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며 맑은 서정시를 써온 김용택씨가 신작 시집 <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 (창비)을 펴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읊어온 기존의 시 세계를 보여주는 한편, 이 시대를 통렬하게 일갈하는 목소리 또한 들려준다. 우주적 질서를 관조하는 사유의 세계와 함께 물질적 욕망에 포섭돼 삶의 진정한 가치와 참된 행복에서 멀어져가는 우리 자신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이다. 시집에 수록된 '삶'이라는 시가 대표적이다. 시인은 단순하게 '매미가 울고, 새벽이면 닭도 우는' 자연적 현실을 읊다가 '사는 일들이 헛짓이다 생각하면/ 사는 일들이 하나하나 손꼽아 재미있다'며 또 다른 사유의 세계로 빠져든다.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긍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인은 이렇게 시를 끝맺는다. "매미가 우는 여름날/ 새벽이다/ 삶에 여한을 두지 않기로 한,/ 맑은/ 새벽에도 움직이면 덥다라고"
즉, 자연에 대한 관조와 고요한 사유에서 느닷없이 '새벽에도 움직이면 덥다'는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실제로 아무리 고요한 새벽에 매미가 울기로서니 한여름엔 당연히 움직이면 덥지 않은가. 그만큼 엄정하고 냉혹한 현실을 은유하는 것이다. 아울러 시인이 단순히 음풍농월 식의 자연 찬미에 빠져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집 맨 처음에 수록된 시 '이 하찮은 가치' 역시 마찬가지다. "11월이다. 텅 빈 들 끝,/ 산 아래 작은 마을이 있다/ 어둠이 온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는 동안/ 지나온 마을보다/ 다음에 만난 마을이 더 어둡다"로 시작하는 시는 "지금 이렇게 아내가 밥 짓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아무런 까닭 없이/ 남은 생과 하물며/ 지나온 삶과 그 어떤 것들에 대한/ 두려움도 비밀도 없어졌다"로 이어진다. 시인은 이어 "나는 비로소 내 형제와 이웃들과 산비탈을 내려와/ 마을로 어둑어둑 걸어 들어가는 전봇대들과/ 덧붙일 것 없는 그 모든 것들에게/ 이렇게 외롭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하찮은 존재들의 무한한 가치'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집엔 '섬진강' 연작 4편이 새롭게 수록돼 눈길을 끈다. 이번 연작시에서 시인은 가난과 소외의 아픈 과거를 현재적 의미에서 반추하거나, 아름다운 섬진강을 앞에 두고 역설적으로 느끼는 고독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사소한 것들'에 애정을 쏟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친근하게 들려주고 있다.
담당_정은혜 기자
http://media.daum.net/zine/womansense/newsview?newsid=20130614092306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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