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씨가 제7회 언론문화제 강연을 위해 옥천을 찾았습니다. 매년 옥천언론문화제를 통해 에너지를 얻고 서울로 돌아간다는 그에게, 이 날 자리를 함께한 우리고장 주민들은 강연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질문공세로 풀뿌리가 살아있음을 확인시켰습니다.
그 역시, 뜨거운 가슴을 여는 강의로 주민들과 소통했음은 물론입니다. 교육 문제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 민주주의 위기를 날카롭게 지적한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씨, 그의 강연 중 주요내용을 정리해 독자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콩도르세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믿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죠. 우리 사회는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무조건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많은 듯합니다."
△ 20년 전만 해도 스스로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적어도 하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식하다는 것. 최소한 그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을 의문도 품어보지 않고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넘치는 지금 자신을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방송으로, 학원에서, 학교에서 듣고 암기하면서 내가 알고 있다는 생각을 고집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행동합니다.
우리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이미지와 생각들이 언론과 교육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 권력이 채운 것은 아닐까 하는 비판의식을 갖기는 너무 힘듭니다. 당신이 고집하는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 당신은 어디서 얻었습니까? 스스로 서가에서 보고 싶은 책을 선택하고 책을 펼쳐 주체적으로 얻은 것입니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주입되었습니까? 영화 '매트릭스'는 단지 영화가 아닙니다.
"북유럽 사회복지국가 학교들에는 운동장이 없습니다. 운동장이 없으니 줄 세우지 않습니다. 몸으로 줄 서지 않으니 성적으로도 줄 세우지 않습니다. 그들의 문화에서 18세 미만의 미성년 학생들에게 성적순으로 서열을 부여한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가혹행위입니다."
△ 교육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우리 교육현장은 민주공화국의 산물이 아닌 일본군국주의 군사학교가 그 기원입니다. 학교 수위실은 위병소, 운동장은 연병장이 변한 모습입니다. 부대장의 훈시는 교장의 훈화로 바뀌었습니다. 교육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프랑스가 그들의 헌법에 따라 자유, 평등, 박애를 교육의 목표로 삼듯 우리 학교는 민주공화이념과 인권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나요? 아니면 질서와 권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 기계적 암기, 국익, 경쟁력을 목표로 삼고 있나요?
"학생들이,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독서와 토론, 자연과의 교감을 포기하고 가장 소중한 바로 이 순간을 학교에 저당 잡히도록 만드는 미끼는 바로 계층상승입니다."
△ 톨스토이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소중한 바로 지금은 불확실한 미래에 저당 잡힌 채로 군대나 다름없는 학교에 묶여 있습니다. 책을 읽고 토론하며 여행하고 주체적인 자아를 탐구해야 할 시간에 자기 돈 들여가며 지배계급이 요구하는 정보들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좋게는 계층상승의 유혹을 차지하기 위해서, 반대로는 나의 생존, 나의 가족의 생존을 지킬 수 없는 비극적인 처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회보장을 통해 그 사회 구성원이 비극적인 처지에 빠지는 것을 막는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디어와 교육은 이제 우리 사회 전체 부의 80%를 소유한 20%의 사람들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저 믿는 사람들이 아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듭니다."
△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주민 손으로 학교를 만드는 일입니다. 제국주의를 피해 간도로 떠난 우리 선조들이 맨손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학교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옥천신문의 오늘은 옥천군민의 의식이 우리나라 전체 의식보다 높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옥천이 먼저 할 수 있고, 지금 바로 해야 할 일이 바로 우리 사회의 80%, 대다수를 차지하는 구성원들을 이롭게 하는 교육을 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일입니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우리 사회에 대한 주체적인 비판의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학교. 그 학교를 만드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초등학생마저 불확실한 미래에 소중한 이 순간을 희생하게 만드는 학교, 결국 취업과 정리해고의 고통 속에 끝없이 나의 오늘을 희생해야 하는 한국사회를 바꾸는 힘은 바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주민이 만드는 학교와 언론이 있을 때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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