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의 '입결(입시 결과)'이 어느 정도 삶의 질을 보장해주는 대한민국에서 노는 아이란 꽤나 걱정스러운 존재다. 왜 우리 아이는 공부를 하지 않을까? 왜 컴퓨터 게임에만 매달릴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 걸까? 말 안 듣고 노는 아이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 해법에 대해 들어보는 강연을 다녀왔다. 선생님들을 위한 교육연수원 '티처빌'에서 준비했다.
노는 아이, 이해하세요?
학창 시절 공부만 했던 모범생 선생님들이 과연 노는 아이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또 그 아이들에게 합당한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서 출발해 기획된 강연이 있었다. 지난 1월 1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동그라미재단에서는 '노는 애들의 진짜 속내'란 제목의 세미나가 열렸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세미나를 듣기 위해 온 선생님들로 강연장은 꽉 찼다. 주말과 방학의 여유를 반납한 선생님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해 이해하고 지도하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메인 강연은 성장학교 별의 교장이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김현수 박사가 진행했다.
"저 역시 비행 청소년 출신입니다. 중1 때부터 반항하기 시작하면서 교복조차 제대로 입고 다니지 않았어요. 학급 분위기를 흐려놓는다는 이유로도 엄청 맞았고요. 중2병이란 말이 있죠? 2학년 때가 절정이었죠. 결국 3학년 때 상담 선생님 배정을 받고 1년간 상담을 했어요. 여기 모인 선생님들은 무단 조퇴 해보셨어요?"
선생님이 되기 위한 길은 엘리트 코스다. 학업 성적이 좋아야 하는 건 기본 요건. 일반적으로 선생님들은 어른들 말씀 잘 듣는 모범생 출신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학창 시절을 보낸 선생님들이 '노는 아이'들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혹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아이들을 포기하고 있진 않나요?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관심과 손길을 받지 못한 '노는 아이'들은 나중에도 '사는 둥 마는 둥' 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거예요."
김 박사는 반사회적인 청소년들이 언제부터 노는 아이가 됐는지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한다. 이런 아이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동안 어느 정도 심한 탈선을 했는가, 어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렸는가보다는 '언제부터 놀았는가'에 따라 개선의 여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잘 지내다가 고2 때쯤부터 '삐딱선'을 탔다면 그 아이는 조금만 도와주면 제대로 살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비행 소녀들을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 아이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을 줘야 합니다."
그는 노는 아이들은 훈육 지도보다 수업이나 학교생활에 참여시키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교는 이런 아이들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노는 아이, 공감하고 칭찬하자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공감의 문제다. 김 박사는 청소년기 아이들이 엄마의 말을 금과옥조로 철석같이 듣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라고 말한다.
"청소년기에는 부모님들과 5가지 규칙을 놓고 전쟁을 치르지요. 공부, 돈, 귀가 시간, 의복, 이성 친구에 대한 충돌이지요. '공부 안 하니?', '엄마가 다 해주는데 네가 돈이 왜 필요하니?', '몇 시에 들어오니?', '옷은 따뜻하게만 입으면 되지, 메이커가 무슨 소용이야', '너 걔 왜 사귀냐?'…. 엄마가 볼 때는 마음에 안 들고 큰일인 것처럼 보이죠. 청소년기에도 그 나름대로 쓸 돈이 필요해요. 또 어른만큼 다양한 욕구가 있어요. 이런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그 아이와 함께 살기 힘들 거예요."
청소년기에 가정 혹은 지역사회에서 좋은 어른을 만나 존중받는 경험을 해야 그 사회에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지금의 아이를 절대 부정하면 안 돼요. '밤의 선생'이라 불리는 일본 오사카의 미즈타니 오사무 교사는 비행 청소년들을 구제하기 위해 직접 밤거리를 헤맸죠. 그때 그는 아이들에게 '그래 너 마약 해도 괜찮아', '오토바이 타도 괜찮아'라는 말로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아이 모습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인간이 돼라'라는 기준으로 다가가면 아이들은 저항해요. 차라리 부모의 역할은 줄이고 아이에게 '사귀고 있는 이성 친구에게 좋은 영향을 받아라'라고 말해주는 편이 나아요. 아이들이 이성 친구에게는 아주 고분고분하죠(웃음).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이는 '그래? 그럼 엄마도 한 번 말해봐'라고 마음을 열 겁니다."
