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이 어릴 때였다. 잠을 못 자고 뒤척이기에, 넌지시 끼어들었다. "잠이 안 와? 그럼 오늘 뭐 했나 생각해. 그래야 생각이 자라지." 되돌아온 말은, "그런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였다. "그래? 그럼 뭘 생각하는데?"라고 다시 묻자, "내일 뭐 하고 놀까 생각해"라고 했다. 그렇다. 아이들에게는 과거가 없다. 그저 미래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방금 지청구를 듣고도 헤헤거리며 얼굴을 들이밀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딱히 해야 할 일도 없다. 아이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건 그저 놀 생각뿐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놀이라는 왕국의 주인공들인 셈이다.
식민지 시대 아동문학의 큰 획을 그은 현덕은 놀이하는 아이들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또 묘사하고 있다. < 고양이 > 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노마, 똘똘이, 영이 등 현덕 동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지금 고양이 흉내를 내는 중이다. 고양이 모양, 고양이 목소리로 살살 앵두나무 밑을 기어가고, 마루 밑으로, 담 밑으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로 간다. 그러다 점차 고양이가 되어간다. 굴뚝 뒤에서 쥐를 기다리고, 닭을 쫓기도 하고, 부엌 선반의 북어를 물어 내오기도 한다. 그저 고양이이니 혼날 염려도 없이 달아나기만 하면 그뿐이라 생각한다. 놀이 속에서 아이들은 완벽하게 고양이로 변신한다.
↑ <고양이> 이형진 그림, 현덕 글, 길벗어린이 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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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 이형진 그림, 현덕 글, 길벗어린이 펴냄 |
이형진은 현덕의 글을 그림책으로 바꾸어내고 있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관계는 마치 악보와 연주, 희곡과 연극의 관계에 놓여 있다. 연주자에 따라 악곡의 해석이 달라지듯, 그림 작가에 따라 새로운 연출이 가능해진다. 이형진은 먼저 굵고 힘찬 선으로 인물들을 도드라지게 묘사한다. 과감하게 배경의 세부는 지워버리고 형태만 흐릿하게 실루엣으로 설정한다. 아이들의 동작선들 뒤로 고양이의 모습이 대비되어 표현되고, 고양이의 움직임과 엄밀히 대응하며 역동적인 한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북어를 물어오는 장면에서는 마침내 고양이로 완벽하게 치환된다. 그렇게 바뀐 고양이는 여전히 인물들의 형상적 특성들을 재현하고 있다. 영이는 영이 고양이로, 똘똘이는 똘똘이 고양이로, 노마는 노마 고양이로 표정을 담고 있다.
놀이와 아이들 세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
이 그림책은 놀이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놀이를 창출하기도 한다. 독자로서의 아이들 역시 성큼 고양이로 변신하여, '아옹아옹' 고양이 소리를 내며, 고양이의 움직임을 흉내 낸다. 그쯤 되면 우리는 고양이를 키우는 건지, 아이를 키우는 건지 의아해지기도 한다. 물론 "그만하라니까!"라는 타박을 듣고서야 아이들의 놀이는 아쉽게도 멈출 것이다.
아이들의 놀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느라 정작 현재를 저당잡히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미래는 지금 여기에서의 현재를 잇댄 것이지 현재를 저당잡혀서야 얻어지는 성큼 건너뛴 미래는 아닐 것이다. 새삼 < 죽은 시인의 사회 > 에서 '카르페 디엠'이라 외치던 키딩 선생님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미래는 언제 올지 알 수도 없는 먼 미래가 아니라, 언제나 임박한 미래일 따름이다. "내일 뭐 하고 놀지?"라는 질문이야말로 거듭 아이들의 뇌리를 채우는 질문이어야 한다. 그것이 아이들 세계의 전부이며 또 전부여야 한다.
김상욱 (춘천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 webmaster@sisain.co.kr
http://media.daum.net/zine/sisain/newsview?newsid=20131214130406529
모두가 힘든 일제 강점기 시절..
그래도 순수한 아이들의 꿈이 있어서 희망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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