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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시간

솔직히, 한국 사회는 망해간다

딱히 누구네 집 자식이랄 것도 없이 요즘에는 젊은이만 만나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들이 앞으로 살아낼 미래가 가난과 독재로 얼룩진 내 과거보다도 험악해 보여서다. 나이든 사람이 젊은 세대를 손가락질하면서 제멋대로이고 싹수없다고 핏대를 올려야 어쩌면 정상이다. 그러기에 앞서 측은한 마음이 든다면 그 사회에는 노란 불이 들어온 거다.

온난화 가스를 한껏 머금은 이 행성의 자동 온도조절 장치는 아무래도 고장이 났다. 매년 100년 넘은 기상 기록들이 깨져나가는 걸 우리는 보지 않는가. 올겨울에는 날씨가 또 어떤 변덕을 부릴지 초입부터 겁이 난다. 당연히 전 세계 곡창은 골병이 들었다. 화학 비료에 기반한 대규모 단작 기계농이어서 피해는 더욱 치명적이다. 바다의 산성화와 남획으로 원양의 물고기까지 씨가 말라간다. 전 세계 농수산물 생산량은 정점을 찍었다. 가계 소비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표시하는 엥겔지수가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계 경제의 근간인 석유 생산량도 한계에 달했다는 보고가 잇따른다. 석유 값은 언제나 오름세 일변도다. 곡물은 경제성만 있다면 즉시 석유로 대체된다. 석유 값이 배럴당 몇 십 달러만 올라도 전 세계 수천만 명이 굶주린다.





ⓒ한성원

파국을 막을 제동장치가 없다는 게 더욱 큰 문제다. 고삐 풀린 자본가들은 매복을 향해 달려가는 말에 채찍질을 해댄다. 세계인의 목을 죄는 곡물과 석유마저 그들이 건설한 거대한 카지노 경제의 칩으로 만들어버렸다. 글로벌 기업이 전 세계 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세계 곳곳이 슬럼화되고 있다. 부의 양극화는 이제 도를 넘었다. 자본가의 비위를 맞추려다 보니 약자에게 생존과 기회를 보장하던 교육과 복지 시스템의 황폐화가 세계적인 유행이 되었다. 창의력 있는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컴퓨터 자판에 화풀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비정규직은 세계 어디서나 팽창일로이다. 지금 20~30대는 앞으로 평생을 고용불안이라는 악몽에 시달릴 것이다. 서구 문명의 발상지인 유럽에서 젊은이의 시위와 폭동이 일상화돼간다.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신뢰의 추락은 바닥을 모른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 조종을 울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예 처음부터 기업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한국 사회를 거대한 불안의 선진 대열로 밀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오래전부터 재앙에 정조준해온 사회에 고속 로켓 엔진을 달아놓은 꼴이다.


한류와 아이돌은 경쟁교육의 이면


이명박 정부 5년을 통과해오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세심하게 기록한 책이 바로 <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 (오마이북, 2012)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영문학·국제경제학·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미국에서 뉴미디어를 전공한 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강인규 교수다. 당연히 지금 세계를 어둠 속에 몰아넣은 장본인인 미국 사회와 그리고 그 미국을 본뜨느라 정신 못 차리는 한국 사회를 뼈저리게 비교 체험한 분이다.

차형석 < 시사IN > 문화팀장은 내게 종종 우리나라 책도 좀 소개하라고 쓴소리를 해대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한국 필자들은 공부를 안 한다고, 특히 교수들이 쓴 책은 깊이도 감명도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 생각을 수정해야겠다. 이분은 정치·경제·언론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전모를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글이 쉽고 단호하며, 근거도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사소해 보이는 것을 놓치는 법이 없다. 심각한 얘기를 하면서도 재치와 유머를 잊지 않는다.

