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자아이가 어두운 골목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갔을까?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얼굴이다. 글을 보니, 엄마는 늦고 아빠는 그나마 들어올 기약도 없는 듯하다. 높은 달동네 좁은 골목의 나지막한 담벼락에 붙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이. 다닥다닥 붙은 지붕 너머 저 멀리 반짝이는 네온사인 사이로 빌딩들이 우뚝하다.
제대로 보살핌 받지 못하는 아이들
< 파랑새가 산다 > 는 대전의 한 달동네 이야기다. 쓰레기와 불화가 널려 있는 동네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상황을 생각하면 분노 혹은 안타까움이 마음을 찌를 수도 있다. 하지만 섬세한 선에 절제된 색의 그림과 무심한 듯 천진한 아이의 일기글로 전달되는 이 이야기는 그런 감정의 격랑을 넘어서는,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 파랑새가 산다 > 신혜은 글·정순희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
대전의 한 동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 이 책의 토대임을 지은이들은 말미에 밝힌다. 거대한 힘에 의한 재개발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제안으로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번진 희망의 힘으로 일어난 변화였다. 그런데 이건 어른들 일인데, 그림책이라니?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그맣고 보드라운 시작으로 크고 환한 결실을 보는 이 일을 담아내는 데 그림책이 얼마나 적절한 매체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 우리 땅 우리 아이 > 시리즈 중 한 편이다. '우리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기치 아래 다양한 아이들의 삶이 시리즈 안에서 펼쳐진다. 한국인과 결혼한 엄마를 따라와 살아가는 러시아 아이 이리나, 양파 밭에서의 노동(?)에 심통을 부리다가 땡땡이를 치다가 열심히 돕다가 하는 떠꺼머리 민기. 남달리 튼실한 몸집에 놀림받으며 속상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자기를 세워나가는 현수. 우리 아이들이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나, 기본으로 돌아가보라고 어른들을 격려하기도 한다.
김서정 (아동문학 평론가) / webmaster@sisain.co.kr
http://media.daum.net/zine/sisain/newsview?newsid=20130622033706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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