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책이라면 너무나 유명한 버지니아 버튼의 < 작은 집 이야기 > 가 있다. 꽃 피는 언덕에서 살던 시절의 행복한 얼굴, 도시 한가운데 버려져 있던 때의 공허한 얼굴 같은 생생한 표정이 독자들에게 깊게 각인되는 그림책이었다.
그 작은 집을 능가하면 능가했지 결코 못하지 않은 오두막을 발견하고 나는 탄성을 올렸다. < 삐딱이를 찾아라 > 가 그 주인공이다. "삐딱한 창문/ 삐딱한 굴뚝/ 삐딱한 지붕"이라는 리드미컬한 첫 문장이 시사하듯 이 이야기는 삐딱하고 경쾌하다. 삐딱이가 처음부터 삐딱한 건 아니었단다. 애가 일곱 명이나 태어나는 동안 점점 더 삐거덕거렸을 뿐. 집이 너무 작으니 이사 가자는 말에 심통이 난 작은 집은 가출을 감행한다. 집이 집을 나가다니! < 엉덩이가 집을 나갔어요 > 이래 가장 희귀한 가출이다.
< 삐딱이를 찾아라 > 김태호 글, 정현진 그림, 비룡소 펴냄 |
탄탄한 서사와 호탕한 모험
강을 건너고, 도시를 헤매고, 자작나무 숲에서 도둑을 물리치고,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삐딱이는 산전수전을 다 겪는다. 그러다 번듯한 빈집을 만나는데, 자기가 버리고 온 가족을 찾아가겠다는 그 큰 집을 "내 가족이야!"를 외치며 허겁지겁 따라가고, 한발 늦어 설 자리가 없어지자 해낸 생각이…. 이 기발한 결말은 책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이야기도 이렇게 재미있고 군더더기 없이 스피디한 데다 의성어·의태어를 적절히 사용한 문장도 좋지만, 더욱 좋은 건 종이공예로 만들었다는 일러스트다. 이런 손재주라니! 삐딱이의 삐딱한 표정, 혼비백산한 얼굴, 피곤하고 외로운 얼굴, 결의에 찬 얼굴 등등이 정말 생생하다. 일곱 아이, 빨랫줄의 빨래, 나무와 풀, 도시의 거리 풍경도 오밀조밀 풍성하다. 어떻게 종이로 이런 작품이 나올 수가 있나 찾아보니 부분부분 점토, 솜, 셀로판지, 패브릭, 와이어 같은 재료들도 활용했다고 한다. 어느 부분에 어느 재료가 쓰였는지 분간할 수는 없으나 그 장인정신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삐딱이가 들끓는 내면을 주체할 수 없어 바깥으로 폭발시키는 아이의 심리를 반영한다든가, 집-바깥-집으로 이어지는 전형적 이야기 구조 안에 아이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든가 하는 해설을 여기에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이 섬세하고 꼼꼼한 공예로, 이렇게 역동적이고 탄탄한 서사와 호탕한 모험의 기운을 담아낸 솜씨에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우두두둑 쩌억! 하며 삐딱이가 땅을 가르고 발을 빼내는 장면의 넘치는 힘과, 큰집 옆에 털썩 주저앉아 밤하늘을 보는 장면의 아릿한 서정을 양극에 두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이 신나는 책이, 답답한 요즘 드물게 숨통을 틔워준 돌파구였다.
김서정 (아동문학 평론가) / webmaster@sisain.co.kr
http://media.daum.net/zine/sisain/newsview?newsid=20130824110410711
이 그림책 정말 재미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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