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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시간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원장의 엄마들을 위한 그림책 특강

ㆍ'내가 사랑한 그림책'의 칼럼니스트 & '자녀교육' 파워 트위터리안

서천석 원장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와 포근한 말씨가 아이들의 그림책과 만났다. 재밌는 이야기와 예쁜 그림 위에 그의 해설이 더해지니 애들 책이라고 치부하기엔 참 여운이 짙다. 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펴지만, 그 속에서 부모들은 자신의 마음속 아이와 만나곤 한다. 그리고 위로를 받고 또 아이를 이해한다. 그림책 읽어주는 의사선생님 서천석 원장은 좋은 그림책 한 권이 아이와 부모를 바꿔놓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책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은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세계를 그린다. 동물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종이배를 타고 세계 일주를 떠날 수도 있다. 연필로 그림을 그리면 그게 무엇이든 실물로 변하기도 하고, 엄마와 아빠를 개미처럼 작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미운 동생을 도깨비에게 팔아버리고, 먹기 싫은 채소를 지구 밖으로 쫓아내기도 한다. 어른의 기준으로 볼 때 그림책은 현실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허황된 이야기다. 그러니 부모들은 그저 재미로 보는 것이겠지, 그저 웃으라고 보는 것이겠지 치부해버리기 쉽다. 조금 욕심을 내는 부모들 중에는 올바른 생활습관이나 예의범절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혹은 학습을 목적으로 그림책을 권하기도 한다. 조금은 쉽고 부드럽게 아이들을 가르칠 도구가 돼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글과 그림 안에는 말로 할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이와 어른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거든요. 비유와 상징 등 문학적인 코드를 통해서 말이지요. 그림책은 부모와 아이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소통의 도구입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통해 자기 자신의 감정을 만납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읽고, 또 자신 속의 아이와 만납니다."

'그림책으로 보는 어린이 마음'이란 주제로 한 인문카페 창비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만난 서천석(44,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 원장은 그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그림책 속 아이 세상으로 어른들을 안내했다. 한 일간지에 '내가 사랑한 그림책'이란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그림책 사랑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 원장이 생각하는 그림책의 힘은 컸다. 특히 부모가 육성으로 읽어주었을 때의 효과 말이다.

"그림책을 읽어주면 청각적인 주의력과 기억력을 길러줄 수 있습니다. 이는 집중력과 직결되는 부분이죠. 또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줍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는 서로 친밀감을 느끼게 되죠. 아이는 엄마에게 자연스럽게 의존하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는 아이에 대한 애착이 커집니다. 이런 애착 형성은 부모에게 자연스러운 권위를 부여합니다. 아이가 부모를 잘 따르게 되죠."

어른이 되어 만난 그림책 세상


서천석 원장은 강연에서 자신은 어린 시절 그림책을 한 번도 읽지 못하고 자랐다고 밝혔다. 읽은 그림책들은 성인이 된 후, 아빠가 된 후에 만나게 된 것이라고. 그동안 2천여 권을 구입해 읽었다고 한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독자로, 두 아이의 아빠로, 소아정신과 의사로 만난 그림책이다. 하지만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적인 특효를 가지는 하나의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부모들의 태도는 경계했다.

"제가 어릴 적에는 그림책이 없었어요. 아마 제가 처음 접한 그림책이 디즈니에서 나온 「아기 코끼리 덤보」였을 거예요.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조악했죠. 그러니까 저는 그림책은 건너뛰고 동화책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80년 12월인가 아마 컬러텔레비전이 처음 출시됐고, 그 후 1년 뒤에 학진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원색 그림책이 나왔어요. 그 이름도 호화로운 「호화로운 원색 그림책」입니다. 아마 최초의 그림책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림책은 그림책일 뿐 어떤 만능의 기능을 가진 교육 자료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지금과 같은 그림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고 자란 서 원장은 그렇다고 자신이 아예 그림책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당시에 읽었던 동화책 속 삽화들을 통해서 충분히 상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언한다.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밥과 물, 엄마의 사랑처럼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림책보다 더 다채로운 상상력이 펼쳐지는 곳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아이들의 마음속이다. 그림책을 읽었는지 유무와 독서량의 차이는 아이들의 상상력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충분히 상상하고 꿈꾸며 그것들을 시각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림책을 많이 보여줘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제가 말하는 그림책 읽기란 바로 '부모와 함께' 읽는 것이고 그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아이에게 무척 특별한 시간이 돼주거든요. 수많은 그림책은 그림책일 뿐이죠. 하지만 그중 어떤 한 권을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선물받았다면 그 그림책은 '선물받은' 그림책으로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잖아요. 그것처럼 부모가 읽어주는 그림책은 오로지 아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기에 매우 특별한 것이 돼줍니다. 아이에게 말이죠."

