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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시간

공지영 “양심의 법정에 사법부 세우고 싶다”

"내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소설보다 나은 영화다." 영화 < 도가니 > 의 원작 소설을 쓴 공지영 작가의 단호한 평가다. 원작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영화를 보면서 '소설에서 그린 장면이 저랬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바뀐 설정도 괜찮았다"라고 말했다.소설 < 도가니 > 는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아들이 교장과 교사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던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 짐승 우리에서나 벌어질 법한 야만의 흔적에 작가는 '도가니'라는 말을 붙였다. '광란의 도가니' '몰상식의 도가니'…. 소설과 영화를 거치며 그것은 '분노의 도가니' '감동의 도가니'로 승화했다. 영화가 개봉되던 날인 9월22일 아침 공 작가를 자택에서 만났다.
영화 흥행 조짐이 괜찮다(개봉 첫날 < 도가니 > 를 본 관객은 12만명에 달했다. 압도적인 박스 오피스 1위였다).


이런 말 하면 우습긴 한데 '각하' 덕분에 영화도, 책도 잘되는 것 같다. 소설이 나왔을 때나, 영화화되었을 때나 분노의 분출구가 되고 있는 듯하다(웃음).








시사IN 조우혜 공지영씨(위)는 인화학교를 취재하면서 아이들이 힘센 자들의 먹잇감이 된 현실을 보았다.

1980년대 의식이랄까? 영화가 사회적인 소명 의식과 연대 의식을 다시금 일깨우는 듯하다.

정말 그런 생각이 들더라. (1980년대에 대학을 같이 다닌) 선후배들을 시사회에 초대했는데 영화 끝날 때 보면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흐르는 듯했다. 매번 새벽까지 뒤풀이를 해서 죽는 줄 알았다. 몸이 바닥이다.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쉬었잖은가. 할 말이 얼마나 많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MB 정권이 우리에게 중요한 시간을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관건인데, < 도가니 > 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은 아니다. 적극적인 현실 참여로 사건을 재조명했다.


문학이 현실 참여를 안 할 수 없다. 나보고 사회소설을 쓰느냐 애정소설을 쓰느냐 이런 거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춘향전을 쓰는데 당시 시대를 모르고 이몽룡과 춘향이의 애정행각만 쓸 수 있는가, 춘향전에는 애정행각뿐만 아니라 사회행각도 담겨 있다.


소설화하기 전 당시 사건에 대해서 취재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 한겨레 > 에 인턴 기자가 쓴 상자 기사가 출발점이었다. 수소문해서 어떤 사건인지 파악하고 직접 (광주로) 내려갔다. 내려가서 사람들을 계속 접촉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1박2일로 다녀오거나 첫차 타고 내려가서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을 그해 7월에서 11월까지 한 석 달 반 정도 했다. 삼겹살 값 엄청 들어갔다.(웃음)

작가의 취재는 저널리스트의 취재와는 다른 방식일 것 같다.

나는 취재 같은 거 잘 못한다. 같이 술 마시고 사인해주고 올라왔다. (사형수를 다룬)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때도 그랬는데, 차마 못 물어보겠더라. 차라리 사건일지 보며 추론하는 게 낫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어떤 순간에 확 열고, 나한테 마치 이르듯이 막 얘기를 했다. 사건 기록엔 없는 폭행의 강도도 알게 됐다. 애들이 왜 저녁마다 컵라면과 과자를 사먹을 수밖에 없는지도 알았다. 점심에 먹고 남은 재료로 만든 꿀꿀이죽 같은 저녁밥을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그랬던 거였다.

학교 측과도 접촉했나?

특수교육을 전공했다는 임시 교장이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바뀐 교장도 수화를 못하더라. 영화에 출연한 공유도, 아역 배우들도 배운 수화를 특수학교 교장이 모르더라. 그러면서 그랬다. 청각장애인은 원래 문란하고 거짓말을 잘한다고. 진짜 특수교육은 왜 전공했나 싶었다. 여자 교장이 와서 여자 청각장애인은 원래 문란하다는 방식으로 얘기를 하다니…. 자기네 학교 얘길 쓰지 말아달라고 애원했지만 양심상 안 쓸 수가 없다고 했더니 법적인 조처를 취해도 각오하겠냐고 했다. 그러시라고 했다. 덕분에 대박 날 것 같다고.


취재할 때 아이들이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청각장애인이 특히 마음을 안 연다고 한다. '민족'이 다르다는 것이다. 언어가 다르면 민족이 다른 것처럼 모든 것이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청각장애아들은 부모보다도 수화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더 소중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셈인데, 다행히 그 친구들이 마음을 열어주었다.

