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생인 제임스(가명·8)는 요즘 드럼을 배우고 싶다. < 슈퍼스타K > 에 나가는 게 꿈이다. 비빔밥을 가장 좋아하고 라면도 곧잘 먹는다. '신라면'과 '진라면'을 최고로 꼽을 정도로 매운 음식을 즐긴다. 머털도사와 슈퍼주니어를 좋아하는, 2005년생치고는 '올드한' 취향을 가졌다. 그래도 네 살배기 동생 페트릭(가명·4)과 코코몽 노래를 부르며 뛰놀 땐 영락없는 '초딩'이다. 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자주 바뀌는 여덟 살인지라 지난해까지는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다. 태권도를 익혀 괴롭히는 형들을 혼내주고 싶었다.
"껌댕이!"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 번도 한국을 벗어난 적이 없는 제임스를 같은 학교 6학년 형들은 이렇게 부른다. 같은 반 성빈이(가명)도 제임스를 놀릴 때가 있었지만 함께 놀다보니 그런 일은 점차 사라졌다. 제임스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아빠가 콩고민주공화국 사람이라고 해도 그에게 콩고는 먼 나라이고, 부모의 고향일 뿐이다.
중국 유학 중 아르바이트 삼아 중국의 군 홍보 영상에 군복을 입고 출연했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내몰린 아빠 옌기졸라 씨(39)는 11년 전,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다음 해 엄마 무수마리 씨(32)도 한국에 왔다. 두 사람은 한국에 터를 잡고 제임스와 페트릭을 낳았다.
국적과 출생 등록이 가장 큰 문제
옌기졸라·무수마리 부부는 2005년 법무부에 난민 신청을 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법무부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부모의 난민 신청이 거부당하면서, 제임스와 페트릭도 무국적자가 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속인주의 원칙상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아빠의 콩고 국적이 그대로 적용되기도 힘들었다. 주한 콩고 대사관에 두 아이의 출생신고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제임스와 페트릭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시사IN 윤무영 경기도 시흥 공장의 한편에 마련된 집에서 살고 있는 아르킴 씨(가명)는 난민 지위를 획득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며 가족 얼굴(위)의 일부를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
2012년 12월 기준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 2세는 모두 173명(누적수)이다. 이 가운데 한국 정부에서 난민으로 공식 인정을 받은 아이는 48명, 인도적 체류자가 25명이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100명(58%)은 무국적 난민 2세이다. 난민 심사를 밟고 있거나, 불인정되어 행정소송을 진행하거나, 모든 절차가 실패했지만 돌아가지 않은 경우 등이다. 법외 아동으로 남으면서, 무국적 난민 2세는 교육과 보살핌을 받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터부가 심하고 제도도 미비해 난민이 살기 힘든 나라로 악명 높은 한국에서 난민 2세는 이중고를 겪는다.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국제아동권리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처음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 2세 실태를 조사했다. 서른 가정의 아이 마흔여덟 명과 그들의 부모를 심층 인터뷰했다. 심층 인터뷰 결과 이들이 꼽은 가장 큰 문제는 국적과 출생 등록이었다. 미얀마 출신 슈마웅 씨(가명·43)는 1998년, 그의 아내 틴핏 씨(가명·41)는 2002년에 한국으로 왔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펼치다 한국까지 왔다. 올해 열두 살·네 살인 두 아들을 모두 한국에서 낳았다. 틴핏 씨는 "두 아이 모두 미얀마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첫째는 병원에서 출생증명서를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몇 년 후에 그 병원을 찾아 증명서를 받느라고 고생했다. 둘째는 바로 출생증명서를 받았지만, 가지고 있기만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무국적 난민 2세에 대한 출생 등록제도가 따로 없다. 부모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난민 2세는 서류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나마 서울 종로구청이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청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무국적 난민 2세의 출생증명서를 가지고 가면 출생신고 수리 증명서를 발급해준다. 법적 효력은 없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다보니, 여러 문제점이 따라붙는다. 무국적 난민 2세에게는 초등학교 문턱도 높다. 무수마리 씨는 현재 초등학교를 다니는 제임스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서툰 한국말이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은 (학교 다니는 게) 불법이에요." 지난해 취학할 나이였던 제임스는 하마터면 때를 놓칠 뻔했다. 취학 통지서가 나오지 않았다. 학교 갈 나이라고 주변에서 알려준 덕에 지난해 2월 부랴부랴 학교를 수소문했다.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학교의 문을 두드렸지만 동네 통장의 보증이 필요했다. 통장은 책임지고 싶지 않다며 보증을 거부했다. 다문화센터의 도움을 얻어 경기도 안산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제임스는 집 앞 학교를 두고, 차를 타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닌다.
