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레드 기획] 가이드북으로 돌아본 한국의 얼굴…
그곳엔 아줌마, 애주가, 역동과 경쟁, 늘 공사 중이지만 아름다운 도시가 있었다
"계급화되고 남성 중심적인 신유교 사회"( < 미슐랭 그린가이드 > ), "사회적으로 어울리고 품위를 지키려면 눈치를 발달시켜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를 알아채는 것이 필수"( < 문 핸드북 사우스 코리아 > ), "잘 차려입어야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 서울 > ). 외국인이 쓴 한국 여행안내서를 보노라면 늘 보던 우리 얼굴이 낯설다. 지난 5월17일 프랑스 여행안내서 < 미슐랭 그린가이드 > 프랑스판이 출판돼 외국인의 한국 독후감이 하나 더 늘었다. 가이드북은 여행자를 끄는 삐끼다. 여행지의 속살을 드러내는 정보원이다.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속살은 어떨까.
한국, 진실과 오해
"한국에 가면 아줌마를 보게 될 것이다." 2009년 크리스틴 류가 지은 < 이바노브스키(Iwanowski) 여행안내서: 한국 여행자(Reisegast in Korea) > 는 아줌마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책이 일러주는 아줌마의 인상착의는 이렇다. "짧게 파마한 머리에 여름에는 선캡을 푹 덮어써서 얼굴을 가린다. 화려하고 요란한 색깔의 옷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여럿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 아줌마를 만나려면 지하철을 타면 된다. 키는 작지만 팔꿈치로 긴 줄을 헤치고 돌진하는 요령을 아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책은 "한국에선 아줌마가 대중적인 농담거리지만 정작 아줌마들은 그것에 신경 쓰지 않으며 그들은 다른 아줌마들과 어울려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인생을 즐기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결론이 공감을 부른다. "그들은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돕는 임무를 다해왔기 때문에 사회는 그들을 존경해야 한다."
한국에 대해 '뭘 좀 아는' 외국인은 그만이 아니다. < 문 핸드북 사우스 코리아 > 를 지은 로버트 닐슨은 쇼핑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마수걸이는 알고 갈 것을 당부한다. "어떤 가게 주인들은 그날의 첫 손님이 물건을 산다면 남은 하루 장사가 잘될 것이라 믿는다. 당신이 만약 그날 그 가게의 첫 번째 고객이라면 필요하지 않아도 작거나 싼 물건이라도 하나 사는 것이 좋다." < 론리플래닛 > 은 '나눔의 집' 방문을 제안한다. 한-일 관계나 반일 감정을 이해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경험이 있을까. "지금 그곳에는 80대 후반, 90대 초반인 여덟 명의 여성이 살고 있다. 13살에서 16살 나이로 끌려가 하루에 일본 군인 30~40명을 상대해야 했던 여성들이다. …힘든 경험이지만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매년 한-일 학생들은 나눔의 집에 모여 고통스러운 역사적 경험으로 서로를 더 이해하고 더 나은 이웃이 되는 법을 배워간다."
한국의 술 문화는 외국인에게 이야깃거린가 보다. < 미슐랭 가이드 > 는 "한국에선 어떤 회식도 소주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한국인들은 이 알코올을 작은 잔에 담아 원샷하기를 특별히 좋아한다. 작은 소도시들조차 밤마다 흥청망청하며 술 취해서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러시아 다음으로 알코올중독자가 많은 나라"라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소개한다. < 문 핸드북 사우스 코리아 > 는 "1차 다음엔 2차가 따라오고, 또 집 앞 포장마차에서 한잔 더 할 수도 있다"며 "술 취한 남자를 사회적으로 경멸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여자가 과음하면 큰 약점인 것처럼 조롱한다"고 했다. 비평은 예리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가진 정보가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다. < 문 핸드북 사우스 코리아 > 는 "한국의 전통적인 유흥 문화 중 가장 뛰어난 것은 기생집"이란다. < 문 핸드북 사우스 코리아 > 는 또 기생을 "예전엔 사회적으로 분리된 계급이었지만 지금은 미모와 재능 덕에 뽑힌 사람들"이라며 "가격은 비싸지만 기생집 방문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권한다. 저자가 일본의 게이샤와 혼동한 것일까. 정작 한국인들에게는 어리둥절한 설명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민낯
여행안내서는 한국에 대한 예찬자이자 따끔한 비평가다. < 미슐랭 가이드 > 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볼 수 있도록 관광을 안내하는 '그린 시리즈'와 그 나라의 고급 레스토랑 평가를 담은 '레드 시리즈'로 나뉘는데, 이번에 발간된 것은 그린 시리즈이다. < 미슐랭 가이드 > 가 본 한국은 "역동적이면서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차이가 가장 큰 나라, 여성들이 남성보다 총임금으로 치면 38%가 적은 나라"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은 또 있다. 자살률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 슬픈 기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31명이 자살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2009년엔 25세 미만 젊은이 20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이 중 6명이 초등학생이었다." 