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 선 이래 거의 매해 봄이면 한 시간을 할애해서 아이들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수업을 해왔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이야기를 하는 나 자신이 슬픔을 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광주를 현장에서 직접 겪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올해 나는 또 다른 통증을 경험했다. 아니, 하고 있다. 내 일도 아닌데 가슴이 미어지고 통곡이 터져나오는 경험을.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 아니, 기울기 시작한 그 장면에서 시작된 증세다.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오후 고3인 딸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게 사실 아니래' 하며 걱정하던 것이.
그 이후 매일 뉴스를 접하면서 아이와 같이 울었다. 지레 걱정이 되어 딸에게 이제 뉴스도 그만 보고 인터넷 검색도 그만하라고 했다. 뉴스가 시작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잠자리에 들어 슬픔과 우울을 잠으로 달랬다. 그런 딸애의 모습을 보면서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세월호 애도 수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내가 내 감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솔직히 눈물 없이 세월호 수업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며칠을 고심했다.
↑ ⓒ박해성 그림 : 그런 나로 하여금 세월호 수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계기가 있다. 어버이날 즈음이 되면 우리 학교는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감사 편지를 쓰게 한다. 잘 쓴 아이에게 상장도 준다. 편지를 읽어보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 반 개구쟁이 아이가 쓴 편지인데, '부모님 감사하고 사랑해요' 하는 내용도 있지만 중간에 '요즘 우울하고 자꾸 눈물이 난다'면서 세월호를 언급하는 게 아닌가. 어쩐지 늘 운동할 때마다 선두에 서 있던 녀석, 개그맨을 꿈꾼다는 녀석, 수업 시간이 떠들다가 종종 걸리던 녀석이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라니…. 학교에 와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도 당연히, 많이 아팠던 것이다.
나중에 아빠가 된 여러분이 미안하지 않으려면
그래서 나는 임형주의 '천 개의 바람' 노래와 원시(原詩)도 준비하고 아이들 머릿수만큼 노란 띠종이도 준비했다. 성장학교 별의 교장 김현수 선생이 온라인에 공유한 '애도 수업' 자료도 준비했다.
어렵사리 입을 떼고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무고한 죽음과 민주화 투쟁을 벌였던 젊은이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앞으로 20~30년이 지나 내가 어머니가 되면 젊은이들이 무고하게 죽는 일은 없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 믿었노라고, 그런데 다시 어린 아이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저렇게 많이 죽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아직도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한 책임을 느껴 여러분한테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많이 울어야 했다. 아이들도 울었다. 남자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 그렇게 훌쩍거리며 오래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사람들은 세상에 희망이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 죽음에 맞닥뜨려도 서로를 위로하고 구명조끼를 나누던 단원고 학생들을 통해 오히려 희망을 보았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이 일 때문에 여러분이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렇게 체념하고 비관만 하고 있으면 앞으로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30년 뒤 여러분이 아빠가 되어서도 선생님처럼 아이들 앞에서 또다시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교단을 떠나는 날까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날 아이들이 친구들과 모여 노란 띠종이에 추모의 말을 써서 만든 서른네 개의 리본 중 돌아오지 않은 실종자를 위한 아홉 개는 아직도 그냥 우리 교실 뒤 칠판에 붙어 있다. 어쩌면 우리 반이 3학년으로 진급하느라 헤어지는 그날까지도 그냥 이제는 풍경이 되어버린 저 리본은 계속 붙어 있을지 모른다.
아직도 퇴근길에 뉴스를 듣다가, 홀로 집에서 신문을 보다가, 아이들이 청소를 마치고 다 돌아간 텅 빈 교실에서, 나는 울컥울컥 목이 멘다. 잊고 있다가도 새삼스레 억울하고 안타까워 눈물을 흘린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네 일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어버이연합도, '일베'도, 처음에는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믿고 싶다. 그리고 어쩌면 광주처럼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4월이 되면, 바다 앞에 서면, 우리는 저 깊은 곳에서 울음이 북받쳐 오를지 모른다.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 webmaster@sisain.co.kr
http://media.daum.net/zine/sisain/newsview?newsid=20141113082909125
며칠전에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었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문제작이다.
현기영 작가는 이 책을 1978년에 내고 끌려가 모진고문을 감내해야만 했다.
비록 책은 한동안 금서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책이 나오고 나서야 사람들은 제주도의 아픈 비극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진실이 수면위에 떠오르려고 할 때 그것을 다시 매장하려고 하는 검은 세력들이 있긴하지만..
하나의 골리앗은 수많은 다윗을 이길수 없다.
우리가 좀더 이런 사건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면 반드시 진실은 수면위로 완전히 떠올라 세상에 알려질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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