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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시간

정성 담은 그림책이 마음을 흔드네

그림책은 크게 정보책과 이야기책으로 나뉜다. 목적에 따라 정보를 전달하는 책과 이야기를 건네는 책으로 나뉘는 셈이다. 그러나 이 둘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특히 정보를 전달하는 책은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 속에 정보를 적절하게 녹여내기도 한다. 이처럼 정보 그림책이 이야기를 활용하고자 함은 이야기가 지닌 매혹으로 미루어볼 때 당연하고 또 자연스럽다. 이야기야말로 어린이들이 가장 쉽게 받아들이는 언어 형식이며,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어린이들은 세계를 단단한 의미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김해원이 글을 쓰고, 김진이가 그린 < 매호의 옷감 > 이 애초 선 자리는 정보 그림책이었다. 무용총 고분에서 출토된 벽화 속 고구려 시대의 독특한 복식에 착안하여, 옷감에 얽힌 당대의 삶 한 자락을 건네는 것이다. '고구려 이야기 그림책'이라는 출판사의 설명도 고구려의 문화를 건네는 것에 목적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정보는 사내아이 '매호'와 계집아이 '지밀'을 매개로 한 이야기에 감싸인 채, 애틋한 남녀의 사랑으로 탈바꿈한다. 염색장이였던 '매호'는 군역을 떠나기 전, 베를 짜고 옷을 짓는 '지밀'에게 세상에서 둘도 없는 점무늬 옷감을 건넨다. 세상에 둘도 없는 마음을 건네듯.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옷감에 가득 흩어진 검은 점들은 매호의 마음만큼이나 지밀뿐만 아니라 여인네들의 마음을 흔들고, 마침내 내로라하는 무용수들의 옷감으로 쓰이기에 이른다.

< 매호의 옷감 > 김해원 글, 김진이 그림, 창비 펴냄

그림책의 그림은 최대한 고구려 시대 고분벽화에 새겨진 그림들, 특히 무용총의 그림들을 복원하고자 했다. 삼베의 올이 그대로 느껴지는 바탕천에 인물의 형태와 동작선들을 양식화하여 표현했으며, 세로로 긴 판형을 통해 인물의 서 있는 형상을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색채 또한 옷감에서 즐겨 사용되었던 적·청·황·녹의 바탕색을 기본으로 남녀 인물들에게 각기 적합한 흑백과 적록의 복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또한 원근법을 배제하고 구도의 깊이 또한 엄격하게 물리침으로써 평면적인 그림의 효과를 최대치로 복원한 점도 이채롭다. 이러한 평면성은 자칫 감상적이기 쉬운 이야기를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오히려 그 시대의 은근한 사랑을 더욱 곡진하게 펼쳐내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그림책이 좋은 그림책이냐고 묻는다면

더러 사람들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어떤 그림책이 좋은 그림책이냐고?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정성껏 만든 그림책이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중심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으며, 그 중심을 표현하기 위해 생각을 궁글리고 또 궁글린 사유의 흔적이 곳곳에서 배어나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명확하며, 마침내 책의 꼴을 갖추고 나온 그 결과물이 누가 보더라도 '아, 애썼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책, 그런 책이 좋은 그림책일 것이다. 하긴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책이 어디 있으랴만, 그중에서도 더 정성이 담긴 책. 그런 책이 좋은 그림책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선한 것을 건네주는 일이 어른들의 책무라면, < 매호의 옷감 > 도 근래 만난 정성껏 만든 책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김상욱 (춘천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 webmaster@sisain.co.kr

http://media.daum.net/zine/sisain/newsview?newsid=20140222201210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