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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시간

‘문제적 아이’ 감싸며 위로하는 영화 ‘완득이’ 원작자 김려령

영화는 500만 명이 관람했고, 소설은 70만 부가 팔려나갔다. 영화 '완득이'와 원작 소설 「완득이」 이야기다. 우리는 '문제아'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완득이를 통해 과거를 위로하고 현재에 도전할 용기를 얻었다. 비록 청소년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완득이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동주 선생님처럼, 원작자 김려령의 소설이 우리에게 '괜찮다'라는 치유의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



볼거리라고는 유아인, 김윤석 두 배우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문제아가 선생님을 만나 철이 드는, '성장소설'의 교과서적인 스토리에 관객들은 이미 강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장문을 나설때의 마음은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르다. 원작자인 김려령 작가(41)가 글 속에 봉인해놓은 유쾌한 입담과 참신한 캐릭터는 두 훌륭한 배우를 통해 고스란히 '장면'으로 되살아났다. 자신의 정체성과 나아갈 방향을 깨닫는 완득이의 성장 과정 또한 손발 오그라드는 유치함 없이도 '따뜻함'과 '뭉클함'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재미와 감동, 비주얼과 연기력을 동시에 진열한 흔치 않은 영화였다.

사실 김려령 작가의 저력은 캐릭터로부터 시작된다. 진부하지만 우리네 인생사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를 고리타분하지 않게 풀어갈 수 있는 '힘 있는 캐릭터'가 그녀 특유의 재치 있는 필력을 만나 생명력을 얻는다. 단순한 '문제아'나 평범한 '교사'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인물에 개성과 매력을 심어 넣어 '완득이'와 '이동주 선생님'을 탄생시켰다. '에이, 저런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싶은 게 아니라 흔하진 않겠지만 '세상 어딘가에 꼭 존재할 법도 한' 살아 있는 캐릭터가 독자들을 주억거리게 만들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거기에 불법체류자와 다문화 가정, 가족의 붕괴 등 자칫하면 심각하고 무거워질 수 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따뜻하고 경쾌한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김려령 작가는 10대 이야기를 쓴다. 그때 시작한 인생의 고민은 어른이 되어서도 멈춰서는 안 되는 거니까. 그때 찾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른이 되어서도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거니까. 그래서 그녀의 개과천선한 10대의 이야기가 연령을 불문한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김려령 작가는 2007년에 등단한, 작품의 인지도에 비해 연혁이 길지 않은 작가다. 하지만 많지 않은 작품으로도 독자들의 공감을 강하게 끌어냈다. 더욱이 「완득이」는 2008년 작품. 신인 시절에 출간된 책이 크게 성공을 거둔 지금, 새로운 작품에 대한 부담감도 클 것이다.


-그동안 여덟 권의 책이 출간됐어요. 책을 쓸 때마다 항상 최선을 다했지만 그 결과가 매번 똑같을 수는 없죠. 최선을 다해 쓴 작품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 작품이 다른 책에 비해 못하다고 볼 수 없거든요. 「완득이」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저 그 책의 운명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부담감을 갖지 않아요. 제가 쓴 책은 각자의 운명을 가지게 되는 거니까요.

얼마 전 김려령 작가의 새 책 「가시고백」이 출간됐다. 독특한 매력을 가진 '완득이'와 '이동주 선생님'처럼 이번 작품 속 인물도 특이하다. 도벽이 있는 아이가 등장하고 '감정 설계사'라는 흥미로운 직업의 인물도 탄생됐다.


-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60%는 현실에서 착안하고 40%는 작품의 흐름에 맞춰 성격을 부여해요. 어디에나 있음직한 인물이지 아주 낯선, 한 번도 보지 못한 캐릭터를 만들어내지는 않아요. 그래야 땅에 발붙인 성격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문학 속에 나오는 인물은 그 자체가 상징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완득이가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은 그 아이가 속한 불우하고 부조리한 환경과 사회에 적응하는 일종의 삶의 방식일 수도 있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저는 작품마다 제가 좋아하는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주인공을 하나씩 넣어요. 「완득이」에서는 선생님이죠. 「가시고백」에도 그런 인물이 등장해요. 제가 엉뚱한 사람을 좀 좋아하거든요(웃음).



