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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살아가는 이야기

국내 첫 공개 동성 결혼식 주인공, 김조광수·김승환 커플

결혼은 남녀 사이에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커플이 탄생할 전망이다. 영화감독 겸 제작자 김조광수가 19세 연하의 연인과 오는 9월 결혼식을 올린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고 싶다는 욕심 많은 남정네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에 골인하는 설렘과 기대를 잠시 접고 결연하게 결혼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직접 만났다.

첫 동성 결혼 선언, 시선 한 몸에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어른'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통과의례의 성격이 강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비로소 진정한 성인이 된다는 통념 때문이다. 점점 늘어나는 비혼과 1인 가구 비율이 어느새 부부와 아이로 이뤄진 가족을 따라잡을 기세다. 하지만 결혼과 단란한 가정을 원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생물학적 성별과 사회적 성별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정신병으로 여겨지거나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던 것도 이제 옛말. 선진국에서는 속속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고, 동성 커플이 자녀를 입양하는 것 또한 점점 수월해지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찬반양론이 뜨겁다.

한국에서는 홍석천과 하리수 정도가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 말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2005년 게이임을 밝힌 김조광수(48) 감독도 공식석상에서 결혼을 발표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마련된 기자회견. 그가 연인 레인보우팩토리 대표 김승환씨(29)와 턱시도를 맞춰 입고 등장하자 수십 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레인보우팩토리는 김조광수 감독이 대표로 있는 청년필름의 계열사로 퀴어영화를 전문으로 제작·수입해 배급하는 영화사다. 청년필름은 1999년부터 '해피엔드', '와니와 준하', '올드 미스 다이어리',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의뢰인' 등을 제작해왔다.

"공개적으로 결혼하는 이유는, 성소수자에게도 결혼할 권리를 비롯해 모든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혼자 마음먹어서 되는 게 아니고 파트너가 동의해야 가능한 일인데, 미래를 함께 꿈꿀 사람이 생겼습니다. 제가 대표로 있는 '친구사이(게이인권운동단체)'에서 만났는데, 만날수록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 (영진위) 제작비 지원작으로 선정돼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프러포즈를 했고 3년 만에 결혼에 골인하게 됐습니다." (김조광수)

"그동안은 '19세 연하'(연인으)로만 소개돼서 부담스러웠는데요. 부모님은 물론, 가족과 친지 등 주변 분들이 제 성정체성을 이해해주고 결혼을 응원해주셔서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숨어 살던 게이였는데 모든 과정을 함께해준 감독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을 떠나서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결혼 발표가) 늦어진 이유는 제가 공개적으로 성소수자의 삶을 살면서 욕설과 비방으로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에요. 결국은 부모님도 제 뜻을 존중하고 허락해주셨습니다." (김승환)
두 사람은 다소 긴장된 모습이었지만 발표 내용을 사전에 세심하게 준비한 듯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중간중간 시선을 교환하며 웃는 모습이 9년 차 커플치고는 참 다정해 보였다. 이들 커플은 9월 7일에 결혼식을 올리고 축의금으로 국내 최초의 LGBT센터(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공간)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진국에서는 국가 지원으로 대도시에 하나씩 지어져 있다고. 미국 뉴욕의 센터가 그렇듯 지역 주민도 자연스레 드나드는 접점이 되길 꿈꾸고 있다.

동성 결혼 합법화는 세계적인 추세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동성 결혼 합법화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문재인 의원에게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청첩장을 보낼 거라는 김조광수 감독. 결혼을 축하해준다면 사상과 차이를 막론하고 모두 환영이라는 뜻이다. 다만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동성애를 극렬히 반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천주교 냉담자(미사에 나가지 않는 신자)인데요. 성직자 중에도 동성애자가 있고 기독교 자체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것은 아니에요. 사랑을 말해야 할 종교를 이용해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동성애는 존재 자체이지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동성애자는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이미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반대한다고 없어지지 않거든요. 동성애자를 반대하거나 사람을 혐오하는 것은 인권이 아니라고 봅니다." (김조광수)

"성인이 가정을 꾸릴 때 사회적 관계로 인정받고 법의 테두리에서 지원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는 동성 커플이 자녀를 입양해 기를 수 있게 하고 있는데요. 부모로서 준비가 된 사람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만약 준비가 된다면 당연히 입양해서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 같아요." (김승환)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은 서태지의 결혼 발표에 필적할 만한 '핫이슈'였다. 온라인에서는 결혼 찬반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불법이 아니라 단지 합법이 아닐 뿐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결혼 후 혼인신고가 반려되면 법률 자문과 의견 수렴을 거쳐 동성 결혼 합법 운동을 추진할 거라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반기문 사무총장도 "한국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라면서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하며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을 조장하는 법률을 철폐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결혼 발표치고는 그리 달콤하지 않은 말들이 이어졌지만, 그들의 기쁨은 여느 커플 못지않다.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지기까지 전전긍긍했던 것도 다를 바 없다.

"사람은 다 똑같아요. 때론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사랑스러워 깨물어주고 싶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제일 힘든 건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었는데 다행히 양가 부모님께서 축복해주셨어요. 결혼해서 살아갈 준비가 됐는지, 그만큼 사랑하는지 계속 고민했어요. 게이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지만 긍정하지 못해서 힘든 사춘기를 보냈어요. 인생의 목표를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하고 게이라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삼았는데, 당당하게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김조광수)

기사를 막 넘기려는 순간, 지난 5월 17일 프랑스 헌법재판소가 동성애자의 결혼과 자녀 입양을 허용하는 법안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이로써 프랑스는 세계에서 열네 번째로 동성 결혼을 합헌화한 나라가 됐다.

김조광수 커플은 예식 준비 과정과 결혼식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공개할 계획이다. 신혼여행지는 남다른 커플답게, 쿠바란다.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조민정>

http://media.daum.net/zine/ladykh/newsview?newsid=20130603112734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