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인물이 등장했었나? 앞으로 어떻게 되지?' 궁금증을 못 이겨 인터넷 검색창을 띄운다. 그 어떤 스포일러보다 친절한 고전이 있으니까. 하지만 현실의 드라마가 책 속 내용을 그대로 찍어낼 리 없다.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알고 싶어지는 불멸의 고전, 중국의 역사소설 「초한지」와 SBS-TV 월화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잡초인생 유방 對 야심만만 항우
「초한지」 천하대전의 부활,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
시간은 2천2백 년이나 흘렀지만 인간사는 변한 게 없나 보다. 제왕과 제왕의 살벌한 전쟁 이야기 「초한지」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꼭 들어맞는다. 화제의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몇 년째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했던 유방(이범수 분). 이름도 생경한 삼류 대학 출신에 능력도, 가진 것도 없지만 잡초 같은 근성과 대책 없는 정의감으로 불타는 젊은이다. 효도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천하그룹' 입성을 꿈꾸지만 세상은 스펙 미천한 그에게 호락호락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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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88만원 세대인 한 젊은이가 '출세'를 도모한다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것만큼 어렵고 또 험난하다는 것. 그런 그가 진솔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번뜩이는 재치로 위기를 모면하며 천하무적 같은 존재인 항우에게 시원하게 어퍼컷을 날린다. 시청자들의 막힌 속을 뻥 뚫어줄 만하다. 드라마 단골 메뉴인 '인과응보 스토리'에 소설 「초한지」를 배경으로 깔고 보니 사뭇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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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고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한 유방과 '천하그룹'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검은 속내를 드러내는 최항우의 불꽃 튀는 접전이 기대된다.
하급 관리 유방 對 귀족 출신 항우
드라마 속 피 튀는 대립구도 어디서 왔나 봤더니…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고전, 「초한지」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적인 내용을 덧붙여 흥미 위주로 쓴 중국의 통속소설이다. 그런데 「초한지」는 중국의 4대 기서에 포함되는 「삼국지」, 「수호지」와는 달리 뚜렷한 저자나 원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중국의 실제 역사 기록인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항우본기'를 기반으로 몇몇 작가들에 의해 쓰인 고전담론이다. 「초한지」는 「삼국지」 이전 항우와 유방으로 대표되는 초한 전쟁에서 천하의 패권을 잡기 위한 두 영웅의 전쟁을 소재로 한다.
유방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진(秦)나라의 하급 관리인이었고, 항우는 진시황이 무너뜨린 초나라의 장수 집안에서 태어난 진나라의 무장이었다. 출신부터 서로 다른 이들이지만 진시황의 사후, 치세가 막장으로 치닫자 각기 지지 세력을 등에 업고 군사를 일으킨 후 서로 협력하게 된다. 당시 항우에 비해 세력이 약했던 유방은 일시적으로 항우와 뜻을 같이하고 그가 내세운 초나라 왕실의 후손인 '초희왕'을 따른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진나라 군사를 상대로 마지막 전투를 벌이던 중 항우보다 먼저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를 함락시키며 승리의 영광을 선점했다. 유방은 항복한 진왕을 살려주고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을 폐지하며 민심을 수습한다. 유방보다 한 달 늦게 수도에 도착한 항우는 유방을 살해할 목적으로 이른바 '홍문연'을 열었으나 장량과 번쾌의 방해로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유방은 항우에게 복종하게 되고 유방을 발밑에 둔 항우는 도성에 불을 지르고 진왕을 죽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성을 함락시키고 수만 명을 살린 유방'과 '성을 함락시키고 수만 명을 죽인 항우'라는 두 인물의 극명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유방을 한(漢)왕으로 봉한 후 멀리 쫓아 보낸 항우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초희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의 자리에 오른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유방과 항우의 '초한 대전'이 시작된다. 유방은 소하, 조참, 장량, 한신 등 유능한 신하들의 보좌를 받으며 4년간 항우와 패권을 다투다 마침내 마지막 결전에서 항우를 대파하고 중국을 통일한다.