맨 처음 서점에서 「완득이」를 집어들었을 때의 첫인상은 '청소년 소설'이라는 선입견이었다. '학원물', '성장소설' 등으로 대변되는 청소년들의 전유물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책을 읽어나가며 '설렁설렁 읽었다가는 작가의 속뜻을 놓칠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이미지로 점차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려령 작가의 작품은 '청소년 소설'이라는 문학적 분류 안에 꽂혀 있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다른 소설과 구분한다는 것은 독자들의 진입을 막는 '경계막'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그냥 '소설'이거든요. 저는 한 번도 청소년만을 위해 글을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청소년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나이대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 나이대부터 꼭 고민해봐야 할 문제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우아한 거짓말」에서 다룬 자살 문제는 중학생을 연령층으로 잡았어요. 그 시기부터 자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으니까요. 이것을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10대가 주인공이다 보니 10대들의 삶을 누구보다 간파하고 있어야 할 김려령 작가. 요즘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작품의 전반에 깔려 있다. 40대에 진입한 작가 입장에서 정보 수집이 쉽지 않았을 듯한데, 의외의 지원군이 있었다. 올해 아들이 대학생이 되고 딸이 고등학생이 된단다. 아이들을 통해 10대의 삶을 엿보고 자신이 살아온 10대의 기억 속에서 작품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저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와도, 또 못하는 친구와도 다 친했죠. 아무래도 고등학생 때가 가장 재미있었어요. 어떤 친구들과는 만화방을 다녔는데, 만화책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500원 내면 볼 수 있는 성인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죠(웃음). 그렇게 놀다가 독서실에 가면 거기서 또 잠을 잤어요(웃음).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저를 문제아로 기억하고 또 어떤 친구들은 저를 모범생으로 기억하더라고요. 자신의 영역 안에 함께 어울리는 저의 모습을 기억하는 거겠죠.

김려령 작가의 작품에는 늘 '문제적 아이'가 등장한다. 반항하거나 자살을 꿈꾸거나 소외된 아이들이다.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이, 그리고 이들의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려령 작가 또한 날로 심각해지는 '학원 폭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학원 폭력은 누구의 입장에서 보든 정말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생각해요. 피해자나 가해자나 양 쪽 모두 보호돼야 할 우리의 아이들이죠. 예방이 필요한데 지금은 너무 사후 조치만 강조하고 있어요. 학교와 집, 사회가 삼위일체가 되어 철저하게 막아야 하는 일이죠. 그런데 모두 제각각 움직여서 좋지 않은 사건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돼요. 학원 폭력이 시작되는 연령층도 조금씩 낮아지고 있어서 더욱 심각하죠.

그녀는 작품 속에서 '문제적 아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아준다. 고등학교 2학년인 제자 완득이에게 술을 권하며 "그 나이에 술도 못 마시냐?"라고 핀잔을 주는 이동주 선생님처럼. 최소한 자신을 돌아보려 하고, 자신의 아픈 마음을 고백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손을 잡아주고 싶고 다독여주고 싶다고 했다.


-저는 아이들에게 '저질러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10대가 가장 예쁜 이유는 방향성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뭐든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꿈이 바뀌는 게 문제가 아니라 꿈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상대에게 상처주거나 상대방을 밟기 보다는 손잡고 갈 수 있기를 바라요. 또 청소년기는 다분히 공격적이지만 스스로 많이 아파하는 시기이기도 해요. 그래서 혼자 아파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때론 부모보다 친구가 더 힘이 되는 때도 있거든요. 정말 바닥이 아니라면, 혹은 최소한의 염치라도 잃지 않았다면 자신의 주위에 손을 잡아줄 친구가 있다고 믿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고백'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고백은 자백이나 자수와는 달라서 상대가 충분히 들어줄 마음이 생겼을 때, 서로가 공감할 때 가능하거든요. 이러한 고백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어른들도 마찬가지고요.

<■글 / 진혜린(객원기자) ■사진 / 박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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