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그린 그림책을 본다. 이런 그림책은 대체로 역사를 알려주거나(그리하여 그런 비극의 역사를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은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고), 전쟁이라는 현상이 얼마나 인간을 고통으로 몰고 가는지 알려주거나, 전쟁 중 얼마나 영웅적인 휴머니즘이 꽃필 수 있는지를 보여주거나(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도 그런 휴머니즘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고) 하는 데 목표가 있다. 사실 전쟁에 대해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일러줄 게 그 이상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 이상을 말하는 그림책이 < 소년 정찰병 > 이다. 이 책은 독자를 전장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간다. 남의 전쟁을 멀리서 넓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땅을 기고 '내 머리 위를 핑핑 지나가는 총알'을 느끼며 전쟁을 직접 치르게 한다. 간결하면서 때로는 시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지만, 죽음의 공포와 전쟁에의 환멸을 너무나 강렬하게 전달하는 텍스트가 그렇게 만든다. 교전을 코앞에 둔 숨 막히는 정적의 순간을 '내 숨소리가 아침 공기처럼 부드러워진다'고 표현하는 글을 읽다 보면, '나는 눈물을 꾹 참는다'는 대목에서 눈물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다. 열일곱 살 생일에 군대에 간 작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다는 해설에 기대지 않더라도, 매 순간 긴장과 슬픔과 절망과 분노 같은 감정들은 겪은 사람 아니면 알 수 없었을 실감으로 독자 안에 침투해 들어온다.
< 소년 정찰병 > 월터 딘 마이어스 글, 앤 그리팔코니 그림, 이선오 옮김, 북비 펴냄
간결한 문장과 독특한 콜라주
그러나 여전히 이 책은 그 이상을 말한다. 한 어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베트남에서 보낸 공포의 순간을 실감나게 전달하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다. 묘하게도 그것은 아름다움이다. 전쟁이 아니라, 전쟁 한복판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인간의 아름다움. 어떻게 이런 기분이 들지? 가만히 생각하니, 일러스트 덕분이다. 베트남 전쟁의 현장을 사람·동물·자연의 사진과 그림을 콜라주한 일러스트는 묘하게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현실에서 한 발 떨어뜨리는 그림 덕분에 독자는 전쟁의 비극성에 감정적으로 함몰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극히 절제된 문장들. '나는 총을 든다/ 나는 사라지는 그림자를 겨눈다/ 나는 그의 적이다/ 나는 총을 내린다.' 대치하고 있던 베트남과 미국의 두 소년병이 서로를 보내주는 이런 장면에서 아름다움이 흘러나온다.
'나는 이 전쟁이 정말 너무 피곤하다'는 마지막 문장은 전쟁에 대한 그 어떤 피 끓는 성토보다 강렬하다. 전쟁에 대한 책 딱 한 권만 권하라면, 나는 이 책을 권하겠다.
김서정 (아동문학 평론가) / webmaster@sisain.co.kr
http://media.daum.net/zine/sisain/newsview?newsid=20130914141308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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