학교는 과거에 비해 더 분열돼 있다.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의 변동이 드물다. 학교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맛볼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며 그대로 사회에 나가서도 학벌 체제가 유지된다. 고착된 환경에서 무기력하게 노는 아이들은 점점 늘어난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칭찬해주세요. 제가 상담한 노는 아이에게 학교나 집에서 칭찬받아본 적 있냐고 물었더니 지난 5년간 한 번도 없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아이가 '저는 칭찬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에요'라고 답하더라고요. 잘하는 아이는 그냥 둬도 잘해요. 모두의 교실을 만들어주세요. 아이들이 왜 게임에 몰두하는지, 진짜 이유를 아세요? 게임은 가상공간이지만 자기가 크고 있다는 걸 보여주거든요. 무계급으로 시작해서 브론즈, 골드, 다이아몬드로 성장하죠. 이런 아이의 성취에 대한 욕구를 현실로 이끌어내주세요. 저도 중학교 3학년 때 상담을 1년간 받으며 다행히 따뜻한 어른들을 만났고 고등학교 때는 모범생으로 돌아왔습니다."
김 박사는 자녀에게 못 했던 그 말을 오늘 건네라고 제안한다.
"지금으로도 괜찮아. 천천히 시작해도 돼. 잠시 쉬어."
김현수 박사가 전하는 노는 아이 해법 열 마디
1
지금 관심 있는 것을 인정해주세요.
2잠시 쉬어도 된다고 해주세요.
3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괜찮다고 해주세요.
4천천히 시작해도 된다고 해주세요.
5잘하지 않아도 좋다고 해주세요.
6관심 있다고 해주세요.
7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세요.
8세상은 살 만하다고 얘기해주세요.
9"네 힘으로 했구나"라고 말해주세요.
10"네가 그렇게 하니 참 좋다"라고 말해주세요.
놀아본 선생님들이 건네는 노는 아이에 대한 한마디!
이번 세미나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에 소문난 선생님들의 특별 강연도 들을 수 있었다. 노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자신만의 노하우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는 교사 3명의 경험담과 조언을 모았다.
서준호 교사(불로초등학교)
초등학교 교사, 놀이 전문가, 심리치료사. 대학원에서 무용연극 치료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사이코드라마로 알려진) 심리극, 가족세우기(Family Constellation), LCSI(종합성격검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 아이는 왜 반항아가 됐을까요?"
저는 어느 날 학교가 재미없다는 한 아이의 일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흥미를 유발하고 참여할 수 있는 놀이 수업을 하게 됐지요. 처음 한 것이 연극 놀이였는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다양한 연극 놀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교육 연극에 대한 풍성한 자원이 쌓이게 됐습니다. 그러다 소위 복지 수준이 좀 낮은, 편부모 가정이 많았던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됐어요. 6학년 담임이 돼 들뜬 마음으로 무까지 준비해서(제가 개그맨 박준형을 닮았거든요) "안녕 반가워. 갈갈이 선생님이야"라고 밝게 인사했죠. 그런데 뒤에 앉은 한 여학생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시X, 지X하네…"라고 욕을 하더군요. 그때부터 그 학생과 저 사이에는 많은 사건이 벌어졌어요. 아이는 놀이 수업을 진행하려 하면 눈을 똑바로 뜨고 "선생님 싫어요. 안 하면 안 돼요?"라고 반항했죠. 온몸으로 제가 싫다는 걸 표현하더라고요. 저도 참다 참다 끝내 그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요. "야! 똑바로 해!", "반항해? 나가!" 그 아이를 제압해야 하는 게 제 목적이 됐죠.
그러다 그 학생이 왜 그렇게 반항하는 것인지 궁금하더군요. 알고 보니 사연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더라고요. 아버지는 딸을 보며 "너만 보면 재수 없는 네 엄마 생각나니까 나가!"라고 해서 가건물에 사는 할머니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된 거예요. 아이의 깊은 상처 탓인지 저도 많이 노력했지만 결국 아이와 친해질 수 없었고 그렇게 졸업식을 하게 됐어요. 무기력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 아이와 헤어진다는 것이 좀 홀가분하기도 했어요. 생각에 잠겨 빈 교실에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그 아이가 들어오더군요. 쭈뼛거리며 제게 쪽지를 주고 갔고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사실은 선생님이 싫지 않아요. 그냥 아빠 목소리랑 무척 똑같아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저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그동안 놀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을 재밌게 해주는 제가 좋은 교사인 줄 알았어요.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았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아이의 인생. 저는 그 아이의 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봤어야 했습니다. 그 이후로 상처 받은 아이들을 위한 심리치료극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공부와 실습을 통해 관련 1급 자격증을 따게 됐습니다. 저는 노는 아이들은 속으로 할 말이 더 많은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반항하는 아이는 '저를 좀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아이를 이해하려는 의지나 노력 없이 아이들에게 변하라고 하는 건 선생님의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김택수 교사(능내초등학교)
교사 마술 동호회 2,3대 회장을 역임했었다. 교과목 학습 내용과 관련된 마술을 100여 가지 넘게 연구 개발해 각종 매스컴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마술의 힘은 아이들이 교사에게 집중하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노는 아이? 바로 접니다."
