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웅 시인의 (난데없는) 책 < 꼬리 치는 당신 > 을 한때 유행했던 개그를 빌려 표현하자면 이렇다. "이건 '시'도 아니고 '동물사전'도 아니여." 시인도 "이 글의 장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라고 순순히 인정한다. 장르를 알 수 없다고 내용조차 모호하다는 말은 아니다. < 꼬리 치는 당신 > 은 시인의 글맛을, 동물들의 생태를 알 수 있는, 만약 한 장르에 천착했다면 경험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을 지니고 있다.
제목을 따온 도마뱀 이야기도 그야말로 감성의 도가니다. "남은 꼬리가 꿈틀대는 동안 도마뱀은 달아나지, 잘린 꼬리가 자라는 동안 도마뱀은 생식도 성장도 하지 않는다. 그이가 당신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고 아파하지 마시길. 당신이 그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동안 당신은 살아남은 거야. 꼬리 치는 당신도 아팠다고."
유쾌한 시인의 상상력과 말의 재미
ⓒEPA 곰과 달리 자이언트판다는 왜 엄지가 있을까. |
책 중간에 시인은 한동안 '기원'을 밝히는 일에 매진한다. 비행의 기원을 밝히는 것을 시작으로 불, 양다리, 딸꾹질, 풍선, 물 풍선, 마스크, 일광욕, 엽서, 숨바꼭질의 기원을 밝힌다. 심지어 젖무덤의 기원까지, 시인은 참 꼼꼼하다. 먼저 비행을 보자. 새가 공룡에서 갈라져 나올 때 처음 날개의 용도는 날벌레를 쫓거나 체온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인이 내린 비행의 기원은 둘 중 하나다. "성가신 파리를 쫓다가 자기가 큰 파리가 된 것." 혹은 "덥다고 부채질하다가 온몸으로 날려 보내게 된 것." 처음에는 아리송하지만 이내 포복절도할 웃음이 쏟아지는 시인의 상상력이다. 아무래도 '젖무덤'의 기원은 전문을 읽는 게 적절할 듯하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여자의 큰 가슴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 게 노화 때문이라고 본다. 작은 가슴은 처져도 크게 구별되지 않지만 큰 가슴은 보기 흉하게 처지기 때문. 그래서 가슴을 젖무덤이라고 말하는 걸까? 청춘의 한 세월을 거기에 묻었던 것?"
시인이 동물은 물론 우리 인간의 삶과 행동을 뚫어져라 관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인이니까. 물론 더 큰 이유도 있다. "반려동물과 조금만 살아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동물은 영혼 없는 우리가 아니다. 동물은 우리와 존재를 주고받는 다른 우리다." 그들도 우리처럼 "울고 웃고 먹고 배설하고 죽음 앞에서 공포를 느끼고 불멸을 욕망"하는 존재이다. 시인은 말한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덧붙인다. "다르게 보면 동물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다르게 보면 우리와 다른 우리를 한 우리 안에 집어넣고 관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물의 생태와 그것이 배태하는 시적인 삶을 읽다 보니 어느새 인간인 우리, 아니 내 삶이 아주 조금 초라해 보인다. 그럼에도 유쾌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장동석 (출판평론가) / webmaster@sisain.co.kr
http://media.daum.net/zine/sisain/newsview?newsid=20140101182708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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