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엄태웅처럼 바쁜 배우가 또 있을까? 원래부터 스크린과 TV를 종횡무진 넘나들었지만 <해피 선데이-1박 2일>(KBS2)을 통해 예능 스타로 자리매김하더니, 2011년 연말부터 두세 달마다 한 편씩 영화를 내놓는가 하면, 오는 3월 14일부터는 TV 드라마 <적도의 남자>(KBS2)에 출연한다. 왜 모두 엄태웅을 원하는 걸까? 감독, 제작자, 기자, 칼럼니스트 여섯 명이 그 물음에 답했다.

◆ 평범한 남자는 그의 맞춤옷
엄태웅은 수많은 여성 팬들을 설레게 하는 꽃미남 배우가 아니다. 스크린을 찢고 나올 듯 강렬한 파워를 발휘하는 연기파 배우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떡하나.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나는 엄태웅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이하 <시라노>) <건축학개론>에 캐스팅했다. 셋 다 완벽에 가까운 외모나 강렬한 연기가 부담이 될 수 있는 역할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 승필은 폼 잡고 거들먹거리며 아줌마 선수들을 못살게 굴고 팀의 전략까지 망가뜨리지만, 결국 그녀들을 보듬고 결전에 나서는 따뜻한 남자다. <시라노>의 병훈은 남자 특유의 속물스런 지질함 때문에 자신의 연애를 망친 뒤 뒤늦게 반성하는, 우리 주변에 흔하디흔한 남자다.
<건축학개론>의 건축가 승민도 마찬가지다. 스무 살 시절 실패한 첫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남자. 세 인물의 공통점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나? 지극히 ‘레알’ 돋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남자. 그런 남자를 맞춤옷처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엄태웅 말고 또 있을까? 심재명(명필름 대표)
◆ 순한 맛의 강력한 매력
엄태웅은 카레로 치면 ‘순한 맛’의 배우다. ‘약간 매운 맛’ ‘매운 맛’ ‘아주 매운 맛’과 나란히 두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하다. 십수 년 동안 꾸준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음에도, 대표작 <부활>(KBS2, 2005)을 제외하면 제일 앞에서 조명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어느 날 연기 밖의 세계에서 그만의 매력이 터졌다.
야생 버라이어티 <해피선데이-1박 2일>(이하 <1박 2일>)에서 경쟁과 배신이 필요한 미션을 ‘착하고 순진하게’ 수행하는 ‘순둥이’ 캐릭터로 대중의 주목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것. 사람들은 ‘허당보다 더한 무(無)당’의 모습을 사랑스러워했고, 가끔 보여주는 ‘카이저소제 급’ 반전을 대견해했다.
야생 버라이어티 현장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선 굵은 남성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순한 남자’ 캐릭터는 그의 큰 무기다. 친근하고 사랑스러우며 믿음직한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많은 역할에 시너지 효과를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훌륭하다. 순진하고 욕심 없는 엄태웅의 모습을 반전시키는 데서 배가되는 효과를 상상해 보라.
술이 덜 깬 얼굴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해도 어울리고, 지구를 구하는 수퍼 히어로를 맡는다고 하면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영웅이 될 것 아니겠나. 그의 ‘순한 맛’은 강력하다. 어떤 맛의 카레를 사야 할까 고민할 때, ‘순한 맛’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며, 다양한 변신이 가능한 ‘유일무이한 맛’이기 때문이다. 발효 간장(영화 칼럼니스트)

◆ 팀 플레이어의 저력
엄태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필모그래피가 없는 시기’다. 서른한 명의 훈련병 중 한 명으로 분했던 2003년 <실미도>가 ‘그나마’ 대중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계기였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 살. 군 복무를 마치고 스물여섯 살에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그는 20대 후반까지 ‘미래가 없는 청년’이었다.