여러분은 '매일 아침 PC방을 가고, 가출만 벌써 세 번째고, 일주일에 담배 세 갑을 피우는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친 거 아니야? 피하고 싶다'라고 생각하시겠죠. 그게 바로 저였어요. 저에게는 믿을 만한 어른이 없었어요.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고 공부 잘하는 누나를 넷이나 둔 탓에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죠. 15세에 처음 가출을 했어요. 사실 무서웠지만 한 번 나가보니 그다음부터는 쉽더라고요.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주말마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했어요. 제 주변의 노는 친구들이 "그래도 우리 중에 대학생 친구는 1명 있어야 되지 않냐"라며 저를 공부 잘하는 친구와 짝으로 붙여줬죠. 다행히 암기력은 좋았는지 그 친구가 외우라는 것만 줄줄 외웠더니 운 좋게 교대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제 행동이 잘한 건 아니지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누구보다 노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잘 지도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는 아이를 상담할 때면 저는 먼저 그 녀석이 왜 삐뚤어졌는지 이유가 궁금해요. '아빠 혹은 엄마와 무슨 일이 있었나?' 또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에게는 "담배 피우는 건 네 자유지만 피우면 나처럼 키가 안 큰다(웃음)"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도 이미 학생에게는 하나의 기회입니다. 결론은 하나예요. 교육은 관심입니다. 계속 그 학생을 알고자 하는 것. 변화는 꾸준히 알고자 하는 의지와 행동이 있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학생들은 꿈이 없다고 말해요. 뭐가 되고 싶은지, 학교에 왜 가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가치 부여 수업법을 진행합니다. 학생이 하는 일이 혹은 말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일깨워줍니다. 노는 아이들, 끊임없이 바라보고 관심을 줘야 하는 아이들이란 걸 잊지 말아주세요.
안태일 교사(중산고등학교)
해병대 출신 '상남자' 교사. '학내 체벌 금지 규정'이 생기기 전까지 '매는 소통의 도구'라는 신념을 갖고 학생들을 강하게(?) 지도했다. 그러나 그는 곧 매는 내려놓고 마이크를 들었다. 현직 교사 최초로 팟캐스트 방송을 운영하며 직접 노는 아이들을 방송에 출연시켜 그들과 소통하는 법을 택했다.
"노는 아이에게 소통하는 카리스마를."
'일반고 슬럼화'라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정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특목고, 자사고에서 빼갑니다. 비전 있고 꿈이 있는 학생들은 특성화고로 빠지죠. 평준화 지역의 일반 고등학교는 정말 공부하는 학생들이 드물어요. 과거에는 공부하는 애들을 따라서 그나마 하던 애들이 이제는 모두 노는 아이가 됐죠. 저는 그런 노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서 학교를 떠나야 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여러 번이에요. 교실 붕괴 상황에서 체벌을 많이 했어요. 매는 소통의 도구였죠. 담임이 무서워서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편지를 쓰고 가출한 학생도 있었어요. 이후 교육부에서 학내 체벌 전면 금지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체벌 대신 벌점 제도, 시 외우기, 청소…. 아이들 지도하기가 녹록지 않았어요. 새로운 소통법이 필요했고 저는 노는 아이들을 잡아다가 같이 팟캐스트 방송을 했어요. 방송을 통해서 학생들은 오히려 속내를 이야기하더군요. 그렇게 소통이 이뤄지려던 찰나, 저희 반 반장이 상담을 요청했어요. "선생님이 가출 아이, 담배 피우는 아이에 신경 쓰시는 동안 중간층 아이들의 상황은 말이 아니에요"라고 말이죠. 저는 그때 다시 깨달았어요.
소통하기 위해서는 방송이나 페북, 카톡과 같은 매개체가 아니라 대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노는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제 발로 찾아와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 전에 교사와 학생의 관계 세우기가 중요합니다. '나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고 너희는 나를 통해서 근사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인식시켜야 해요. 저는 교단에 서는 것을 마치 무대에 올라가는 것처럼 이미지메이킹해요. 요즘 아이들의 특성이 자기와 통하지만 카리스마가 강해서 자신을 좀 눌러주는 사람을 좋아해요. 설명하지 말고 납득하게 만드세요. 예를 들어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숙제 왜 안 했니?"가 아니라 "숙제 안 했니? 숙제를 안 해왔구나…" 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잘못했다는 것 그리고 벌을 내리는 것에 아이가 동의하도록 이끄세요. 소통과 카리스마, 두 가지를 잊지 마세요.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성구, 안지영 ■사진 제공 / 티처빌>
http://media.daum.net/zine/ladykh/newsview?newsid=20150203101309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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