그림책 한 권이 부모와 자녀 간에 형성해주는 애착은 실로 놀라운 것이라고 한다. 책을 펼치고 함께 살을 맞대며 있는 시간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아이의 반응을 보면서 읽어주어야

유명 포털 사이트에 검색되는 주부들의 블로그를 보면 아이에게 책 몇 백 권을 읽어주었느니, 몇 천 권을 읽어주었느니 하는 게시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동화책으로 영재를 만들자는 모임들도 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어떤 책을 몇 권 읽었는지 학습지 숙제하듯 기록해놓는다. 그러나 서 원장은 독서량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좋은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책의 힘이요, 독서의 힘이기 때문이다. 감동은 결코 양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좋은 책이라도 어설프게 부모가 개입해 그림책 본연의 의도를 왜곡할 거라면 아예 읽어주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말한다.

"그림책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들어 있고, 작가의 마음이 들어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아이의 마음이 있고요. 그런데 부모님들은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아이를 좌지우지하려 해요. 나오지도 않는 장면을 넣어서 '잔소리'를 합니다. '그러면 되겠어, 안 되겠어?' 하면서 말이에요. 길들이려는 거죠. 그러면 아이들도 압니다. 마음을 닫아버려요. 그림책을 왜곡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읽어주세요."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 '아이의 반응'을 보면서 읽어주라는 것이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림책을 통해 부모와 자녀 간에 감정적인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데, 오로지 텍스트를 읽는 데 집중하다 보면 되레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아이가 재미있게 듣고 있는지, 지루해하지는 않는지, 어느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지 유심히 살펴보기를 권한다. 혹 궁금한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잠시 멈춰서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부모가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고' 하면서 개입해서는 안 된다. 부모에게 좋은 것이 아이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좋은 것을 찾고 판단한다. 그림책 한 권을 읽어주어도 제대로 잘 읽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그림책은 구입자인 부모의 구미에 맞게 나오는 책이 너무 많다는 게 서 원장의 생각이다. 지극히 부모 입장에서 듣고 싶은 말, 해주고 싶은 말들이 쓰여 있는 것들 말이다.

"아이를 위한 그림책 같지만 잘 보면 엄마를 위한 그림책이 아주 많아요. 이런 책들은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잘 알아요. 그래서 아이들 반응은 좋지 않죠(웃음). 엄마들을 위한 그림책은 엄마들이 가지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잘 드러내거나 보듬죠. 그리고 마지막엔 언제나 '사랑해'라는 말로 끝나요. 엄마가 아이에게 듣고 싶은 말인 거죠. 그래서 책을 통해 먼저 해주고 들으려는 거예요.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은 부모라는 것, 결국 우리들이 아이들을 매우 괴롭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책으로 아이 세상 엿보기

서 원장이 강연에서 처음으로 이야기한 책은 현대 그림책의 거장, 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그림책이며, 그림책의 매력을 알게 해준 첫 번째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삽화와 그림책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삶은 괴롭습니다. 행복하다고 누가 그러나요?(웃음) 누군가 하루 30번씩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짜증과 스트레스 때문에 아마 정신병에 걸려버리고 말 거예요. 또 아이들은 무력합니다. 아이들이 가진 힘이래야 부모에게 떼를 쓰고 말을 안 듣는 정도가 전부거든요. 부모의 사랑에 기대어 사는 아이들은 언제나 두려움 속에 살고 불안합니다."

모리스 센닥은 아이들의 괴로운 삶을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그것은 그림책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집 안을 어지럽히고, 강아지를 괴롭히며 신나게 노는 장난꾸러기 맥스는 엄마에게 꾸중을 듣는다. 맥스는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방에 가둬지는데 그 때부터 상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다로 항해를 떠나 1년 만에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도착한다. 그리고 여기서 맥스는 '조용히 해' 마법을 통해 괴물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괴물 나라의 왕이 된다. 이후 신나게 괴물 소동을 벌이고 한바탕 논다. 물론 여기서 맥스가 쓰는 '조용히 해' 마법은 엄마들이 자주 하는 그 말이다. 엄마의 잔소리는 괴물을 물리칠 정도로 아이들에게 무서운 것이다.

