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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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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은,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외국 작가로서는 우리 나라에 팬이 가장 많은 그림책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간혹 여러 사람
앞에서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을 보여 주면, 이미 그 책을 본 사람들도 꽤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벌린
입이 도대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즐거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 반응에 나 또한 즐겁고 행복해지는 덕분에 『지각대장 존』은 내 그림책
이야기의 단골 소재가 됐습니다.
그림책이 주는 즐거움의 종류는 작가에 따라서 각각 다릅니다. 훌륭한 작가일수록 놀라울 정도로
남다르고 여운이 오래 남는 즐거움을 주지요. 버닝햄이 주는 즐거움 역시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나의 경우 그것은 현실과 환상의 발랄하면서도 깊이
있는 조화, 파격적이면서도 안정감 있는 조화가 주는 즐거움입니다.
버닝햄의 책에는 유난히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악어와 사자를 만나고 홍수에 휩쓸리는 바람에 만날 지각해서 거짓말쟁이 소리를 듣는 아이(『지각대장 존』), 시장 갔다 오는 길에 온갖 동물을
만나 장에서 사온 물건들을 하나씩 빼앗기는 아이(『장바구니』),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나일강에도 가고 아마존에도 가고 사막에도 가는
아이(『줄리우스는 어디 있지? Where's Julius?』), 목욕하는 내내 퍼부어지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중세로 돌아가 갖가지 신나는
모험을 벌이는 아이(『목욕 끝낼 시간이다, 셜리 Time to get out of the bath, Shirley』) 등등…….
현실과 환상이 그렇게 서로 뚜렷이 구별되면서도 또한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가
그림책에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환상적 요소가 많은 게 그림책의 특성이지만, 환상은 완전히 현실화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런데
버닝햄은 그 둘을 확연히 분리시키면서도 아주 편안하게 뒤섞습니다. 현실은 억압적이거나 불만족스러워 보이지 않고, 환상으로의 진입과 진출은 힘겨워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는 이 놀이에서 저 놀이로 옮겨 노는 것처럼 두 세계 사이를 왔다갔다합니다. 그러면서 버닝햄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그
두 세계의 뒤섞임이 얼마나 자유롭고 풍요로운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입니다. 환상에서 현실로 왔다갔다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으면서 의미있을
수 있는가를 그는 참으로 군더더기없이, 극적으로 그려 냅니다. 『지각대장 존』은 존 버닝햄의 그런 이야기 솜씨를 대표적으로 보여 줍니다.
흑백이나 어두운 색조의 화면으로 보여 주는 현실과 밝고 현란한 색채로 보여 주는 환상 장면이 경쾌하게 엇갈려 나옵니다. 학교로 가는 머나먼 길,
거짓말하지 말라며 길길이 날뛰고 혹독하게 벌을 주는 선생님이 나오는 현실의 장면은 무채색에 그리다 만 듯 허술해 보입니다. 그러나 악어와 사자와
홍수가 나오는 환상 장면은 밝고 풍요롭고 행복한 색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이 이야기는 풀 죽은 아이와 매정한 선생님, 풍성한 환상과 메마른 현실 사이의 대비, 더 나아가 대결인 듯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이해 못
하고 심하게 구는 선생님은 뭔가 깨우침을 얻게 되고 아이에게는 빛이 더해진다는 희망적인 결말로 끝맺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내게는 버닝햄의 세계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현실과 환상 양면의 전면적인 수락입니다. 앞서 나는 버닝햄의
책에서 ‘현실은 억압적이거나 불만족스러워 보이지 않고, 환상으로의 진입과 진출은 힘겨워 보이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로는 그렇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현실은 억압적이고 불만족스럽습니다. 환상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렇지만 환상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정말
힘겨운 일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존이 얼마나 학교에 가기 싫은지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은 어둡고 학교 가는 길은 구불구불 한없이 뻗어 있습니다. 그러나 존은
그 심정을 무표정한 얼굴에 숨깁니다. 환상 세계로 들어가 악어(아마도 개울가의 개구리겠죠)와 사자(아마 길에서 만난 강아지겠죠)와 놀다가 거기서
빠져나와 학교로 가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도 그림에는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장갑을 빼앗기고 바지를 찢기는, 그러니까 뭔가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대가를 치뤄야 하는 일입니다. 존은 그 일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날마다 해 내고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을 포기하거나 어느 한 쪽으로 숨어
버리지 않고 그 싸움을 매일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승리는, 그 두 세계의 만남입니다.
