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외모도, 명예도 다 갖고 있는 남자.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어 보이지만 실은 마음속 깊이 상처를 품고 있는 남자. 안하무인에 까칠한 성격이지만 '내 사람'에게만큼은 순정을 바치는 남자. 인기 드라마를 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캐릭터다. 이런 남자들은 주로 밝고 성실한 성격 말고는 내세울 것 없으면서도 한없이 착하고 또 이유 없이 당당한 한 여자를 '아낌없이' 사랑한다. 매일 밤 TV를 통해 만나지만 실제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우리의 가상 연인, 여성들의 로망 '실장님'을 소개한다.
'실장님'의 역사와 사회적 의미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실장님 캐릭터는 그 자체로 고유한 특성과 의미를 갖고 있다. 작품의 설정과 전개에 따라 직함에는 다소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부유한 남자 주인공이 평범한 여자 주인공과 로맨스를 엮어간다는 점에서 드라마마다 반드시 실장님의 변형들이 등장한다. 굳이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치중하는 우리네 드라마가 빼놓지 않고 반복하는 것이 바로 '신데렐라' 이야기다. 이는 신분 상승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인데,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여주인공이 다수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신데렐라' 이야기는 색깔을 바꿔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따라서 반드시 그 상대 캐릭터인 '왕자님'이 필요하고, 실장님 캐릭터는 계속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실장님은 재벌 2세, 3세를 비롯한 '부잣집 아들'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필수 캐릭터인 셈이다.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부유한 남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대놓고' 그냥 사장 혹은 회장 아들이었다. 특별히 정체성을 알 수 없는 회사 안에서 후계자 역할을 하며, 보통 가난한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맨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전체적인 줄거리 전개에 있어 회사나 일은 거의 비춰질 기회가 없기 때문에 굳이 호칭을 부여하지 않아도 무관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트렌디 드라마가 사랑받게 된 2000년대 이후, 그에 걸맞은 드라마 속 인물 묘사가 이루어지면서 실장님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단순한 부의 상징이 아닌 고유한 특성과 성격을 갖춘 캐릭터가 필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은 "드라마 주인공들의 직업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인물들은 좀 더 구체적인 직업을 보여줘야 했고, 따라서 실무적인 일을 하는 실장님 캐릭터가 탄생하게 됐다"라고 분석한다. 물론 이들 실장님 또한 '알고 보니 회장 혹은 사장 아들'과 같은 설정이 반복되기는 했지만 좀 더 전문적인 직업의 영역을 다루게 된 것이다.
또 부유한 남자 주인공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묘사되는 여자 주인공과 만나서 대립과 갈등을 겪으며 사랑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의 만남이 잦아야 하는데, 직급이 너무 높으면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실장님 정도를 적당한 타협 선으로 설정한 것도 있다. 이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은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과 작품 속 여주인공에게 쉽게 어필할 만한 남자 주인공의 나이는 30대 정도다. 아무리 재벌 2세, 3세라 해도 그 나이에 부회장이나 이사 등의 직함은 과한 편이고, 실질적인 회사 조직의 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실장 정도의 직위가 적당하다는 생각에서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 본질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이전 캐릭터와 같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탄생한 실장님 캐릭터는 최근 들어 사극, 전문직 드라마 등 드라마가 다루는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외형을 바꿔가며 확장되고 있다. 주인공들의 일반 회사보다는 그 시대를 선도하는 특정 분야의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팀장 혹은 외부 영입 전문가 등의 이름을 얻기도 하고, 회사 내에서도 전통적인 부서보다는 기획이나 마케팅 등의 특정 부서가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흐름에 따라 본부장 등으로 격상되기도 한다. 또 퓨전 사극 등의 작품에서는 과거 시대 실장님에 해당하는 역사적 지위를 갖고 등장하기도 한다. 시청자들의 관심과 성향을 반영하며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미니시리즈 등의 트렌디 드라마에서보다는 일일극, 주말드라마 등에서 더 큰 활약을 펼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상황과 연결시켜보면 실장님 캐릭터의 효용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문원 평론가는 "1990년대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들이 '실장님' 대신 평범한 청년이던 때가 있었다. '질투' 등의 드라마만 봐도 평범한 젊은이가 차근차근 꿈을 이루고 회사 내에서 성장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라고 상기하면서 "그러다가 IMF 이후 다시 '실장님'이 부활했다. 대기업은 언제 잘릴지 모르고 중소기업은 언제 망할지 모르는 현실 속에서 경제적으로 공고하고 안정적인 남성에 대한 매력도가 높아졌고, 절대적인 부를 확보한 남자 주인공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라는 분석을 내놨다.