부모나 문제 제기를 하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완전히 실의에 빠져 있다가 내가 소설 쓴다고 내려오니까 구세주라도 온 것처럼 많은 기대를 해서 부담도 됐다. '서울 강남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세상이 뒤집어졌을 거다. 광주 촌구석, 버려진 아이들 상대로 이런 일 벌어지니까 아무도 안 본다'며 피를 토하면서 하는 얘기를 들으니 눈물이 났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사법부가 (가해자들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그런 판단을 했다면, 세상에 알려서 그들을 양심의 법정에 세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문학으로 범죄자와 그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준 사법부를 양심의 법정에 세우는, 일종의 '기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취재하면서 무슨 짐승들의 우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우리에서 아이들이 먹잇감이 되어서 먹히고 있었다. 야만의 공포 같은 것을 느꼈다.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 광주의 상류층은 한줌밖에 안 될 텐데, 저 인간들이 뭉치면 못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서울에서도, 다른 지역에서도 충분히 일어나고 있을 일들이다. 이런 무서운 카르텔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 도가니 > 의 감독 황동혁·원작자 공지영·주인공 공유 씨(왼쪽부터)가 시사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판검사를 비롯해 변호사·의사·목사·공무원, 우리 사회 지도층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볼 '고민의 매듭'이 많았다. 특히 소설은 우리 사회 곳곳의 모순을 더 세밀하게 담아냈다.

굉장히 많이 건드렸다. 이 사건 자체가 다 건드릴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그런 구절을 쓴 기억이 난다. 여주인공 서유진이 "어떻게 이 추잡한 성추행 사건에 이 지역 온 상류층이 달려드나"라고 한탄하는 장면인데, 재판부의 어이없는 판결에 대해 한 판사분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판사 될 때까지 점수 경쟁하면서 1, 2점 차이로 사람들 떨어뜨리고 올라온 게 바로 우리다. 프라이드 강하고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판사들이 벙어리 아이 하나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려고 하겠나."


소설과 영화의 배경인 무진시가 바로 우리 사회의 알레고리 같다. 무진시의 확장판이 바로 우리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가 확실히 그런 표현에 능하다. 인권단체 간사 서유진 역을 맡은 배우 정유미씨가 인터뷰에서 영화를 통해 자기 고민이 좀 달라졌다는 말을 했는데 반가웠다. 특히 20대가 어렴풋하게 그런 걸 자각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20대를 만나면 이런 얘기 많이 한다. "상류층이 결탁하고 부패하면 나라가 금방 망한다. 당신들 국민연금 못 탄다. 여러분이 아무리 영어공부 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해도 소용없다. 나라 망하면 소용없다. 당신들이 더 많이 살 사회이니 알아서 해라." 잔소리를 한다.

자막 상영 등 소수자를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영화다.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트위터 멘션을 줬다. < 도가니 > 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그녀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그녀 1인을 위한 시사회가 가능할 수 있을지…. 영화사에 한번 얘기해보겠다.

보통 사람들은 김진숙과 같은 사람은 자기와 DNA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당사자가 돼보기 전에는 나의 실존과 관련이 없다는 괴리감이랄까? 감정선에 엄청난 간극이 있는 거다.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작가의 사회적 역할이다. 나는 그게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꼭 사회 이슈만이 아니라 사랑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보여주면서도 우리가 생판 남이 아니라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감정이입이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물론이다. 나도 굉장히 힘들었다. 이를테면 부패와 비리 구조의 중심에 있는 장경사라는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살까,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그에게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그 사람에게도 연민을 발견했다. 작가로서는 기쁨이고 큰 발견이었다.

< 도가니 > 가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는 사실이 아쉽다는 얘기가 많다.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용기를 내서 고발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제작자가 표현 수위를 낮춰 미성년자 관람판으로 만들어보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들었다.





공지영씨는 '아동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서명운동을 한다. 위는 영화 < 도가니 > 의 한 장면.

작품 취재를 하면서 아동 성폭행과 관련된 현행 법체계에 대해서도 문제를 많이 느꼈다고 들었다. 트위터 등을 통해 '아동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안다.

어떻게 13세 이상 아이에 대해 합의가 되면 성폭행에 대한 공소가 기각이 되는가. 공소시효도 문제고. 친고죄라는 것도 문제다. 미성년은 부모가 신고해야 하고, 안 날로부터 6개월 안에 신고해야 하고…. 문제투성이다.


소설에 이어 영화까지 화제가 되고 있으니 서명운동에도 탄력이 붙지 않을까?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 피고인 > 이라는 영화를 보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세간의 평을 받아온 한 여성이 강간 피해자로 나온다. 문란한 여성도 성범죄 피해자로 인정해줄 수 있느냐는 논쟁이 일었는데, 이 영화가 미국의 법을 바꾸었다고 들었다. 미국은 아동성폭행 관련법이 엄청 센데, 영화나 소설 같은 문화예술 작품을 통해 공감대가 커지면서 청원이 생기고 법령이 강화되었다고 들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제가 된 학교는 상식이 마비되어 있었다. 가해자가 열 명이고 피해자가 열두 명(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 기준)이면 사실상 오픈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다. < 도가니 > 한번 보는 것이 그런 범죄를 막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의 눈을 두려워한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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