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을 맞아 이번 호부터 '한 컷, 그림책' 코너를 연재한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이 함께 보아도 좋을 만큼 빼어난 그림책을 소개한다. 첫 작품은 소윤경 작가의 < 레스토랑 Sal > 이다. 이와 함께 < 책 놀이 책 > 의 저자 오승주씨가 쓰는 '아이랑 책이랑 놀자'도 싣는다. 책을 통해 부모가 아이와 함께 뒹굴며 소통하는 방법을 전해줄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칭찬 놀이'다.
미래를 다룬 영화에 나올 법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여자아이가 차를 타고 달린다.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선 곳은 호화로운 레스토랑. "문을 여는 순간 당신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라는 텍스트가 격식을 갖춘 레스토랑의 그림과 멋들어지게 어울린다.
그러나 그 멋진 글과 그림은, 왠지 차갑고 위압적이고 불편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채 세 장을 넘기지 않아 그것이 섬뜩한 빈정거림이었음을 밝힌다. 갖가지 요리는 먹음직스럽기는커녕 역겨워 보이고, 음식을 탐하는 사람들의 클로즈업된 입은 기괴하다.
< 레스토랑 Sal > /소윤경 글·그림/문학동네어린이 펴냄 |
철창에 갇힌 동물들을 필사적으로 구출한 아이가 그 동물들과 함께 닿은 곳은 식탁에 놓인 접시 위. 날카로운 포크와 나이프가 걸쳐진 채 약간의 찌꺼기가 남은 빈 접시만 남겨진 마지막 장면은 예상치 못한 충격을 준다. 우리의 무절제와 탐욕이 지구를 병들게 하고 좀먹어 들어간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경고, 그것이 우리 아이들과 미래를 삼키리라는 메시지를 작가는 거침없이 던지는 것이다.
< 레스토랑 Sal > 은 우리 그림책의 주제와 소재, 표현 방식과 기법이 어디까지 넓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우리 그림책 작가들은 그림책을 더 이상 아이들용 교훈과 희망과 카타르시스를 담는 그릇으로만 한정 짓지 않는다. 그림책은 이제 날카롭고 준엄하게 인간과 사회와 문명을 반성하고 비판하는 자리로 나아간다. 폭력적이고 공포스럽고 그로테스크한 표현도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않는다. 이 치열한 작가 정신이 젊은 일러스트레이터(삽화가)들을 통해 다양하게 구현되고 있으니, 고맙고 믿음직하다.
'인간의 일상이라는 표면 밑에 감춰진 잔혹한 세계'를 '기묘한 판타지'로 표현하는 소윤경 작가의 이 최신작은 올해 BIB(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의 한국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김서정 (아동문학평론가) /
http://media.daum.net/zine/sisain/newsview?newsid=20130509015607463
'책읽는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상과 모험의 심부름 길 (0) | 2013.05.17 |
---|---|
프랑스가 주목한 한국의 아동문학 (0) | 2013.05.09 |
신의 (0) | 2013.01.07 |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책 선물 어때요?> (0) | 2012.12.22 |
솔직히, 한국 사회는 망해간다 (0) | 2012.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