실장님 캐릭터의 변화 이유를 '결국 여성들의 욕구가 달라짐에 따라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데서 찾는 정덕현 평론가는 "드라마 주인공들이 좀 더 전문적인 직업의 모습을 갖추면서 실장님 캐릭터는 단지 여성의 상대로서의 남자가 아니라 여성의 성장을 도와주는 직업적 멘토 같은 모습도 함께 갖추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실장님'의 자격 요건 및 인물 탐구
드라마 속 실장님 캐릭터는 그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대부분 비슷한 형태로 묘사되고 또한 소비되고 있다. 우선 실장님 캐릭터 탄생의 근원인 부유함은 필수적이다. 재벌 2세 혹은 3세로 복잡한 가족사를 간직하고 있거나 어릴 때부터 외롭게 혼자 자라는 등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정서적으로는 심각한 결핍 상태인 것이다. 아버지는 대체로 지나치게 엄격하고 차가운데다 아들을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예 계시지 않거나 계신다 하더라도 뭔가 문제가 있을 때가 많다.
아픈 개인사를 간직한 만큼, 평소 성격이 썩 좋지는 않다. 사람들과 관계 맺는 데 서투르며 감정 표현도 쉽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까칠하다, 버릇없다, 차갑다 등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간혹 젠틀한 매너와 세련된 태도로 좋은 평판을 얻는 실장님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지 않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
실장님들에게 회사는 두 가지 의미다. 가만히 있다 보니 저절로 주어진 귀찮은 것, 아니면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로부터 반드시 지켜내야만 하는 것. 전자의 경우 실장님은 보통 무능할 뿐 아니라 아예 일에 관심 자체가 없기 때문에 드라마 내에서 일하는 장면 따위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근무시간이나 출퇴근에 대한 개념도 없이 오로지 여자 주인공이 있는 곳 여기저기에서 출몰한다. 혹은 '폼 나는' 취미생활을 즐기는 데 골몰한다. 훌륭한 경영능력을 갖고 있는 실장님의 경우에도 하는 일 자체는 모호하다. 일은 보통 회사 내 권력 암투의 소재 정도로 활용된다. 가장 가까운 곳에 경계해야 할 라이벌들이 있고 이 과정에서 대개 우연이 거듭되며 여주인공과 만나고 그녀의 도움을 얻어 경쟁에서 승리할 때가 많다.
이들은 유독 여자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면모를 보인다. 여자들의 영원한 로망인 '나쁜 남자' 컨셉트를 표방하는 것. 아련한 첫사랑이나 목숨 바쳐 사랑했던 과거의 여자를 가슴속에 품고 있던 그들은 씩씩하고 털털한 여주인공을 만나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이러한 실장님의 매력이 가장 극대화될 때는 양면성이 드러날 때다. 직업적인 세계에서나 평소 생활에서는 얼음처럼 냉정한 사람이지만 한 여자에게만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실장님들의 가장 큰 특성은 바로 근사한 외모다. 한마디로 잘생기고 멋있어야 한다는 것. 능력이 없고 성격이 괴팍해도 괜찮지만 외모가 엉망이면 결코 실장님이 될 수 없다. 여기서 외모는 단순히 조각 같은 얼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한 회 이상 샤워 장면이 등장해야만 하므로 넓은 어깨나 다부진 등 근육, 그리고 초콜릿 복근은 필수다. 큰 키와 유려한 보디라인 또한 필요하다. 소위 말하는 '슈트 핏'을 소화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장님' 캐릭터 전문 단골 배우
주가급등! 이 시대의 최고의 '실장님'
박시후
'박시후 앓이', '꼬픈남(꼬시고 싶은 남자)'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냈을 만큼 여성 시청자들을 두근두근 가슴 뛰게 만든 주인공. 최근에는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 명품 업체 회장 '장띠엘 샤'로 이름만큼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출연하는 작품마다 최고의 캐릭터를 완성해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멜로드라마를 구축해내가고 있는 그는 미묘하게 다른 인물의 매력을 살려 실장님들을 연기해왔다. 태생적으로 실장님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전형성 위에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맛깔스러운 양념을 뿌리는 데 능숙한 연기자다. '지질'하고 유치하게 보일 법한 행동도, 어딘가 모르게 이상해 보이는 모습도, 허술하고 약한 모습도 박시후가 연기하면 언제나 사랑스럽다.
