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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영화보는 아침

소설이 영화화되는 유형③] 판권이 비싸다 하되, 사랑 아래 돈이로다

열렬한 연애편지는 파릇한 20대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가, 영화 제작의 필수 능력임을 뒤늦게 깨닫는 영화 제작자들이 많다. 여러 번 배역을 고사한 배우에게 삼고초려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에 세계적인 스태프의 협업을 부탁할 때, 절대 촬영을 불허하는 로케이션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촬영하고 싶을 때, 제작자들은 진심을 담아 연애편지를 쓴다. 한 제작사의 프로듀서는 "실제 연애편지를 이렇게 썼다면, 시집을 가도 열 번을 갔겠다"며 농담할 정도다.

원작 판권을 구입할 때도 연애편지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해외 소설의 판권을 구매할 때 꽤 유용하다. 미국이나 유럽 출판사의 경우 한국 영화 시장에 대한 이해가 낮기 때문에 쉽게 판권을 판매하지 않는다. 할리우드나 유럽 등의 큰 시장을 노리는 경우엔 더욱 "한국처럼 작은 시장에 판권을 팔면 손해"라고 딱 잘라 거절한다고. 아직 한국 영화의 규모와 완성도를 신뢰하지 않는 출판사가 많다. "그럴 때는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 DVD를 보내서 설득하고, 간곡한 연애편지를 쓴다." 삼거리픽쳐스의 엄용훈 대표이사는 연애편지를 통해 한국 최초로 미국 소설의 판권을 직접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훈 작가의 < 현의 노래 > 판권료는 과연 얼마일까? 작가의 명성으로 보나 작품의 인지도로 보나 엄청난 금액을 상상하겠지만, < 현의 노래 > 주경중 감독은 김훈 작가를 직접 찾아가 "누구보다 제대로 원작을 살려내겠다"고 약속하고 판권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주경중 감독은 "정확한 금액까지 상세하게 밝힐 순 없지만, < 동승 > (2002)을 만든 독립 영화 감독이 3D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것도 힘들겠다며 많이 도와주셨다"고 밝혔다.

주경중 감독이 김훈 작가와 직접 판권 계약한 시점은 벌써 6년 전이다. 계약서엔 제작 기한을 3년으로 명시했지만, 그 역시 연장을 양해해 준 상태. 진승현 감독의 < 7월 32일 > (2010)은 고은 작가의 단편 소설 < 만월 > 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진승현 감독은 "고은 선생은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론되는 한국의 대표적 작가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작품의 영화화를 허락한 적이 없다. 어렵게 판권을 부탁드렸는데 상업적인 욕심 없이 과거의 아름다운 문예 영화처럼 찍으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판권료를 대신하셨다." 영화계의 훈훈한 인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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