한 줄의 역사, 상상의 날개를 달다
같은 이름 다른 모습, 등장인물 집중 분석
원작이 없는 작품이기 때문일까. 작가마다 유방과 항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다르다. 더욱이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는 현대물로 각색됐으니 오죽할까. 역사적 배경도 극중 진행을 위해 자르고 뒤바꾸고 살을 붙여 전혀 새로운 「초한지」를 만들어냈다. 유방과 항우의 쟁패전은 엄연히 진시황 사후에 벌어지는 일이건만 드라마에서 진시황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이야기의 흐름을 쥐고 있다. 뿐만 아니다. 진나라를 함락시키기 이전에 유방은 이미 여치(정려원 분)와 결혼을 하고, 항우는 우희(홍수현 분)를 부인으로 삼았으나 드라마는 이들 청춘 남녀의 엇갈린 사랑으로 달달한 로맨스를 만들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유방과 항우가 드라마에서처럼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근대에 들어서는 오히려 항우가 신사적인 사나이고, 유방이 졸장부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팽성전투'에서 항우의 추격에 놀라 자식들을 수레에서 집어던지면서 살겠다고 버둥거리는 유방의 모습 때문이다. 이에 비해 항우는 때로는 난폭했지만 의리를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는 자세를 고집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유방과 항우는 선악의 대립이 아닌 권력 다툼을 벌인 것뿐일 수도 있다. 역사는 승자에게 유리하게 기록되는 법이다.
드라마 역시 역사의 승자를 영웅으로, 패자를 악인으로 그렸다. 그것이 역사학자들의 해석과 다소 어긋나더라도 우리에게 교훈과 감동, 거기에 재미까지 얹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알아두면 더 재밌는 '샐러리맨 초한지'의 세 가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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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가비(김서형 분)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모두 고서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천하그룹'의 비서실장인 '모가비'만은 그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때문에 진시황의 최측근으로 그의 안위를 걱정하다가도 미묘한 표정을 짓는 모가비의 숨겨진 정체는 극의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독기 품은 야욕을 드러내는 모가비의 모습이 역사 속 진시황의 환관(내시)인 '조고'를 떠올리게 했다. 조고는 진시황이 죽자 그의 아들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결국에는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 멸망에 이르게 한 간신이다. 후에 자신이 추대한 왕에게 죽임을 당한다.
2 팽성실업? 이름 속에 숨은 뜻
드라마 속 유방은 신기술을 개발해 '팽성실업'을 설립한다. 그런데 그 이름이 재미있다. 바로 유방이 항우로부터 빼앗았지만 다시 항우에게 빼앗기면서 자신의 60만 대군을 거의 잃었던 곳이 바로 '팽성'이었기 때문이다. 유방은 이때의 패배로 위기에 몰리지만 후에 한신의 도움으로 다시 군사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야심차게 첫발을 내딛은 드라마 속 '팽성실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3 결말을 궁금하게 하는 고서의 일화
사면초가(四面楚歌)
유방과 항우의 마지막 전투에서 유방이 초나라의 노래로 초나라 군사를 자멸시켰던 일화를 바탕으로 한 고사성어. 항우는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를 듣고 '초나라는 이미 망한 것인가' 하며 탄식하며 자결한다.