책은 '한국을 이해하기' 편에서 한국 사회를 "기억과 역사적 깊이를 거부하는 '빨리빨리' 사회"라고 부른다. "집에서도 경쟁은 계속된다. 아이들의 사교육을 책임져야 하고 심지어는 투잡을 하기도 한다. 종교·가족관계도 감당해야 한다. 휴식하거나 기쁨을 찾을 시간이 없다. 특히나 대도시의 삶은 그러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불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한국을 지배하는 확실성과 속도의 원리는 처음엔 경이롭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이 빨리빨리는 결국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은 과거를 부정하는 듯하다. 식민지나 군사독재 등 힘든 기억들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으로 묻혀지고, 과거는 국가적·전통적 동일성이라는 구조하에서만 받아들여진다." 책은 "우리는 뛴다. 여전히 뛴다. 그러나 어디로 뛰는지는 모른다"는 한 한국인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 론리플래닛 > 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여행안내서로 꼽힌다. 2010년 8번째 개정판을 내며 한국의 현실에 대한 보고와 비판을 대폭 늘렸다. 책은 '그린 코리아?' 편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저탄소 녹생성장' 전략을 비중 있게 소개하며 "그러나 지역 환경운동단체들은 특히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지지를 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업이 대통령이 실패한 대운하 사업을 재탕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또 습지와 해안지역을 보존하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서해안에 조력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고 했다. < 론리플래닛 > 은 '세계에서 가장 통제 안 되는 의회'라는 제목으로 실린 < 포린폴리시 > 의 기사를 인용하며 2004년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탄핵한 사건을 소개하기도 했다. 다른 여행안내서들도 '한국의 신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 론리플래닛 > 은 이를 한국의 가까운 역사적 관점에서 소개한다. "한국의 종이 매체는 조선·중앙·동아일보의 3대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그들의 영향력, 재벌과의 밀착관계와 함께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번창했다는 사실 때문에 어떤 한국인들에게는 '빅3'를 향한 불신이 남아 있다. 1988년 이러한 미디어의 삼두정치를 흔든 것이 < 한겨레 > 다. < 한겨레 > 는 정치적 신념 때문에 해고됐던 기자들이 만든 매체다. 이 신문은 뉴스에서 한국 사회가 잃어버렸던 왼쪽 날개를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 < 론리플래닛 > 은 아예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곳이며 핵 이미지가 드리운 북한은 여행자에게는 위험하지 않은 나라"라며 그곳을 방문해보라고 한다. 이 책이 '한국의 하이라이트'로 꼽은 풍경 첫 번째는 평양의 매스게임이기도 하다.
"사랑하면 보인다"
외국인이 본 가볼 만한 여행지도 우리 생각과는 좀 다르다. 4명의 지은이가 한국을 탐사한 < 론리플래닛 > 은 평양에 이어 경주의 쌈밥, 제주도, 서울의 홍익대 앞 공연, 서울 광장시장, 수원성, 파주 헤이리, 강원도의 해신당 공원, 덕수궁, 설악산을 권했다. < 미슐랭 가이드 > 는 이번 한국편 제작을 위해 현장답사 요원 5명을 한국에 파견해 1년여 동안 주요 관광지, 문화유적, 숙박시설, 음식점 등을 돌며 얻은 인상과 정보를 450쪽 분량의 책에 담았다고 한다. < 미슐랭 가이드 > 는 서울의 창덕궁과 후원, 경주의 불국사,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고창 고인돌박물관에 가장 높은 평점인 별 3개를 줬다. 이에 비하면 자연보존지역인 비무장지대(DMZ)나 제주도의 평점은 낮은 편이다.
한국 생활 14년째인 로버트 쾰른도 한국인의 건축에 반해 카메라를 들었다. < 서울매거진 > 편집장이자 외국인을 위한 여행안내서 < 서울 > 을 쓰는 그는 한국을 시각적 이미지로 재편집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다. "서울은 늘 공사 중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자신이 사는 곳의 아름다움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용산 성심성당, 길상사, 성라원, 간송미술관은 도심 속에 묻혀 있지만 두고두고 볼 가치가 있는 곳들입니다." 로버트 쾰른이 여행지를 쏘다니고 책을 쓸 때 좌우명으로 새기는 말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풍경은 전과 같지 아니하리라"이다.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한국 여행안내서는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란다. 곳곳에 아름다움을 은밀히 숨겨둔 나라, 사회적으로는 보존보다는 개발 의지만 가득한 나라, 밖에서는 큰소리치지만 가족 앞에서는 자신을 솔직히 표현하는 사람들. 많은 여행안내서가 공통적으로 짚는 한국이다. 이 불안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의 접점 어디쯤에 한국의 진짜 얼굴이 숨어 있을까.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http://zine.media.daum.net/h21/view.html?cateid=100000&cpid=18&newsid=20110603181124847&p=han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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