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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우리놀이

[스크랩] 고싸움 놀이

가. 놀이의 개관


전남 광산군 대촌면 칠석리 옻돌 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10일경부터 2월 초하루에 걸쳐 놀아오던 놀이로 고싸움이 있다. 고싸움의 ‘고’는 옷고름이나 노끈의 한 가닥을 길게 늘여서 둥그런 모양을 맺는 것을 말하므로 놀이의 이름은 놀이기구인 ‘고’의 형태가 위에서 말한 고와 같다는 데서 따운 말이며 2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 싸움을 벌인다고 ‘고싸움’이라 한다.


나. 놀이의 유래


이 놀이의 유래에 대하여 옛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놀이의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속설이 옻돌마을에 전하고 있다.

풍수설에 따르면 옻돌 마을은 와우상(臥牛相) 즉 황소가 쪼그려 앉아 있는 형상이라 그 터가 무척 세다는 것이다. 이같이 거센 기운을 누르기 위하여 소의 입에 해당하는 곳에 구유를 상징하는 연못을 파 놓았고 또 황소가 일어서면 마을에 피해가 끼친다고 하여 소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소의 고삐를 할머니당인 은행나무에 묶어놓고 꼬리는 7개의 돌로 눌러 놓았다는 것이다.

또한 마을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터가 거세기 때문에 개가 자라지 않아 개 대신 거위를 기르고 있다고 한다.

고싸움은 이 같이 거센 터를 누르기 위해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속설은 전남 일대의 큰 마을마다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이며 옛날의 고싸움은 남평 지방에서 성행했고 장흥, 강진지방에서도 줄다리기의 앞놀이로서 고싸움이 놀아졌던 것을 미루어 볼 때 그리 믿을 만한 이야기는 못된다.

오히려 현재는 독립적인 놀이로 행해지고 있으나 사실은 쌍줄다리기의 앞놀이로서 상당히 보편적인 것이기에 줄다리기의 유래와 일치한다고 보여진다.


다. 놀이방법


고싸움의 대표적인 옻돌마을의 경우를 살펴 놀이방법과 상황을 기술하면 아래와 같다.

고싸움은 동부와 서부의 두 패로 나누어 한다. 동부는 상촌이라 부르고 서부는 하촌이라 하는데 이는 마을 가운데로 난 골목길이 경계선이 된다.

고싸움을 할 때는 상촌 즉 동부는 남성을 상징하고 하촌 즉 서부는 여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지만 일단 싸움이 붙으면 이런 속신은 아랑곳 않고 어떻게든지 이겨야만 한다는 승부욕으로 가득차 있다.

각 편은 줄패장을 두는데 이는 줄을 갖고 싸우는 패거리의 우두머리란 뜻으로 줄패장의 지휘에 따라 싸움을 전개한다.

줄패장은 고의 제일 앞에 타고 사움을 지휘하며 그 뒤에 3-4명의 힘세고 날쌘 장년층이 탄다.

한편 고를 메고 싸운는 놀이꾼을 멜꾼(고멘 사람)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중심 놀이꾼이기 때문에 힘이 세고 누구보다도 투지와 승부욕이 강한 장년층이 맡는다.

고싸움은 음력 초열흘경부터 시작되는데 먼저 10여세 가량의 아이들이 길이 5-6미터 정도의 자그만 ‘고삿고(골목고)’를 만들어 어깨에 메고 상대방의 마을 앞을 돌며 승전가를 불러 약을 올리면 상대방 쪽도 질세라 그보다 더 큰 고를 만들어 시위한다. 이어 15-16세 정도의 큰 아이들이 합세하게 되고 그 이튿날은 20세의 청년들까지 참여하여 소규모 고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면 마을에서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모여 고싸움을 하기로 합의하고 마을 청년들이 나서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볏짚을 모으로 고 만들 준비를 한다.

14일 오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고를 만들고 상․하 마을이 합동으로 11시경 마을 뒤쪽의 산 언덕에 할아버지 당에 제사를 모시고 마을 앞 은행나무로 된 할머니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풍물패를 앞세우고 화주 집으로 가서 매귀굿을 쳐주고 음복을 하면서 밤새 논다.

