처럼 보이면서도 묘한 동정심을 자극하고, 상대에게 쌀쌀맞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슴속에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최영도'라는 인물은 김우빈을 만나 그야말로 훨훨 날았다. 촬영장에 모이는 대중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인터뷰에 나서는 기자에게는 많은 사내 직원들이 그의 사인을 부탁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터뷰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그의 반듯한 이미지가 서서히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여배우들과 연기를 했는데 다시 한번 연기를 해보고 싶은 여배우를 골라달라"라는 질문에는 "여배우들이 무척 많다"라며 말을 얼버무리기도 했다. 박흥수, 최성훈, 최영도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다.
"사실 저는 좀 더 천천히 다져서 내공을 쌓고,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김우빈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하고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빨리 좋아하고 응원해주시니까 정말 감사하긴 한데, 한편으로는 실망감을 드릴까 봐 조심스러워요.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적절한 것의 의미를 아는 배우
김우빈은 지금껏 유독 학생 역할과 인연을 자주 맺었다. 드라마 '학교 2013'의 박흥수 역시 교복을 입은 반항아였고, '친구2'의 최성훈은 학교는 애초에 포기하고 교도소를 들락거렸지만 그래도 어린 나이였다. '상속자들'의 최영도도 그렇다. 교복 맵시가 유달리 좋았던 것도 모델 출신 김우빈에게는 유리한 일이었다. 불현듯 옷을 잘 입는 요령이 궁금해졌다. 역시 '바른 생활 사나이'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운동도 하지만 옷을 몸에 잘 맞게 수선해요. 학생복 모델이기도 하거든요. 저 역시 바지도 줄여보고 기장도 손보고 했는데, 몸에 꼭 맞도록 입는 게 가장 좋아요. 뭐든지 적절히 할 때 가장 예쁘죠."
아직 필모그래피를 쌓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연이어 반항아 역할만 한다는 것도 그에게는 자칫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김우빈의 생각은 명료했다. "지금이나 해볼 수 있는 연기지 또 언제 해보겠어요?"라는 말이었다. 따라서 그는 다음에도 이런 역할이 들어오면 또 응할 각오가 돼 있단다. 작품을 고르는 일은 자신에게 아직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차은상(박신혜 분)의 어머니역을 맡은 김미경 선배님께서 제게 밥을 차려주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때 괜히 찡하더라고요. 영도가 갖고 있는 아픔이나 슬픔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었거든요. 현장에서 (이)민호 형, (박)신혜 등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는 아직 배울 게 더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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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 재능을 더욱 빛나게 만든 부단한 노력
김우빈은 2013년 영화 '친구2' 촬영이 끝난 후 곧바로 '상속자들'에 합류했으며, 촬영과 동시에 매주 목요일에는 케이블 채널 엠넷의 '엠카운트다운' MC로도 활약하고 있다. 워낙 큰 키와 빼어난 신체 비율로 인해 곁에 선 아이돌 스타들이 본의 아니게 굴욕(?)을 당하기 일쑤다. 그는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로 차분하게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보통 화려한 연기와 동작이 들어가게 마련인 음악 프로그램에서 그러한 진행 방식은 도리어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제작진이 여타 음악 프로그램과는 다른 느낌의 진행을 원하셨어요. 저 스스로도 애교나 쇼맨십이 없고요. 생방송이니까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음악 공부를 많이 해요."
그는 원래 어렸을 때부터 모델을 꿈꿨던, 꿈에 관한 한 외골수다. 중학교 1학년 당시 177cm로 이미 전교에서 가장 큰 키를 자랑했던 그는 패션을 좋아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모델을 갈 길로 정했다.
"중학교 1학년 도덕 시간이었어요. 첫 시간 책 표지를 넘기는데 장래희망을 적는 난이 있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대학교 생물학 교수가 꿈이었거든요. 그런데 성격이 내성적이다 보니 쉽게 적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모델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바로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쉽지 않으셨을 텐데 선뜻 허락해주시고 응원해주셨어요. 아기일 때 사진을 보면 제가 옷을 굉장히 잘 입고 있어요. 아마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부분이 있었나 봐요."
진작부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결정한 그는 전주 전일고 1학년 때부터 대구 대경대 모델과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며 3년 동안 꾸준히 교류했다. 이 사실은 이후 누리꾼에게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원래 연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처음 연기 연습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저 더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해서였다.
"광고 미팅에 가보니 모델도 어느 정도의 연기력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연습을 시작했어요. 특히 연기 선생님들의 열정에 반했어요. 모델과 연기의 공통적인 매력이라고 하면, 기본은 있지만 이후에는 자신의 마음대로 그려나갈 수 있다는 점이에요. 연기를 배우면서 캐릭터의 일대기를 몇 장에 걸쳐 쓰고, 캐릭터의 심정으로 백문백답을 하는 연습을 했어요. 그런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스스로 더 큰 미래를 책임질 줄 아는 재목의 발견
김우빈은 일찍부터 목표를 정하고, 목표가 정해지면 흔들림 없이 자신을 채찍질해가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사람은 사실 그다지 재미가 없다. 본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그림 그리는 일이나 독서를 제외하고는 딱히 취미도 없단다. 모델로서 몸을 관리하기 위해 하는 운동을 제외하고는 보통 남자들이 흔히 좋아할 법한 구기 종목에도 관심이 없는 그다. 영화 '친구2' 촬영을 위해 면허를 땄던 오토바이는 혹시 사고가 날까 봐 아예 타지 않는다.
"모델도, 연기도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에요. 그래서 대충대충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부모님의 지지와 응원을 받았기 때문에 대충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라 힘은 들어도 늘 즐거워요."
지난 12월 개봉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 출연한 배우 전도연은 요즘 주목하고 있는 후배 배우 중 한 명으로 김우빈을 꼽으며 "촬영장에서의 모습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우빈은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도 바쁜 촬영 일정 때문에 제대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는데, 이제 작품도 끝났으니 꼭 감사의 인사를 하겠다며 마치 약속 도장을 찍듯 눈을 빛냈다.
늘 형형하게 빛나던 극중의 거친 모습만 보다가 직접 만나 진중한 모습을 맞닥뜨리게 되니 처음에는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다 보니 단순히 눈앞의 1년, 2년만을 좇지 않는 현명한 청년의 안목이 돋보였다. 그는 당장의 정점을 원하지 않는다. 10년이 됐든, 20년이 됐든 스스로를 끊임없이 닦으며 좋은 배우로 성장하길 원했다.
또 김우빈은 또래 배우들이 하루아침에 인기를 얻었을 때 흔히 나오는 경솔함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안에서 찾고 고마운 마음은 밖에서 찾는 배우였다. 묵묵하게 한편에서 존재감을 발하는 원석을 발견한 느낌이 이럴까. 앞으로가 더욱 빛날 배우, 김우빈. 생각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났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 / 하경헌(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http://media.daum.net/zine/ladykh/newsview?newsid=20140102184110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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