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25주년에 / 권 정 생 | 아동문학가
오이풀이 부드러운 풀밭에 미루나무 그늘이 깔리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다. 승준이, 영규, 그리고 나하고 셋이 그 풀밭에 책보자기를 던져놓고 풀따기 놀이를 했다. 풀따기 놀이는 따로따로 흩어져 갖가지 풀을 따오는 놀이다. 풀따기 놀이에서 항상 이기는 애는 영규였다. 워낙 부지런해서 우리는 미처 찾지 못하는 이상한 풀을 어디선가 모르게 찾아 내어 따오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하고 누가 소리치면 우리는 풀따기를 멈추고 미루나무 그늘로 모인다. 거기 넓은 풀밭에 모여 앉아 따가지고 온 풀을 하나하나 맞춰 본다.
“박하풀.”
하면 각자가 따온 박하풀을 꺼내 놓고,
“미나리 아재비.”
하면 또 미나리아재비를 꺼내 놓는다.
이렇게 똑같은 풀끼리 맞춰나가다가 딴 애들이 찾아내지 못한 풀을 많이 따온 애가 놀이에서 1등을 한다. 그 애가 바로 영규였다.
우리가 따온 풀은 보통 서른 가지쯤 되는데 영규는 마흔 가지, 쉰 가지도 넘게 많은 풀을 따온다. 풀따기는 절대 밭에 심어 놓은 곡식은 안 된다. 풀따기 놀이에서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풀을 찾아내어 무슨무슨 풀이라는 걸 알아내었다. 풀따기 놀이는 그냥 내기가 아니라 대단한 공부가 되었다. 그때 풀따기 놀이를 하던 애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모두 헤어졌다.
한 30년 쯤 지나서 한번 영규를 만났다. 영규는 남쪽 어느 도시에 가서 살고 있었고 벽지를 바르는 도배장이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했다. 승준이는 연탄 배달을 하다가 영양 지방 누구네 과수원 농장지기로 갔다는데 그 뒤엔 소식이 없다.
풀따기 하던 그때처럼 모두 착하게 살아가고 있을 게다. 지금 아이들은 풀따기 놀이를 할 만큼 깨끗한 풀밭도 없다. 어린이도서연구회 25주년에 뜬금없게 풀따기 놀이가 쓰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이런 소중한 놀이를 할 수 있는 풀밭을 되돌려 줄 수 없을까 싶어서다. 풀따기 놀이는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체험하는 동화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다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아이가 생긴다. 그래서 학교 안에 경찰을 데려다 놓겠다는 말까지 들린다. 도대체 학교는 무얼 하는 곳이기에 상주하는 경찰이 필요한 것인가.
몇 해 전에 대단한 인기를 끌며 상영했던 《친구》라는 영화를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네 번을 봤다고 한다. 피가 쏟아져 내리는 길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장동건 오빠가 한없이 매력 있게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네 번이나 극장을 찾은 것이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남자가 매력 있게 보인다니 얼른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아이들이 너무도 흔한 폭력 문화에 길들어져 폭력에 중독이 된 게 아닌가 싶었다. 폭력이 끔찍하고 무서운 게 아니라 매력을 느끼고 쾌감을 얻는다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열심히 동화만 읽고 있는 사이에 세상은 이렇게 흉측해지고 있었다.
오이풀이 부드러운 풀밭에 미루나무 그늘이 깔리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다. 승준이, 영규, 그리고 나하고 셋이 그 풀밭에 책보자기를 던져놓고 풀따기 놀이를 했다. 풀따기 놀이는 따로따로 흩어져 갖가지 풀을 따오는 놀이다. 풀따기 놀이에서 항상 이기는 애는 영규였다. 워낙 부지런해서 우리는 미처 찾지 못하는 이상한 풀을 어디선가 모르게 찾아 내어 따오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하고 누가 소리치면 우리는 풀따기를 멈추고 미루나무 그늘로 모인다. 거기 넓은 풀밭에 모여 앉아 따가지고 온 풀을 하나하나 맞춰 본다.
“박하풀.”
하면 각자가 따온 박하풀을 꺼내 놓고,
“미나리 아재비.”
하면 또 미나리아재비를 꺼내 놓는다.
이렇게 똑같은 풀끼리 맞춰나가다가 딴 애들이 찾아내지 못한 풀을 많이 따온 애가 놀이에서 1등을 한다. 그 애가 바로 영규였다.
우리가 따온 풀은 보통 서른 가지쯤 되는데 영규는 마흔 가지, 쉰 가지도 넘게 많은 풀을 따온다. 풀따기는 절대 밭에 심어 놓은 곡식은 안 된다. 풀따기 놀이에서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풀을 찾아내어 무슨무슨 풀이라는 걸 알아내었다. 풀따기 놀이는 그냥 내기가 아니라 대단한 공부가 되었다. 그때 풀따기 놀이를 하던 애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모두 헤어졌다.
한 30년 쯤 지나서 한번 영규를 만났다. 영규는 남쪽 어느 도시에 가서 살고 있었고 벽지를 바르는 도배장이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했다. 승준이는 연탄 배달을 하다가 영양 지방 누구네 과수원 농장지기로 갔다는데 그 뒤엔 소식이 없다.
풀따기 하던 그때처럼 모두 착하게 살아가고 있을 게다. 지금 아이들은 풀따기 놀이를 할 만큼 깨끗한 풀밭도 없다. 어린이도서연구회 25주년에 뜬금없게 풀따기 놀이가 쓰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이런 소중한 놀이를 할 수 있는 풀밭을 되돌려 줄 수 없을까 싶어서다. 풀따기 놀이는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체험하는 동화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다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아이가 생긴다. 그래서 학교 안에 경찰을 데려다 놓겠다는 말까지 들린다. 도대체 학교는 무얼 하는 곳이기에 상주하는 경찰이 필요한 것인가.
몇 해 전에 대단한 인기를 끌며 상영했던 《친구》라는 영화를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네 번을 봤다고 한다. 피가 쏟아져 내리는 길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장동건 오빠가 한없이 매력 있게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네 번이나 극장을 찾은 것이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남자가 매력 있게 보인다니 얼른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아이들이 너무도 흔한 폭력 문화에 길들어져 폭력에 중독이 된 게 아닌가 싶었다. 폭력이 끔찍하고 무서운 게 아니라 매력을 느끼고 쾌감을 얻는다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열심히 동화만 읽고 있는 사이에 세상은 이렇게 흉측해지고 있었다.
출처 : 놀이배움터
글쓴이 : 일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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