모든 것을 감싸 안는 귀여운 연하남 '실장님'
박윤재, 고세원, 이태성, 지현우
사랑에 데고 세상에 찌든 아줌마를 일
편단심 사랑하며 그녀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 캐릭터다. 보통 젊고 능력 있는 도도한 외모의 약혼녀가 있지만, 촌스럽고 때로는 억척스럽기까지 한 아줌마 여주인공에게 점점 빠져든다.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 모두가 말리고, 심지어 그녀조차 "자신 없다"라며 도망가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간절함을 가졌다. 연하남 특유의 귀여운 애교와 다소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벤트 신공을 보이기도 한다.
'실장님'계의 모범생
주상욱
엘리트 같은 이미지의 주상욱은 동료들이 부르는 별명 중 하나가 '주실장'일 정도로 실장님계의 확고한 에이스로 손꼽힌다. 스스로도 "지금까지 드라마 속에서 맡았던 배역들만 갖고도 회사 하나는 거뜬히 차릴 수 있다"라고 할 정도로 사장, 이사, 실장, 팀장 등 직장 내 웬만한 고위 직책은 다 거쳤다. 날카롭진 않지만 각이 살아있는 얼굴과 단호한 입매 덕분인지 특히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성격의 실장님 역할이 잘 어울린다. 드라마 '자이언트'에서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었다. 최근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허당'의 면모를 선보이며 차츰 실장님 이미지를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김재원
유난히 하얀 얼굴과 동그란 눈매, 깨끗한 피부와 해사한 미소 덕분에 풍족하게 잘 자란 부잣집 도련님 이미지가 강한 김재원.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캐릭터를 맡을 때도 최소한 '몰락한 집안의 손자' 정도의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냉정하게 대하고 화를 낼 때도 보듬어주고 싶은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남자다.
늘 비슷해서 헷갈리기도 하는, 일일드라마 '실장님'들
이장우·고주원·서지석·이상우·김지석
출생의 비밀을 기본 재료로 하고 남녀 주인공의 신분 차이에서 오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부재료로 버무려 만들어내는 각 방송사의 일일드라마들. 이야기의 흐름상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지만 긍정적이고 성실한 '캔디' 같은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실장님 캐릭터가 반드시 등장한다. 다만, 지나치게 전형성에 얽매인 나머지 하나같이 비슷해서 분명 드라마 제목이 바뀌었는데도 계속 한 작품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 함정. 착하고 따뜻한 정서를 표방하지만 보는 이들에게 '알고 보니 충격!'과 같은 효과를 주는 일일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는 배우들이다. 캐릭터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품을 벗어나서 들여다봐도 다들 비슷한 이미지다.
연륜의 '실장님'
류진
훤칠한 키에 다소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의 외모, 그리고 반듯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이사, 상무, 실장 등을 오가며 실장님 캐릭터를 전담해왔다. 그동안 실장님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탓에 다른 역할을 맡기가 쉽지 않았는데, 지난해 데뷔 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시트콤에 출연하며 소원을 풀었다.