선생님이 고릴라에게 붙잡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 무채색인 것이 그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때까지의 버닝햄 문법으로 보자면 그 장면은 현실이어야 하는데, 내용은
환상입니다. 현실과 환상이 뒤바뀌고, 학생과 선생 사이의 대립 양상도 뒤바뀝니다. 여기서 이제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는 무의미해집니다. 존의
삶에서도 선생님의 삶에서도, 그 둘에는 이제 똑같은 무게가 실립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페이지, 존이 또다시 학교에 가는 길에는 분홍빛 햇살이
뻗어 있습니다. 환상과 현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경험을 해 본 아이, 그 둘 사이의 균형 잡기를 이루어낸 아이에게 삶은 좀 더 희망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환상은,
억압적이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이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현실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꿈을 꿀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인간이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삶은 현실과 환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등장인물 대부분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두 세계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균형을 잡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버닝햄의 책은, 그 기발하고 천연덕스러운 넘나듦이 주는 즐거움과 함께 묵직한 안도감을 줍니다. 많은
일을 겪고 풍상을 넘어서 인생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신뢰감 같은 것이겠지요. 『우리 할아버지』가 그토록 가슴 찡하게 읽힐 수 있는
까닭도 그가 삶과 죽음 양면을 전폭적으로, 긍정적으로 수락하면서 관찰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할아버지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들이
몇 권 있지만 『우리 할아버지』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은 그다지 흔하지 않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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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자국』 표지 | 버닝햄은,
심지어 아이들에게 알파벳과 색깔과 숫자와 반대말을 가르치는 책에서조차 그런 삶에 대한 성찰과 균형 감각 섞인 드라마를 보여 줍니다. 『첫
발자국First Steps』은 버닝햄의 책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입니다. 단어 몇 개가 토막토막 나오는 알파벳 코너에서부터 노란 밀짚모자를
쓴 사내아이가 계속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코끼리를 번쩍 들어올리고, 산양에게 엉덩이를 찔리고, 두 손 가득 아이스크림을 든 채
행복해하고, 우산 들고 하늘을 날고, 친구들과 나무에 올라갔다가 호랑이에게 쫓겨 내려오고, 언덕길에서 하마를 끙끙 밀어올리고……. 온갖 놀이를
펼칩니다. 알파벳 한 자, 색깔 하나 알려 주면서도 거기에 그야말로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풍요로운 놀이판을 펼쳐 놓는 것입니다.
dry와 wet를 가르치는 페이지를 한 번 볼까요? dry에서는 예의 그 사내아이와 노란 수영복 입은 고양이가 물이 가득 들어
있는 빨간 양동이, 초록 양동이를 든 채 서로 노려보고 서 있습니다. 그리고 wet에서는 서로를 향해 좌악, 양동이의 물을 퍼붓습니다. 물을
뒤집어쓴 그 둘의 표정은 너무나 느긋해 보입니다. hard와 soft 역시 같은 인물이 나옵니다. 낙엽 뒹구는 벤치에서 신문지 덮고 잠들어 있는
노숙자 신세의 hard, 커다랗고 포근한 소파에서 따뜻한 이불 덮고 잠들어 있는 soft. 가장 드라마틱한 한 인생의 단면이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예리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맨 마지막 페이지 open과 shut는 정말 압권입니다. 아이가 커다랗게 벌려져 있는 악어의 입 속을 들여다봅니다.
한 쪽으로 쏠린 악어의 눈동자, 빨간 혀와 분홍색 입 천정! 사태의 추이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과연, 아래 그림에서 악어의 입은 닫혀 있고,
눈은 흐뭇한 듯 감겨 있습니다. 그리고 입 끝에는 아이의 노란 밀짚모자가 걸려 있습니다.
아이가
악어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을 보여 주는 끔찍한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버닝햄 식으로 보면 이것은 완벽하고 극적인 퇴장을 보여 주는
장치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이제 이 책에서의 할 일을 모두 끝냈고, 한쪽 눈을 찡긋하며 화염 속으로 사라지는 마술사처럼 악어 입 속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을 톱으로 자르는 마술을 보며 끔찍해할 필요가 없듯이 아이가 악어 입 속으로 사라지는 그림을 보며 끔찍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한다면, 첫 장면으로 얼마든지 다시 돌아가서 살려 낼 수 있으니까요.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유쾌하게 극적인 그림들, 그
천연덕스러운 유머와 무표정 속에 숨어 있는 장난기 덕분에 아이들은 숫자나 색깔이나 글자뿐 아니라 삶과 죽음, 인생의 짐과 희망, 이끔과 이끌림,
아름다움과 추함 같은 개념들을 자기도 모르게 익힐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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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표지 | 버닝햄은 1936년 영국의 서리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학교에 적응 못 해 섬머힐 스쿨에
다녔고, 군대 가기 싫어서 일종의 공익 근무 요원으로 근무했고, 이스라엘까지 가서 산림 감시원이라든가 청소원 같은 궂은일을 했습니다. 일종의
사회 부적응자, 아웃사이더였지요.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라 이 일 저 일 기웃거리다 처음으로 만든 그림책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로
1963년에는 덜컥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뒤 본격적으로 그림책 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1970년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로
다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았습니다. 찰스 키핑,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와 함께 영국의 3대 그림책 작가로 불린다고 합니다. 『곰 사냥을
떠나자』로 역시 국내에 팬이 많은 그림책 작가 헬렌 옥슨버리와 부부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버닝햄의 책을 보면
주인공의 생김새가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검피 아저씨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동글납작한 데다 무표정한 얼굴. 이 얼굴이 어른이 되기도 하고
아이가 되기도 합니다. 동그란 밀짚모자를 즐겨 쓰지요. 기분 좋으면 미소를 띠지만, 기분 나쁘거나 기운 빠지거나 하면 얼굴이 길쭉해지기도
합니다. 학교 가는 존처럼요. 아마 이 존은 버닝햄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의 어린 시절,
당신의 어린 시절이기도 할 것입니다. 왜 아니겠어요. 버닝햄을 좋아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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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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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정 / 1959년에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뮌헨 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한국프뢰벨 유아교육연구소의 수석 연구원과 공주 영상 정보 대학 아동 학습 지도과 교수를 지냈습니다. 동화 작가와 아동 문학
평론가,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화『믿거나 말거나 동물 이야기』『유령들의 회의』를 썼고,『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행복한 하하호호 가족』『용감한 아이린』『어린이 문학의 즐거움』(시리즈)『용의 아이들』등 옮긴 책이 아주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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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나온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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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 / 존 버닝햄 글·그림,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 존 버닝햄 그림·글, 이주령 옮김 /
시공주니어 |
장 바구니 / 존 버닝햄 글·그림, 김원석 옮김 / 보림 |
우리 할아버지 / 존 버닝햄 글·그림,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 존 버닝햄 글·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