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은 양철북 대표가 연락을 받은 건 2010년 가을께였다. 충주에 있는 대안학교 '이오덕 학교' 일을 돕는 지인을 통해서였다. 생전 이오덕의 일기가 있는데 출간하지 않겠느냐고. 일기를 펴내는 게 유언이라고 했다. 42년 동안 쓴 일기. 98권이었다. 200자 원고지로 3만7986장. "독자로서 그의 글을 읽었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너무 큰일이다' 싶었다." 이후 추려서 내자고 이오덕의 아들 정우씨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2011년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원고지 3만7986장을 컴퓨터로 입력하는 데만 8개월이 걸렸다(입력한 전체 원고는 연구자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이오덕 학교에 보관할 예정이다). A4 용지로 4500장. 편집자 세 명이 그 원고를 다섯 차례 읽었다. 지나치게 사적이어서 공개하기가 적절치 않아 보이는 대목은 빼기로 했다. 그렇게 200자 원고지 6200장을 추려 펴냈다. 이번에 양철북에서 출간한 < 이오덕 일기 1~5 > 다. 책으로 나오기까지 2년8개월이 걸렸다.
ⓒ양철북출판사 제공 아동문학가이자 우리말 운동가인 이오덕 선생(위)은 생전에 98권의 일기를 남겼다. |
출판사는 일기를 추리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학교나 세상에서 겪은 일 가운데 그 시대의 기록이 될 만한 글, 일상을 더 또렷하게 붙잡아 쓴 글, 한 개인의 역사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시기별로 중요한 사건이 엮여 있는 글 등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누군가는 교육자로, 누군가는 아동문학가로, 누군가는 우리말 운동가로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편린 말고 온전한 한 인간을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드러내고자 했다.
권정생과의 애잔한 첫 만남
교육과 글쓰기, 우리말 바로 쓰기에 헌신한 만큼이나 사회운동에 열성적이었던 그의 기록은 그 자체로 '이오덕의 눈으로 본' 현대사를 담고 있다. 10월 유신, 10·26,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1991년의 봄, 몇 차례의 대통령 선거 등. 한 개인의 눈을 통해 본 당시의 상황을 읽는 재미가 있다. 이원수·문익환·함석헌·염무웅·신경림·백낙청·김남주 등 그가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이 군데군데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1973년 1월 권정생과의 첫 만남이 눈에 띈다. 아파서 신춘문예 시상식에 못 간다는 권정생의 말을 듣고 이오덕은 '여비가 없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 '원고지를 사 쓰라'며 가방 속에 있던 원고지와 당시 돈 1000원을 두고 온다. 이후 두 사람은 평생의 친구로 지냈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려 발 벗고 나섰다. 그 첫 만남이 애잔하다.
올해는 이오덕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출판사 양철북은 7월13일 오후 4시부터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새롭게 만나는 이오덕'이라는 기념행사를 연다. 일기 낭독, 추모 동영상 상영, 노래 공연이 펼쳐진다. 8월25일에는 10주기 행사로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어린이도서연구회·어린이문화연대 등 이오덕이 만들고 참여했던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크고 작은 행사를 열 예정이다.
차형석 기자 / cha@sisain.co.kr
http://media.daum.net/zine/sisain/newsview?newsid=20130711091317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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