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는 시간

김애란 소설이 우리를 위로하는 법

< 두근두근 내 인생 > (김애란 지음, 창비 펴냄)은 2000년대 한국 소설의 반짝이는 아이콘인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이다. 청춘과 노년의 아이러니한 겹쳐짐이 아릿하면서도 따스한 서사로 펼쳐진다. 이 소설은 삶을 다시 사유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시간과 순간에 대해, 그리고 감각과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불행한 한 소년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는 면에서 신파적인 부분도 많다. 하지만 잔잔한 떨림이 오글오글 자리하고 있어 만만치 않은 긴장감을 간직하고 있다. 모두가 젊음만을 갈구하는 시대에, 늙음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하다. 현대사회는 삶을 순간화한다. 노년은 은폐되고, 죽음은 삶과 분리되어 있다. 우리네 삶은 촘촘하게 짜인 관성적 일상으로 인해 생명 가치를 응시할 수 있는 여유를 상실해가고 있다. 그런데 < 두근두근 내 인생 > 은 '늙은 젊음'이면서 동시에 '젊은 늙음'인 한아름을 당당히 화자로 내세운다. 열일곱 나이에 '조로증'을 감내하는 아픈 청춘이 서사의 전면에 나섰다. 당돌한 소년 한아름은 세상을 오히려 위로한다. '고통을 상품화'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2장), 거짓 교감에 대해(3장), 심지어는 병을 연민하는 건강에 대해서도(4장) '낯설게 보아'버린다. 한아름은 내면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목소리로 세상의 관습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시사IN 자료 < 두근두근 내 인생 > 은 김애란(위)의 첫 장편소설이다. 조로증에 걸린 주인공을 통해 삶을 응시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생명의 떨림'을 느끼며 탄생한 한 여린 삶이 불치병으로 안타깝게 사그라지는 과정이 큰 줄기를 형성한다. 이 큰 매듭은 삶과 죽음의 선적(線的) 전개라는 측면에서, 모든 인간의 숙명이기에 결코 소설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김애란은 큰 매듭에 작은 마디들을 만듦으로써 서사적 골격을 튼튼하게 구성해냈다. 철부지 아버지의 유쾌함이 넘실대는가 하면( < 달려라 아비 > 등), 자신감 넘치는 어머니의 옹골찬 모습이 빽빽이 들어서 있기도 하고( < 칼자국 > 등), 탄생에 얽힌 궁금증이 낭만적 어조로 기술되는가 하면( <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 등), 글쓰기 소설·예술가 소설로서의 면모( < 종이물고기 > 등)가 발휘되기도 한다.

마지막인 듯 절박한 생명의 이야기

누군가는 이 소설을 통해 비극적 삶에 몸을 담그며 깊은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장편의 구조를 떠받치기에 에피소드식 구성이 위태롭다고도 했다. 대다수 독자는 길게 이어지는 이메일 교환이 허무한 장난으로 마무리되는 장면에서 약간의 실망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애란의 단편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은 가벼운 독법으로 서사의 징검다리를 함께 건널 수 있었을 것이다.





< 두근두근 내 인생 > 김애란 지음/창비 펴냄

< 두근두근 내 인생 > 이 담고 있는 핵심적 메시지 중 하나인 '항상 마지막인 듯 세상을 절박한 눈으로 바라보는 생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듯한 울림"이 생명의 아름다운 연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유머로 무장한 낙천성은 '생명에 대한 비애적 찬미'이기도 한 것이다. 눈으로 세상을 더듬을 수 있다는 것, 바람을 촉감으로 만질 수 있다는 것, 숨결을 느낌으로 가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 아니겠는가. 모든 생명은 깊은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 상처로 인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오창은 (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 /

http://zine.media.daum.net/sisain/view.html?cateid=100000&cpid=131&newsid=20120125094718240&p=sis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