김승수
미니시리즈와 주말극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에서 성격 좋고 유쾌한 실장님 캐릭터를 전담했다. 치명적인 매력을 가졌다기보다는 평범함 속에서 발현되는 자연스러운 태도와 편안함으로 어필하는 유형이다.
'실장님' 캐릭터의 원조
이병헌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을 통해 실장님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주인공. 실장님이란 단어 자체를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사실 그 공은 상대역 최지우에게 있는데, 그녀의 발음 때문에 실장님이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단어의 훼손이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점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
이현우
최근 이제는 그만 실장님 꼬리표를 떼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실장님 전문 배우. 드라마 데뷔작 '옥탑방 고양이'에서 무표정하고 어눌한 말투로 무심한 듯 자상한 매력을 선보인 이후 줄곧 자기 복제 연기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강세, '실장님'의 승진
김재중·지성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서 실장님 캐릭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두 배우. 직함부터 고급스러운 본부장이었다. 개구쟁이 같은 모습으로 톡톡 튀는 '매력남'을 창조해낸 지성과 자기관리가 철저한 야망 큰 남자로 분한 김재중은 한동안 여성시청자들의 일상을 현실과 분리되게 만들었다.
박용우
애청자들로부터 "이제야 '포텐'이 터졌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용우. 주말드라마 '내 사랑 나비부인'에서 여주인공 염정아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하고 있다. 여주인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늘 자상하게 챙겨주는 키다리 아저씨 또한 실장님 캐릭터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사진 제공 / SBS>
http://media.daum.net/zine/ladykh/newsview?newsid=20130201144214888
'실장님'의 역사와 사회적 의미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실장님 캐릭터는 그 자체로 고유한 특성과 의미를 갖고 있다. 작품의 설정과 전개에 따라 직함에는 다소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부유한 남자 주인공이 평범한 여자 주인공과 로맨스를 엮어간다는 점에서 드라마마다 반드시 실장님의 변형들이 등장한다. 굳이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치중하는 우리네 드라마가 빼놓지 않고 반복하는 것이 바로 '신데렐라' 이야기다. 이는 신분 상승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인데,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여주인공이 다수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신데렐라' 이야기는 색깔을 바꿔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따라서 반드시 그 상대 캐릭터인 '왕자님'이 필요하고, 실장님 캐릭터는 계속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실장님은 재벌 2세, 3세를 비롯한 '부잣집 아들'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필수 캐릭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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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격적으로 트렌디 드라마가 사랑받게 된 2000년대 이후, 그에 걸맞은 드라마 속 인물 묘사가 이루어지면서 실장님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단순한 부의 상징이 아닌 고유한 특성과 성격을 갖춘 캐릭터가 필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은 "드라마 주인공들의 직업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인물들은 좀 더 구체적인 직업을 보여줘야 했고, 따라서 실무적인 일을 하는 실장님 캐릭터가 탄생하게 됐다"라고 분석한다. 물론 이들 실장님 또한 '알고 보니 회장 혹은 사장 아들'과 같은 설정이 반복되기는 했지만 좀 더 전문적인 직업의 영역을 다루게 된 것이다.