"그림책 속 괴물은 아이 내면에 숨어 있는 충동과 공격성입니다. 모든 아이는 괴물이 될 필요가 있어요. 그저 엄마 말만 잘 듣는 아이기만 해서는 곤란해요. 아이는 미성숙한 존재고, 괴물은 통제되지 않은 미성숙한 자아의 상징이에요. 부모가 아이의 내면에 있는 괴물을 부인하고 억압할 때 아이는 위기에 빠지거든요. 비록 위험하지만 그것은 아이의 또 다른 생명력이기도 하니까요. 아이가 괴물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괴물의 시기를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괴물을 좋아하고 공룡을 가지고 놀며 파워 레인저를 모아놓고서 자신이 힘을 얻은 듯 좋아하는 것은 자기 내면의 힘을 확인해서이다. 그래야 어른에게 통째로 잡아먹히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책에 자주 나오는 '먹어버린다'라는 표현은 부모의 세계에 합쳐져서 자신의 존재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의 말이다.

"그런데 그림책을 보면서 부모는 또 두려워해요. 정말 책의 주인공처럼 아이가 떼쓰는 것이 두렵고, 자기 통제에서 벗어나 상상하는 것이 싫은 거죠. 재밌는 사실 하나를 말하자면요. 모리스 센닥은 디즈니 세계를 혐오했어요. 아이들의 삶이 깔끔하고 교훈적일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삶이란 아이에게 괴물과 같아요. 그래서 괴물이 되어 괴물들과 싸우는 거예요. 그래야 화해도 가능하고 성숙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있는 그대로 안아주면 아이는 절로 성숙해져

괴물이 사는 나라의 주인공 맥스는 고민에 빠진다. 괴물들과 신나게 한바탕 놀았지만 그곳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맥스는 괴물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온 집의 방에는 아직 식지 않은 따뜻한 저녁밥이 맥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맥스는 엄마의 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 방에서 나갈 수는 없지만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사랑은 아니지만 말이다.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힘은 바로 성숙함이다. 성숙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가 괴물이 돼봤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괴물이 됐다가 방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부모는 아이를 믿어주어야 한다고 서 원장은 강조한다. 괴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하거나, 괴물이 될 수 없도록 만들거나, 괴물이 된 상태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즉, 평가하거나 비평하지 않아야 한다. 오직 행복만 주고 싶다는 부모의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그쳐야 한다. 시끄러운 것, 말썽 피우는 것, 소리를 지르는 것, 어지럽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아이의 모습이다. 벌어진 일에 대해서 나무라거나 탓하지 말자. 아이가 괴물에서 스스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켜보거나 돕자.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아이다움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안아줄 만해서 안아주는 것은 좋은 부모의 태도가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아이를 안아줘야죠. 그러면 아이는 저절로 성숙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상적인 부모가 되려고 너무 노력하지 마세요. 부모란 아이를 위해서 나쁜 역할도 해야 하니까요. 가르쳐야 하잖아요. 아이의 미움을 두려워하지도 마세요. 그 미움을 아이가 어디서 표출할 수 있겠어요. 부모밖에 없거든요. 대신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신뢰감이 있어야 해요. 다시 한번 말할게요. 안아줄 만해서 안아주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안아주는 부모가 되어주세요."

부모들은 아이를 수없이 용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더 많이 용서하는 것은 아이들이라고 서 원장은 말한다. 불안하기에, 인정받고 싶기에 부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늘 아쉬운 것은 부모의 태도다. 아이들이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주춤하면 고집이 세다고 몰아붙이고, 저항하면 말도 안 되는 떼쓰기라고 혼을 낸다. 그림책은 이 지점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고 서 원장은 생각한다.

"아이는 커가면서 저절로 사회를 배우고 경험할 텐데 부모는 마치 자신들이 아이와 사회의 대변자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 인생을 간섭합니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전달받고 싶은 것은 불안이나 전전긍긍이 아니에요. 자신감과 격려죠. 아이들이 넘어지고 깨져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믿어주세요.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읽어가면서요."

그림책은 아이의 마음이 쓰여 있고, 그려져 있는 책이다. 그 속에서 내 아이의 마음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서천석 원장의 도움을 조금 받아가면서 말이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이주석 ■취재 협조 / 창비어린이>
http://media.daum.net/zine/ladykh/newsview?newsid=20120906171814067

 

나도 모리스샌닥의 괴물들이 사는나라.. 참 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