엄태웅이 현재 숨 가쁘게 달릴 수 있는 건 20대를 한적하게 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배우의 꿈을 품은 지 십 년 만에 배우가 된 그의 눈빛에는 어떤 갈망이 서려 있지만, 20대 시절에 쌓은 백수의 내공은 그를 다급하게 다독이지 않았다. 2005년 이후 정신없이 이어지는 스케줄 속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톤과 페이스를 절대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 어느새 자연스레 작품에 스며드는, 화려한 개인기는 없지만 그가 빠지면 공백이 크게 느껴지는 ‘팀 플레이어’가 되었다. 그가 끊임없이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는 건, 그래서 이른바 ‘다작 배우’라는 수식어까지 얻게 된 건, 그 때문이다. ‘신 스틸러’는 많지만 엄태웅처럼 묵묵히 전진하며 대중에게 안정을 주고 호감을 얻어내는 배우는 흔치 않다. 김형석(영화 저널리스트)
◆ 그가 입을 삐죽이며 얼굴을 찡그릴 때
내가 좋아하는 엄태웅 특유의 표정이 있다. 입술을 삐죽 올리면서 얼굴을 애매하게 찡그리는 표정. 실생활에서는 어색하고 썰렁한 상황에서 자주 나타난다(<1박2일>을 보라). 현장에서는 연기할 때 앞뒤 맥락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아도 화면으로 보면 신기하게도 정확한 느낌을 전달하는 그 표정.
뚜렷한 윤곽에 거친(?) 피부, 왠지 선 굵은 연기로 승부해야 할 것 같은 외모의 엄‘포스’가 그 표정을 지으면 포스는 사라지고 ‘순둥이’가 튀어나온다. 특히 <가족의 탄생>(2006)과 <차우>(2009)처럼 건들거리고 헐렁한 한량 같은 모습을 연기할 때 아주 효과적이다.
<건축학개론> 포스터에서도 그 표정을 확인할 수 있다. 대개는 환하게 웃거나 ‘똥폼’ 잡게 마련인 멜로 영화의 포스터에서 그는 입을 삐죽이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잘 골랐다! <시라노>를 보면 알겠지만 그게 바로 엄태웅의 가장 섹시한 표정이다. 김현석 감독(시라노; 연애조작단)
◆ 담담한 매력은 넘치지 않을 때 빛을 발한다
엄태웅 스스로 “적당한 게 내 장점”이라고 한 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외모는 남성다운데 눈짓이나 표정을 보면 소심하고 섬세한 성격이 묻어난다. 연기 또한 둥글둥글해서 <부활> <마왕>(KBS2, 2007) <핸드폰>(2009)에서처럼 남성다운 역할은 물론이고, <시라노> <건축학개론> 같은 로맨스 영화에도 잘 어울린다.
<가족의 탄생> <차우>에서는 엉뚱한 역할도 제법 잘 소화한다. 엄태웅 스스로 그가 얼마나 둥글둥글한 사람인지 <1박 2일>에서 전 국민 앞에 증명해 보이지 않았나. 따지고 보면 그만한 나이에 어디에 갖다 놔도 빠지지 않고, 관객들에게 호감을 얻는 배우도 참 드물다.
하지만 <1박 2일>에 출연한 이후로 쉴 새 없이 많은 작품에 얼굴을 보이는 건 그 스스로 자신의 장점을 깎아 내리는 일이다. 엄태웅이 지금처럼 자신을 몰아쳤다가는 <네버엔딩 스토리>처럼 영화 내내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작품을 쏟아낼지 모른다. 더 이상 ‘저거 찍으면서 진짜 피곤했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다. 장성란 기자
◆ 명품 브랜드가 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
최근 엄태웅의 행보는 마치 SPA 브랜드의 기획 상품을 보는 듯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시라노>다. 엄태웅에게 ‘엄포스’라는 파워 넘치는 별칭을 붙여준 드라마 <부활> <마왕>부터 <핸드폰>(2009)까지의 행보를 보라. 그렇게 엄태웅이 욕망이 들끓는 내면을 지닌 어두운 남자의 초상을 완성하려는 찰나, <시라노>가 등장했다.
이후 엄태웅은 <특수본> <네버엔딩 스토리>를 거쳤고, 동시에 리얼 버라이어티 <1박 2일>을 통해 해맑고 소탈한 ‘국민 삼촌’ 이미지까지 확보했다. 갑자기 시즌에 따라 계속해서 기획을 바꾸는 SPA 브랜드 같은 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배우인지라 변신이 숙명인 만큼 두루 잘 어울렸다면 좋았겠지만, 전부 미지근한 온도에 그치는 듯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딱히 안 어울리는 것도 없지만, 대단히 잘 어울리는 것도 없다는 것이 과연 장점이 될 수 있을까?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얻은 대중성을 굳이 작품에서까지 활용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양한 장르에서 소구되는 대신, 무게감 있는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계속해서 승부수를 띄우는 건 어떨까. 지금 엄태웅에게는 그게 무엇이든, 하나의 기조를 견고히 유지하는 명품 브랜드 전략이 필요한 듯 보인다. 이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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