패왕별희(覇王別姬)
항우는 스스로를 서초패왕이라 칭했기에 항우가 즉 패왕이다. 즉 '패왕별희'는 항우와 우희의 이별을 뜻한다. 유방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모든 군사를 잃고 유방의 군사에게 포위되자 마지막으로 곁에 남은 우희에게 '우야, 우야. 너를 장차 어쩌란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하지만 우희는 끝까지 항우의 곁을 지키며 마지막 순간에 칼을 들고 춤을 추다 자결한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한신의 이야기다. 중국을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한신의 세력이 점차 커지자 유방은 사소한 일을 빌미 삼아 그를 좌천시켰다. 이를 두고 한신은 '천하가 평정되고 나니 나도 팽당하는 구나' 하며 유방을 원망했다고 한다. 끝내 한신은 유방에게 죽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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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주인공 유비의 조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딘가 닮은 데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4백년 동안이나 지속된 한제국(漢帝國)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 「고우영의 초한지」中
유방(이범수 분)
호기 넘치는 드라마 속 모습과는 달리 「초한지」 유방은 마흔이 다 되도록 술 마시고 싸움질하는 백수건달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다른 데가 있어 믿고 따르는 자가 많았다. 적어도 유방이 '사람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이라는 데는 역사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항우의 사람이었던 한신과 장량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도 알았다. 서민 출신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제왕에 오른 그의 기지가 대단했을 법도 하다. 한편으로는 의심이 많아 미덥지 못한 자는 반드시 죽이는 잔인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통치기간 동안 관대하고 온화한 정치로 백성들의 고달픈 심신을 어루만지기 위해 애썼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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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회장의 뜻에 따라 유방을 돕고 있는 드라마 속 모습과는 달리 진시황을 시해하려 했던 인물이다. 선견지명이 있는 책사로 등장한다.
여치(백여치, 정려원 분)
진시황 회장의 외손녀로 등장하는 백여치. 하지만 고서에서는 여공의 딸로 유방이 건달 생활을 할 때 얻은 부인이다. 유방과 생사를 같이하였으나 욕심이 많아 태후가 되자 한신을 제거하는 데 앞장선다. 서태후, 측천무후와 더불어 중국 3대 악녀로 꼽힌다. 하지만 드라마 속 백여치는 철없는 재벌가 외손녀였지만 유방을 만나 점차 따뜻한 인간미를 회복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백여치와 유방이 고서에서처럼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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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라도 뽑아버릴 듯한' 초인적 힘을 가진 인물. 소수정예 병력의 영웅적 지휘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항복한 진나라 병사 20만 명을 생매장할 만큼 폭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장량과 한신, 팽월에게 배신을 당할 만큼 인재를 포용할 능력이 없는 인물이었다. 단순하고 난폭한 데다 불같은 성격에 안하무인인 듯하지만 때론 정 많고 지극히 인간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냉철하고 집요한 드라마 속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나만 잘났다'라는 태도는 똑같다.
항우(項羽)
산을 쑥~ 뽑아 패대기 치는 것이 전문 직업이었던 사나이. 이 때문에 집을 잃은 산신령이 107명이나 되지만 찍소리도 못한다. 또한 그의 용병술은 따를 자가 없었다.「고우영의 초한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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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애리애리한 몸으로 어떻게 항우의 애인을 할 수 있는지 「초한지」에는 그 비결이 적혀있다. 「고우영의 초한지」中
우희(최우희, 홍수현 분)
전설 속에서 항우는 '항우장사'로, 우희는 '절세미인'으로 그려진다.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샐러리맨 초한지'에서도 미모와 지식을 겸비한 재원으로 등장하지만 유방과 항우 사이에서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며 시청자들을 애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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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의 뛰어난, 그리고 유일한 모사다. 선견지명으로 항우에게 많은 계책을 내놓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끝내 항우에게 버림을 받게 되는데, 훗날 항우가 유방에게 패한 까닭이 바로 범증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권력에 빌붙고 여색을 밝히는 약삭빠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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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세기로는 항우와 막상막하. 유방의 보디가드.
「고우영의 초한지」中
번쾌(윤용현 분)
개백정이었으나 거사에 참여하며 유방의 심복이 된다. 유방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무인으로서 용맹을 떨친다. 특히 '홍문연'에서 유방의 목숨을 구한다. 드라마 속에서는 직속 상사였지만 알고 보니 유방의 고향 후배로, 유방의 수족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글 / 진혜린(객원기자) ■사진제공 / SBS 삽화 제공 「고우영의 초한지」 (자음과 모음)>
http://media.daum.net/zine/ladykh/newsview?newsid=2012031215222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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