ⓒ시사IN 윤무영 앤지·브레이스 부부는 올해 학교 갈 나이가 된 사무엘(왼쪽에서 세 번째)의 취학이 걱정이다. |
소풍과 같은 학교 행사 참여도 제약이 많아 동심을 멍들게 한다. 코트디부아르 출신 앤지 씨(34)와 브레이스 씨(31)는 내한 공연을 왔다가 고국이 내전에 휩싸이면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난민 지위가 인정되지 않자,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첫째 아들 사무엘(7)은 어린이집 현장학습에 따라가지 못한다. 무국적자이다 보니 외국인등록번호가 없어 여행자 보험 등에 가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 숨 못 쉬는데 치료 거부당해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미얀마 출신 틴핏 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지금까지 태권도 대회나 한자 시험, 한국어 능력시험에 참가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무국적자라 외국인등록번호가 없기 때문이다.
법적 난민으로 인정받아도 난민 2세의 지위가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1998년 한국에 들어온 아르킴 씨(가명·47)는 2005년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아이들도 동일한 지위를 인정받았다. 네 살 난 셋째 딸의 학교를 알아보다 복병을 만났다. 이왕이면 다문화 학교를 보내려고 했는데 입학 조건이 부모 둘 중 한 명은 한국인이어야 했다. 2년이 넘는 시간 고군분투 끝에 인정받은 난민 지위가 허망했다. 이제는 귀화를 해야 하나 아르킴 씨는 딸아이를 볼 때마다 고민한다.
학교나 병원 등 가정 밖의 난관뿐 아니라, 가정 안에서도 복병을 만난다. 부모와 난민 2세 사이 문화 정체성 차이다. 부모와 자식의 '우리나라'가 달라졌다. 항상 고국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부모와 자신을 한국인으로 여기는 자녀 사이에 간극이 크다. 한국에서 6년 만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욤비 씨(46)에게 콩고민주공화국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내 나라'이다. 10대를 한국에서 보내고 있는 욤비 씨의 세 남매는 다르다. 그들에게 국기는 태극기이고 '독립' 하면 유관순을 떠올린다. 가족끼리는 프랑스어를 쓰지만, 남매끼리는 어느새 한국어로 말한다. 그게 더 편해서다.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며 '카스(카카오스토리)'를 하고 학교에서 '빡쳤던 일'과 '대~박인 일'에 대해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수다는 영락없는 한국 10대다. 심지어 좋아하는 과목은 백제·고구려·신라가 나오는 '사회'다. 욤비 씨는 "그래도 돌아갈 곳은 콩고라고 믿는데, 나중에 애들이 적응하기 힘들어지거나 돌아가기 싫어할까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윤무영 부모의 난민 지위가 자녀에게 적용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터라, 태어난지 석 달 된 아스트리드(맨 앞)도 현재 무국적이다. |
난민 2세 실태조사를 맡은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등은 보고서에 "난민 아동의 삶의 질은 부모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특히 체류권과 사회권 보장이 취약한 난민 신청자·소송 중인 사람·난민 불인정자의 불안정한 지위가 아동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들에 대한 총체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썼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난민 2세와 관련해 각국 정부에 "난민을 포함해 자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의 법적 등록을 보장해야 하며, 충분한 사회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자국민과 똑같은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http://media.daum.net/zine/sisain/newsview?newsid=20130221082012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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