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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공간

6월10일 민주항쟁 기념일-기억을 더듬어....

어제는 6월10일 민주항쟁 22주년 되던 날이었다.

1980년에 5월 광주 민주항쟁이 있었다면 1987년에는 6월10일 민주항쟁이 있다.

얼마전에 아이들과 함께 마트에 간 적이 있었다.한글을 모르는  나이가 아닌  아이들은 버젓이 상표가 붙어 판매되고 있는 미국쇠고기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그리고 아이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우리나라는 어떨 때 보면 잘 이해가 안돼. 왜 우리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소 싫다고 했는 데도 이렇게 있는 거야.정말 실망이야."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괜히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아팠고,나라에 대해서 불신감을 키워주는 거 아닌가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불현듯 "정말 실망이야".....이 말이 이상하게도 큰 울림처럼 가슴을 쳤다.그건 바로 22년전 우리나라를 향해서 내가 외쳤던 말이었다.

22년전...1987년 6월 우리집은 경희대와 외국어대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날마다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후끈후끈 더운 대낮에도 창문도 못 열어 놓고 숨조차  크게 쉴 수가 없었다.그리고 화염병을 던져가며 시위하는 대학생 언니,오빠들도 최루탄을 있는 대로 퍼부어대던 전경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저 나는 맑은 공기 마시며 동네 골목에 나가 마음껏 뛰어다니고 싶었다.

사실 7년전에 있어다던 광주 이야기는 들어도 먼나라 이야기만 같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그저 단순히 뭔가 잘못되었다는 정도 밖에는....

그런데 그 중심 인물에 있어다던 분이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왔다.대통령 전모씨도 모잘라서 노모씨까지...그래서 7년뒤 참았던 울분이 한꺼번에 폭발하였던 것이다.이런 맥락을 어느정도 알고나니 대학생 언니,오빠들이 이해가기 시작했다.무엇보다 정치는 제쳐두고라도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빗발쳐대는 최루탄때문에 더이상 살 수가 없었다.그래서 우리 동네 아저씨,아줌마들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리동네에서는 "노태우 물러가라'가 아닌 "최루탄 사용중지"구호가 더 크게 메아리쳤다.

한번 어느날은 동네 입구가 막혀 집에 갈 수가 없었다.태풍전야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더니 커다란 함성소리와 함께 도망치는 대학생 무리들과 쫓아오는 전경들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정말 순간 반사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니 살아서 이곳을 빠져 나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가게들도 이미 모두 셔터가 내려진 상태의 대로변에서 나는 무작정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 무조건 문이 열려있던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집에서는 한 아줌마가 쌍둥이 어린 아기들과 창문도 못열어놓고 한참실랑이 중 이었다.아마도 그 아기들이 지금은 20대 청년으로 성장하였을 게다.

나는 그집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나 말고도 그 집에  들어온 사람이 또 있었는 데 전경들을 피해 온  대학생이었다.이마에 피를 흘린 채 물한잔만 마실 수 없겠냐던 대학생의 모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박혀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와땀으로 구호를 외쳤지만 결국 노모씨가 변함없이 대통령이 되었다.그래서 현장을 목격하고 만 나는 대통령에 당선되어 TV에 나와 함박웃을을 짓는 그 사람을 보며 외쳤다."정말 실망이야'

어느덧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나도 더이상 혈기왕성하던 십대소녀는 아니지만.....우리가 하는 일이 계란으로 바윗돌 깨부수는 것 만큼 어렵다는 것도 알지만....그래도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자라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멈출 수가 없다.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많은 돈을 남겨주지는 못하더라도 밝은 미래,희망찬  행복한 미래는 남겨주어야 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