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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살아가는 이야기

[편집실에서]누가 우리를 이등국민으로 만드는가

여기 애들 목소리 안 들리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봐요. 추워요. 꺼내주세요. 이 음성이 안 들리나요."

한 어머니의 절규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 저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있는데, 어떻게 손도 쓰지 못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갑니다. 그들의 눈물, 오열, 절규, 분노, 원망, 절망, 한, 애원이 그대로 가슴에 피멍으로 박힙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우리가 이등국민이었다는 것을. 일등국민은 저 현해탄 너머에 따로 있었다는 것을.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막내아들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미개한' 이등국민일 뿐입니다.

세월호는 건조된 지 20년 된 노후 선박이었습니다. 일본에서 1994년에서 2012년까지 운항했던 것을 중고로 들여온 것입니다. 일본은 여객선의 경우 통상 20년 정도 탄다고 합니다. 한국은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한국은 1000톤급 이상 대형 여객선의 88.23%가 해외에서 수입한 중고선박으로 평균 선령이 20년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새로 건조한 배를 탑니다. 한국은 일본이 탈 만큼 타고 난 뒤 넘긴 배를 탑니다. 일등국민과 이등국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습니까.

정부가 우리를 이등국민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선박 사용가능 연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해 줍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계 요구를 수용했다는 게 명분이었습니다. 여객선 업계가 영세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구요? 세월호의 소속 선사인 청해진해운 오너만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미국과 유럽에 수십억원짜리 부동산을 몇 채나 보유하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너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13개 비상장 기업이 보유한 자산가치만 해도 5000억원이 넘습니다. 돈이 없어 여객선 업계가 영세한 게 아니라 오너 일가의 탐욕을 채워주느라 영세한 것입니다. 이등국민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안전이라는 리스크까지 감수하며 오너 일가가 더 많은 부를 쌓도록 해준 게 바로 우리의 정부입니다. 침몰사고의 원인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을지 모르지만 이런 '비즈니스 프렌들리', 곧 금전만능주의가 우리 사회 안전 불감증을 만연시킨 주범 중의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효율과 경쟁의 서슬에 눌려 서자 취급을 받습니다. 이 또한 이등국민의 비애입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덕분에 20년 이상 노후된 여객선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여객선뿐만이 아닙니다. 경제활성화란 명분을 앞세워 오늘도 수많은 규제가 풀리고 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야 더 많은 돈을 벌 기회가 생겼다며 좋아라 할지 모르지만 서민들은 어떤 날벼락이 떨어질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철도에서, 공항에서, 원자력발전소에서 제2의 세월호 사고를 일으킬 시한폭탄이 이미 째깍거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애도하고 분노하고 같이 울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선장을 "죽일 놈"이라고 욕하고, 오너 일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건 쉽습니다. 그러나 구조를 들여다보고, 바로잡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됩니다.

누구는 돈벌고, 국민은 이등국민으로 만드는 이 부조리한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잘 사는 것, 경제성장, 돈이 최고라는 금전만능주의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탐욕의 바벨탑을 제한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에 대한 질문도 바꿔야 합니다. "무엇이 체제의 성장을 위해 좋으냐"는 질문이 아니라 "무엇이 국민을 위해 좋으냐"는 질문으로.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바꿔야 할 게 너무 많습니다.

게을러지고 무관심해질 때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추워요. 꺼내주세요. 이 음성이 안 들리나요" 라고 울부짖은 저 어머니의 절규를.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

http://media.daum.net/zine/newsview?newsid=20140430095818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