또 부유한 남자 주인공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묘사되는 여자 주인공과 만나서 대립과 갈등을 겪으며 사랑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의 만남이 잦아야 하는데, 직급이 너무 높으면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실장님 정도를 적당한 타협 선으로 설정한 것도 있다. 이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은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과 작품 속 여주인공에게 쉽게 어필할 만한 남자 주인공의 나이는 30대 정도다. 아무리 재벌 2세, 3세라 해도 그 나이에 부회장이나 이사 등의 직함은 과한 편이고, 실질적인 회사 조직의 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실장 정도의 직위가 적당하다는 생각에서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 본질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이전 캐릭터와 같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탄생한 실장님 캐릭터는 최근 들어 사극, 전문직 드라마 등 드라마가 다루는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외형을 바꿔가며 확장되고 있다. 주인공들의 일반 회사보다는 그 시대를 선도하는 특정 분야의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팀장 혹은 외부 영입 전문가 등의 이름을 얻기도 하고, 회사 내에서도 전통적인 부서보다는 기획이나 마케팅 등의 특정 부서가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흐름에 따라 본부장 등으로 격상되기도 한다. 또 퓨전 사극 등의 작품에서는 과거 시대 실장님에 해당하는 역사적 지위를 갖고 등장하기도 한다. 시청자들의 관심과 성향을 반영하며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미니시리즈 등의 트렌디 드라마에서보다는 일일극, 주말드라마 등에서 더 큰 활약을 펼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상황과 연결시켜보면 실장님 캐릭터의 효용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문원 평론가는 "1990년대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들이 '실장님' 대신 평범한 청년이던 때가 있었다. '질투' 등의 드라마만 봐도 평범한 젊은이가 차근차근 꿈을 이루고 회사 내에서 성장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라고 상기하면서 "그러다가 IMF 이후 다시 '실장님'이 부활했다. 대기업은 언제 잘릴지 모르고 중소기업은 언제 망할지 모르는 현실 속에서 경제적으로 공고하고 안정적인 남성에 대한 매력도가 높아졌고, 절대적인 부를 확보한 남자 주인공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라는 분석을 내놨다.
실장님 캐릭터의 변화 이유를 '결국 여성들의 욕구가 달라짐에 따라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데서 찾는 정덕현 평론가는 "드라마 주인공들이 좀 더 전문적인 직업의 모습을 갖추면서 실장님 캐릭터는 단지 여성의 상대로서의 남자가 아니라 여성의 성장을 도와주는 직업적 멘토 같은 모습도 함께 갖추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실장님'의 자격 요건 및 인물 탐구
드라마 속 실장님 캐릭터는 그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대부분 비슷한 형태로 묘사되고 또한 소비되고 있다. 우선 실장님 캐릭터 탄생의 근원인 부유함은 필수적이다. 재벌 2세 혹은 3세로 복잡한 가족사를 간직하고 있거나 어릴 때부터 외롭게 혼자 자라는 등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정서적으로는 심각한 결핍 상태인 것이다. 아버지는 대체로 지나치게 엄격하고 차가운데다 아들을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예 계시지 않거나 계신다 하더라도 뭔가 문제가 있을 때가 많다.
아픈 개인사를 간직한 만큼, 평소 성격이 썩 좋지는 않다. 사람들과 관계 맺는 데 서투르며 감정 표현도 쉽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까칠하다, 버릇없다, 차갑다 등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간혹 젠틀한 매너와 세련된 태도로 좋은 평판을 얻는 실장님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지 않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
실장님들에게 회사는 두 가지 의미다. 가만히 있다 보니 저절로 주어진 귀찮은 것, 아니면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로부터 반드시 지켜내야만 하는 것. 전자의 경우 실장님은 보통 무능할 뿐 아니라 아예 일에 관심 자체가 없기 때문에 드라마 내에서 일하는 장면 따위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근무시간이나 출퇴근에 대한 개념도 없이 오로지 여자 주인공이 있는 곳 여기저기에서 출몰한다. 혹은 '폼 나는' 취미생활을 즐기는 데 골몰한다. 훌륭한 경영능력을 갖고 있는 실장님의 경우에도 하는 일 자체는 모호하다. 일은 보통 회사 내 권력 암투의 소재 정도로 활용된다. 가장 가까운 곳에 경계해야 할 라이벌들이 있고 이 과정에서 대개 우연이 거듭되며 여주인공과 만나고 그녀의 도움을 얻어 경쟁에서 승리할 때가 많다.