저자는 에두르지 않고 우리 사회는 망해간다고 말한다. 감당하기 힘든 속도로 추락해간다고 곁들인다. 증인은 아이들이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가 보여주듯,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 국가 중 꼴찌이다. 20대 여성의 47%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19%가 "고통스런 세상에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이를 낳기 싫다고 말한다. 이 사회의 아이 절대 다수가 불행하며, 여성은 그래서 아이를 낳기 싫다면 그 사회에 과연 미래가 있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 강인규 지음오마이북 펴냄

저자를 따라 좀 더 심화학습을 해보자. 한국청소년상담소 연구 결과는 더 끔찍하다. 자살을 고민하는 고등학생이 2008년 214명에서 2010년 476명으로 갑절 이상 늘었다. 중학생이나 초등학생 수는 그보다 더 많다. 이명박 정부 4년(2008~2011) 내내 자살은 청소년 사망원인 가운데 단연 1위였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0년 자살한 청소년은 교통사고·암·심장질환으로 사망한 청소년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이게 이명박 정부의 창의적 인재 육성 성적표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왜 불행한지는 대학 정문에 붙은 플래카드를 보면 이해한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 이런 유가 한국 대학에서는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슬로건이다. 대학은 어느덧 취업학원으로 변질한 지 오래이다. 저자가 보기에 기업이 대학의 교육과정을 좌우하게 만드는 것은 사자 입안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만큼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더구나 정부까지 나서서 취업률을 대학평가 기준으로 삼고 그에 따라 대학지원금을 결정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다. 미국처럼 기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라에서도 상상 못할 일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두 대기업 예비사원 연수원으로 변질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불행하다. 세계를 지향한다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옆 사람조차 배려하지 못하는 인성을 갖게 된 중요한 이유이다. 아무리 번듯해 보이더라도 한 사회의 교육을 책임질 만큼 현명한 기업이란 없다.

정치가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친기업 정부가 들어서면 반드시 복지가 축소되고 그러면 범죄가 늘기 마련이다. 사회학자 멜리사 벨릭의 논문이 보여주듯, 복지 투자가 늘면 흉악범죄는 현저히 준다. 한국의 복지 지출은 OECD 복지 낙제생으로 악명 높은 미국보다도 훨씬 뒤진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는 한국에서는 특유의 가족이란 방패막이도 제거돼가는 중이다. 최근 서울의 범죄 건수가 하루 100건을 돌파했고,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납치나 성폭행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부모가 자식을 안고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병든 노부모가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자살하는 현상이 무엇을 말해준다고 생각하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이런 배경에서는 전 세계를 휩쓴다는 아이돌 중심의 한류도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저자에게는 치열한 경쟁교육과 '박 터진다는' 아이돌 연습생 오디션은 하나의 몸통에서 갈려나온 두 개의 머리나 같다. 이쪽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아이들이 저쪽으로 몰리는 것일 뿐이다. 기획사라는 데는 마치 사설학원처럼 그런 아이들을 흡수해 착취한다.

저자는 이제 이명박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거가 물론 중요하지만 정치가 모든 걸 해결해주리라는 환상을 버리자고 제안한다. 그에 앞서 어째서 평범한 아파트 주민이 배달원에게 엘리베이터 금지령을 내릴 수 있었을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1년 고려대 의대생들의 성추행 사건도 그에게는 목에 가시 같은 존재이다.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기록해놓고 오히려 피해자를 협박한 이들이 우리 학교 제도의 초특급 우등생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밀양 성폭행 사건도 주목했다. 가해자 부모 대다수는 지역 유지들이었다. 이들은 '앞길이 창창한 우리 아들' 걱정을 하면서 자신들이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피해자 가족에게 '딸자식 잘 키워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하는 어머니도 있었다. 이들이 모두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냐고 저자는 묻는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의 미소 속에서 비로소 행복해지는 본연의 모습을 잃은 탓에 불행하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것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네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그래야 비로소 희망이란 걸 가질 수 있다. 그의 말이 너무나 지당해서 슬프다. 우리는 어쩌다 인본과 다투게 됐을까.

문정우 대기자 /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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