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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는 오후>/우리나라 드라마소식

우리는 진실을 향해 헤엄치는 상어다

복수,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 대한 앙갚음. 7월30일 20회로 막을 내린 KBS 월화 드라마 < 상어 > 의 표면적인 주제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면 주인공 이수(김남길)의 복수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드라마 속 모든 불행의 근원인 조상국(이정길)은 감옥에 들어앉아서도 활짝 웃었고, 이수는 그가 보낸 킬러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수가 죽는다고 조상국이 새삼 얻을 건 없으니 그야말로 순수한 앙갚음일 뿐이고, 보란 듯이 성공한 건 오히려 조상국이다.

그뿐 아니다. 이수는 아버지를 살해한 최병기(기국서)를 자신의 손으로도, 법에 의지해서도 응징하지 못했다. 정작 살인자를 처단한 것은 그의 입을 막아야 했던 조상국이다.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조상국을 무너뜨릴 결정적인 증거를 남김으로써, 최병기 또한 토사구팽에 통쾌하게 복수를 한 셈이다.



ⓒ에넥스텔레콤 제공 극중 이수(김남길)는 복수에 성공하지 못한 채 킬러에게 목숨을 잃는다.

게다가 복수라는 관점에서 더 아리송해지는 건, 해우(손예진)의 역할이다. 과연 검사라는 지위로 상징되는 국가 형벌 체계는 단순히 피해자를 대신해 합법적인 복수를 집행하기 위한 것인가. 도대체 해우는 이수의 복수를 돕는 조력자인가, 가로막는 방해자인가. 나아가 자신이 딛고 서 있던 뿌리를 통째로 도려내면서까지 해우가 추구한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단지 호동왕자를 사랑한 나머지 자명고를 찢은 낙랑공주를 변주해낸 것뿐이라면 굳이 검사였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해우가 원한 것이 할아버지 조상국을 무너뜨려 악행을 응징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면, "세상에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이수의 소신인들 복수를 뜻하기만 하는 것일까.

이 드라마의 주제는 복수가 아니다

의문의 단서는 또 있다. 피해자의 처지에서 앙갚음이라도 해야 후련해질 것 같은 악행은 세상에 흔하게 널려 있다. 그런데도 하필 친일 부역, 전시 민간인 학살, 공안 경찰의 고문 같은 묵직한 역사적 배경으로 주인공들을 이끌어간 것이, 단지 복수의 '스케일'을 거창하게 포장하려는 설정이기만 할까. 결정적으로 "단지 끔찍한 시대를 살아낸 것일 뿐"이라는 조상국의 비겁한 변명에 "그 시대를 끔찍하게 만든 건 당신 같은 사람들"이라고 쏘아붙이는 이수에게,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였던 아버지는 '조상국 같은 사람'일까 아닐까.





ⓒKBS < 상어 > 화면 캡처 모든 불행의 근원인 조상국(이정길)은 자신의 악행을 시대 탓으로 돌린다.

드라마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한 시대를 끔찍하게 만드는 건 단지 천인공노할 악행 그 자체가 아닌 것이다. '조상국 같은 사람'이란 자신이 저지른 일들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는, 그래서 그것을 '끔찍한 시대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던' 일인 양 정당화하는, 그러고도 모자라 그 추악한 진실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악행을 서슴지 않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요컨대 이 드라마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이수의 행태는 '복수극'이 아니라 일종의 '진실 게임'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일제 치하나 한국전쟁 또는 군사독재의 광기를 겪어낸 세대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지금 이 시대가 결코 태평성대가 아니라면 이 시대를 끔찍하게 만들고 있는 건 누구일까. 한사코 진실을 덮으려는 조상국일까, 불편한 진실을 끝내 피하지 않고 대면하려는 이수나 해우일까.

그래서 남겨지는 의문 하나. 조상국은 자신이 살아온 '끔찍한' 시대와는 무관한 손녀 해우에게만은 그 시대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숱한 살인을 불사하면서까지 진실을 묻으려 한다. 그렇다면 이수는 과연, 아버지가 고문기술자였다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동생인 이현(남보라) 또한 피하지 않고 대면해야 할 일이라고 여길까, 아니면 그 시대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이현은 모르고 넘어가기를 바랄까. 자신은 목숨을 건 '진실 게임'에 뛰어들면서도 동생만은 아무 걱정 없이 안전하기만을 바라는 이수는 조상국과 얼마나 다른 사람일까.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오빠가 사라졌을 때는 너무 어렸던 이현에게도, 이제 오빠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이수의 순진한 바람과는 달리, 이현도 12년 전의 이수처럼 누가 왜 이수를 쏘았는지를 둘러싼 진실 게임의 출발점에 선 것이다. 이현 또한 제 나름의 '끔찍한 시대'를 살아내야만 한다. 이현을 끔찍이 아끼는 양부모들은 필사적으로 가로막으려 들겠지만, 그래서 '모두 불행한 과거사에 지나지 않는' 일이니 '훌훌 털고 오로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만이 이현에게 남겨진 삶이라면, 조상국의 단죄조차도 설득력을 크게 잃는다.

어쩌면 이수만이 아니라, 실은 모든 사람이 '부레가 없는' 상어다. 단 한순간도 진실에서 눈을 돌린다면 곧바로 삶의 어두운 심연으로 곤두박질치고 말. 사람은 오로지 진실 앞에서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으니.

변정수 (미디어 평론가)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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