이들은 유독 여자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면모를 보인다. 여자들의 영원한 로망인 '나쁜 남자' 컨셉트를 표방하는 것. 아련한 첫사랑이나 목숨 바쳐 사랑했던 과거의 여자를 가슴속에 품고 있던 그들은 씩씩하고 털털한 여주인공을 만나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이러한 실장님의 매력이 가장 극대화될 때는 양면성이 드러날 때다. 직업적인 세계에서나 평소 생활에서는 얼음처럼 냉정한 사람이지만 한 여자에게만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실장님들의 가장 큰 특성은 바로 근사한 외모다. 한마디로 잘생기고 멋있어야 한다는 것. 능력이 없고 성격이 괴팍해도 괜찮지만 외모가 엉망이면 결코 실장님이 될 수 없다. 여기서 외모는 단순히 조각 같은 얼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한 회 이상 샤워 장면이 등장해야만 하므로 넓은 어깨나 다부진 등 근육, 그리고 초콜릿 복근은 필수다. 큰 키와 유려한 보디라인 또한 필요하다. 소위 말하는 '슈트 핏'을 소화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장님' 캐릭터 전문 단골 배우
주가급등! 이 시대의 최고의 '실장님'
박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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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감싸 안는 귀여운 연하남 '실장님'
박윤재, 고세원, 이태성, 지현우
사랑에 데고 세상에 찌든 아줌마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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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계의 모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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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같은 이미지의 주상욱은 동료들이 부르는 별명 중 하나가 '주실장'일 정도로 실장님계의 확고한 에이스로 손꼽힌다. 스스로도 "지금까지 드라마 속에서 맡았던 배역들만 갖고도 회사 하나는 거뜬히 차릴 수 있다"라고 할 정도로 사장, 이사, 실장, 팀장 등 직장 내 웬만한 고위 직책은 다 거쳤다. 날카롭진 않지만 각이 살아있는 얼굴과 단호한 입매 덕분인지 특히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성격의 실장님 역할이 잘 어울린다. 드라마 '자이언트'에서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었다. 최근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허당'의 면모를 선보이며 차츰 실장님 이미지를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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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하얀 얼굴과 동그란 눈매, 깨끗한 피부와 해사한 미소 덕분에 풍족하게 잘 자란 부잣집 도련님 이미지가 강한 김재원.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캐릭터를 맡을 때도 최소한 '몰락한 집안의 손자' 정도의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냉정하게 대하고 화를 낼 때도 보듬어주고 싶은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남자다.
늘 비슷해서 헷갈리기도 하는, 일일드라마 '실장님'들
이장우·고주원·서지석·이상우·김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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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의 '실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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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칠한 키에 다소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의 외모, 그리고 반듯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이사, 상무, 실장 등을 오가며 실장님 캐릭터를 전담해왔다. 그동안 실장님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탓에 다른 역할을 맡기가 쉽지 않았는데, 지난해 데뷔 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시트콤에 출연하며 소원을 풀었다.
김승수
미니시리즈와 주말극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에서 성격 좋고 유쾌한 실장님 캐릭터를 전담했다. 치명적인 매력을 가졌다기보다는 평범함 속에서 발현되는 자연스러운 태도와 편안함으로 어필하는 유형이다.
'실장님' 캐릭터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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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을 통해 실장님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주인공. 실장님이란 단어 자체를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사실 그 공은 상대역 최지우에게 있는데, 그녀의 발음 때문에 실장님이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단어의 훼손이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점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
이현우
최근 이제는 그만 실장님 꼬리표를 떼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실장님 전문 배우. 드라마 데뷔작 '옥탑방 고양이'에서 무표정하고 어눌한 말투로 무심한 듯 자상한 매력을 선보인 이후 줄곧 자기 복제 연기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강세, '실장님'의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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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서 실장님 캐릭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두 배우. 직함부터 고급스러운 본부장이었다. 개구쟁이 같은 모습으로 톡톡 튀는 '매력남'을 창조해낸 지성과 자기관리가 철저한 야망 큰 남자로 분한 김재중은 한동안 여성시청자들의 일상을 현실과 분리되게 만들었다.
박용우
애청자들로부터 "이제야 '포텐'이 터졌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용우. 주말드라마 '내 사랑 나비부인'에서 여주인공 염정아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하고 있다. 여주인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늘 자상하게 챙겨주는 키다리 아저씨 또한 실장님 캐릭터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사진 제공 / SBS>
http://media.daum.net/zine/ladykh/newsview?newsid=20130201144214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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