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 도가니 > 를 영화로 제작하고 있는 삼거리픽쳐스의 엄용훈 대표이사는 먼저 "원작 소설의 영화화는 새로운 트렌드가 아니라 반복되는 제작 흐름"이라고 못 박았다. "시장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일 뿐, 원작 소설이 무조건 오리지널 시나리오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시장이 호황일 때는 재기 발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많아지는데, 계속 오리지널 시나리오만 기획하다 보면 소재와 이야기가 겹치고 결국은 '아류작' 느낌의 영화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그런 시기에 독창적인 원작 소설로 돌파구를 찾게 된다."
원작 소설을 탐색하던 엄용훈 대표는 군에서 막 제대한 배우 공유의 제안으로 < 도가니 > 의 영화화를 고려했다. "공유가 '이런 작품이 영화화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먼저 말을 꺼냈다. 원작 소설을 찾을 당시, 포털 사이트에서 공지영 작가의 < 도가니 > 를 본 적이 있었다. 당시 조회 수가 1,600만 번을 넘을 만큼 기록적인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다. 출판된 책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원작의 인기만 믿고 영화화를 결정했다면, 그때 바로 달려들었을 거다."
아무리 인기 있는 소설일지라도 영상화가 불가능한 작품이 있는 반면, 태생적으로 영상을 품고 있는 작품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책을 읽는 동시에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영상이 떠오르는 시각적 매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에 이어 < 도가니 > 까지 영화로 만들어진 까닭은 작가 특유의 시각적인 묘사력에 기인한다는 것.
"나뿐 아니라 < 도가니 > 를 읽은 많은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영상이 떠오른다고 한다. 제작자 입장에선 이 작품을 영화로 안 만들면, 잠이 안 올 것 같더라." 그는 영상화에 적합한 소설의 요건으로 뚜렷한 사건과 그 사건에 역동적으로 녹아들어가는 캐릭터를 꼽았다. 단순히 '원작의 인기'를 믿고 뛰어든 경우, 오히려 원작 팬들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라는 입장이다.
영화계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바 있다. 바로 인기 웹툰 작가 강풀의 원작을 영화로 옮겼다가 관객의 외면을 받은 경험이다. 독자가 스스로 스크롤의 속도를 조절하는 웹툰과 정해진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결론까지 끌고 가야 하는 영화의 문법은 하늘과 땅 차이. 하물며 문자를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은 더 치밀한 각색 과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원작 자체가 구현 가능한 이미지를 품고 있지 않으면 더더욱 영화화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황석영 작가의 < 오래된 정원 > 을 영화로 옮긴 임상수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터놓은 적이 있다. 대학 내에서 벌어진 학생과 전투경찰의 치열한 투쟁을 묘사한 분량은 원작 소설에서 불과 몇 줄이었지만, 그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영화의 주요 장면으로 삼았다고 한다. 뚜렷한 사건과 역동적인 캐릭터가 빚어내는 영화적 이미지로 최근 영화계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이는 김탁환 작가다. 관객 수 479만 명을 기록하며, 2011년 상반기 최고 흥행작에 등극한 <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 (이하 < 조선명탐정 > )은 김탁환 작가의 < 열녀문의 비밀 > 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지금까지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공지영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던 '한국 소설 원작 영화' 흥행 1위 기록(관객 수 253만 명)을 두 배 가까이 뛰어넘는 대기록이다. 조선판 '셜록 홈즈'를 연상시키는 다소 만화적이고 유쾌한 캐릭터와 정치적 음모가 숨겨진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현대적 이야기가 맞물린 소설은 처음부터 '시나리오'에 가까웠다는 평이다. < 조선명탐정 > 의 대박 성공에 힘입어 김탁환 작가의 소설 < 노서아 가비 > 가 곧바로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러시아 커피'를 한자음으로 바꿔 읽은 '노서아 가비'는 고종에게 매일 러시아 커피를 올렸던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따냐'를 둘러싼 음모를 그린 팩션이다. 장윤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주진모 유선 박희순 김소연이 출연하는 영화 제목은 < 가비 > . 이미 < 조선명탐정 > 을 통해 짜임새 있는 팩션의 가능성을 확인시킨 바 있어 < 가비 > 에 대한 기대도 높다.
마지막으로 영상을 품은 소설을 통해 영화 제작자들의 러브콜을 받는 스타 작가로는 천명관 박민규가 있다. 시나리오 작가로도 겸업했던 천명관 작가의 < 고령화 가족 > 은 연극 무대에서 먼저 공연되었고, 영화 판권 계약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으로 명성을 쌓은 박민규는 잠시 내면의 세계에 침잠하는가 싶더니,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로 매력적인 스토리텔러로서 능력을 과시했다. 이 소설은 오민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다.
http://zine.media.daum.net/movieweek/view.html?cateid=100000&cpid=215&newsid=20110427134609001&p=movie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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