16일경 해거름이 되면 이미 만들어 놓은 고를 메고 풍물패를 앞세운 채 마을 앞을 돌아 다니며 전의를 다진다음 분위기가 고조되면 싸움판이 벌어질 마을 앞논으로 향한다. 이때상대방의 고가 보이면 의기 충천하여 노래도 빠른 가락으로 바뀐다.

고와 고가 서서히 마주보면서 접근하기 시작한다. 고머리를 서로 마주 대다가 떨어지고를 몇 번 되풀이하다가 “밀어라!”하는 줄패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풍물패는 옆으로 빠지고 멜꾼들은 두 손으로 가랫장을 치켜 들면서 함성과 함께 돌진한다. 고가 상대방의 고에 부딪치려 할 때 줄패장은 “빼라!”하는 명령을 내리고 놀이꾼들은 뒤로 물러나면서 함성을 지른다. 다시 줄패장이 밀어라는 명령을 내리면 정면으로 부딪치는데 그러면 고는 부딪쳐 미는 힘에 의해 하늘 높이 솟아 오르고 첫 번째와 두 번째 가랫장은 놀이꾼들의 손에서 벗어난다. 이때 줄패장들은 고 위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고 밑으로 떨어뜨리려고 일대 접전을 벌인다. 세가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줄패장은 재빨리 “빼라”는소리를 지른다. 꼬리잡이들은 줄을 당겨 뒤로 뺀다. 조금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밀어라와 빼라를 반복하면서 겨루다보면 부상자가 속출하고 결국 상대방의 힘이 빠지면 고 위에 자기편 고를 얹어 짓눌러 땅에 닿게 하면 승패가 결정난다. 그러나 승부가 쉽게 나지 않기에 밤새도록 하기도 하고 이튿날까지 했다고 한다. 만약 패했다고 해도 이튿날 다시 도전하기 때문에 20일가지 매일 밤 계속된다고 한다.

승패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두 마을 줄패장이 합의하여 2월 초하루 날 고를 풀어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로 최후 승부를 가린다.

이긴 마을은 승전가를 부르면서 자기 마을을 휩쓸고 다니다가 부농 집으로 들어가면 주인은 주연을 베풀어 노고를 치하하고 놀이꾼들은 풍물을 치면서 저녁내내 논다. 이렇게해서 음력 초열흘 경부터 시작한 고싸움은 끝이 난다.


라.교육적효과


마을 단위의 대동놀이이기 때문에 마을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과 책임감을 배우게 된다. 즉 자기 마을에 소속되어 있고 운명공동체라는 것은 말로 설명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집단놀이를 통해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마을에 대한 애향심도 길러지게 되고 이후에 마을에서의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기타


고싸움의 정항을 설명해주는 말로 “옻놈 징치듯 한다”가 있다. 이는 고싸움이 격렬해짐에 따라 풍물패들도 마구 두들기는데 그러다 보면 채가 땅에 떨어지게 되고 이때 채 대신 돌을 주워 들고 징을 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이 지방에서는 이성을 잃고 오기로 마구 덤벼드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흔히 쓰인다고 한다.

그밖에 “고싸움에 이기면 논 세마지기 산 것보다 낫다”라는 말도 있는데 고싸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승부욕이 잘 나타난 말이다. 고싸움에 임하는 두 마을의 경쟁심이 얼마나 치열했는지가 위의 말에 잘 담겨있다.

그밖에 싸움을 거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를 듣고 상대편도 지지 않으려고  더욱 크게 노래했다고 한다.

“이겼네 이겼네 동부(서부)가 이겼네/ 졌네 졌네 서부(동부)가 졌네/이기려고 올라왔던 서부(동부) 청년들/어찌하여 지고 가는가/내년 요때나 만나나 보세”


<<참고문헌>>


문화재연구회, 『중요무형문화재2-연극과 놀이』, 대원사, 1999.

오장현,박진주,심우성 공저, 『민속놀이 지도자료』, 대광문화사, 1987.


출처 : 한국전래놀이협회
글쓴이 : 일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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